최근 한 정부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청와대가 ‘공정한 사회’를 천명하면서 관가에 현 정부의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현재 국무총리대행이면서 총리 후보자 물망에 오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윤 장관은 공정과 능력을 두루 갖추고, 청문회 낙마 가능성이 없는 인물로 꼽힌다.
윤증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금융감독원장을 지냈다. 특히 윤증현 장관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매제로 이 전 총리의 동생인 이수인 의원(작고)과 친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윤 장관은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으로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쫓겨나 5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직을 맡는 등 변방에 머물렀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금융감독원장으로 부활했다. 윤증현 장관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권 및 재계의 불신을 사던 강만수 전 재정부 장관에 이어 재정부를 맡아 무리 없이 경제를 이끌어왔다.
윤 장관과 함께 총리 후보자 그룹에 이름을 올린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도 노무현 정부의 핵심으로 일했던 인사다. 박봉흠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2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다. 청와대 정책실장직은 참여정부 출범 당시 처음 선보인 것으로 비서실장,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정책을 이끄는 3대 핵심 요직이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 폐지했으나 곧바로 부활시켜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인 윤진식 의원이 이 자리를 맡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1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맡을 정도로 핵심 중의 핵심 자리였다. 박봉흠 전 장관은 2004년 초 정책실장을 맡아 일하다 6개월 만에 위 절제수술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들이 노무현 정부 참모들과 코드가 맞지 않아 중도에 그만두거나 견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 인사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들은 이미 과거 정권부터 일해 온 경제 관료이고, 또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 핵심들과 덜그럭거리는 일이 많았다. 또 공무원으로서 이전 정부에서 일했다고 이전 정부 인사라고 못 박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노무현 정부 당시 경제 관료들은 청와대 핵심참모들과 불화설이 적지 않았다. 윤증현 장관의 경우 금감원장 재직 당시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면서 노무현 정부 실세들과 갈등을 겪었다. 금감원장 재임 3년 동안 개각설이 돌 때마다 경질 영순위에 이름이 올라올 정도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이 그만큼 각별했던 덕에 경질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경제브레인 윤진식 의원도 노무현 정부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아 일하다 경질된 인사다. 윤진식 의원은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강행하다 민주당의 역풍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야인생활을 하다가 지난 대선 때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도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한덕수 전 국무총리다. 한덕수 전 총리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인사인 이해찬 전 총리가 국무총리로 일하던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 근무했다. 이때 이해찬 전 총리는 한덕수 전 총리를 “꼼꼼하게 일처리를 잘하고 업무를 조정하는 능력에 장점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경제부총리로 적극 추천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 전 총리가 국무총리직까지 물려받았다. 이후 정권이 바뀌었지만 한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4강 외교의 중심인 주미대사로 근무 중이다.
김서찬 언론인
친박 장관-친이 차관 ‘불편한 동거’
이명박 대통령이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총리는 조속히, 장관은 천천히 임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친박계의 핵심인 최경환 지경부 장관이 좀 더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지경부에 친이계의 실세이자 ‘왕차관’으로 불리는 박영준 2차관이 임명되면서 한 부처에 두 계파의 실세가 함께 근무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초 조용한 성격의 이재훈 장관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박영준 2차관이 실질적으로 지경부를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런데 이재훈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스타일이 강한 최경환 장관과 박영준 2차관의 동거가 시작됐다.
박영준 2차관의 힘은 여러 곳에서 발휘되고 있다. 지난 8일 있었던 대이란 제재안의 경우 정부는 당초 발표 직전까지 보안을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박영준 2차관이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란 제재안이 내일 발표된다고 언급하면서 각 부처에 확인을 요청하는 전화가 봇물처럼 몰려들었다. 관련 부처의 한 관계자는 “박영준 2차관이 지경부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란 제재안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지경부 내부에서는 장관과 차관과 알력이 발생할까 노심초사하면서 장관이 조기에 바뀌는 것이 조직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반면 최장수 장관이 자리 잡고 있는 국토해양부와 환경부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사업인 4대강에 속도를 더욱 내는 등 힘을 받는 분위기다. 정종환 국토부 장관과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정부 출범과 동시에 입각한 인사들이다. 당초 이명박 대통령이 1년 넘은 장·차관은 모두 교체대상이라고 언급, 교체 1순위로 예상됐으나 살아남았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야당 인사들이 대거 당선된 데 따른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야당과 지자체장의 반대를 극복하려면 정권 출범과 함께 4대강 사업을 해왔던 이들 두 장관의 전문성과 뚝심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실제 충남과 충북 등 일부 지자체는 국토부 등의 압박에 기존 계획 문제 발생시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조건하에 4대강 사업 정상 추진을 묵인하고 있다.
특히 국토부는 10월까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문화·종교단체, 지역 주민,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사업 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키로 하는 등 장관 유임 이후 반대파에 대한 설득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