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아그룹은 왜 사라졌을까? 당시 권력에 의한 강제해체설 등 여러 소문이 분분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룹 몰락의 근본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진은 최순영 회장. | ||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신동아그룹은 여느 재벌기업보다 큰 파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침몰의 이유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동아 침몰은 옷로비사건을 낳으면서 정, 재, 법조, 관가를 뒤흔들었다.
신동아그룹은 침몰 직전인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재계 서열 20위 안에 드는 탄탄한 재벌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대한생명을 비롯해 신동아화재, 신동아건설 등 알짜배기 계열사들이 많았다.
그러던 신동아그룹이 어느날 갑자기 공중분해된 것은 지금도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항간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세칭 ‘음모에 의한 몰락설’도 신동아그룹의 몰락이 너무나 극적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거대 기업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우그룹이나 현대 동아 등은 모두 그만한 배경과 원인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동아그룹의 몰락도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어떤 내막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는 신동아그룹이 왜 침몰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신동아그룹이 공식적으로 침몰하기 전, 전주곡에 가까운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는 점은 취재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동아 침몰의 전주곡(사실 당시만 해도 신동아그룹이 침몰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이었던 흥미로운 비화를 더듬어보자.
1998년 가을 무렵이었다.
기자는 전혀 안면이 없던 사람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호출한 곳은 강남에 있는 라마다르네상스호텔이었다. 그는 이 호텔 10××호실에 투숙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나자는 이유를 묻자 그는 “최순영 회장의 개인비리를 폭로하기 위해서”라고만 답변했다.
어떤 내용이냐고 캐묻자 그는 만나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당초 기자는 이 제보 전화에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사실 당시는 IMF 시절이라 이곳저곳에서 기업 비리에 대한 제보는 많았다.
어떤 제보는 얼토당토 않는 황당한 소재도 있었지만, 때로는 명퇴한 임원이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의 내부비리를 극비문서와 함께 전해주는 인사도 있었다. 이런 종류의 제보는 대부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언론을 이용해보려는)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제보자가 밝힌 호텔방으로 갔다. 그의 이름은 최아무개씨였다. 그는 자신이 재미교포라고 밝혔고, 최순영 회장과는 사업관계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류를 한 다발이나 내밀었다. 최 회장과의 사업내용을 입증하는 회사서류라는 것이었다.
서류에 적힌 회사 이름은 ××생수주식회사였다. 이 회사는 92년 무렵에 미국에서 설립된 것으로 최대주주가 대한생명이었고, 최순영 회장은 개인 대주주였다. 나중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회사는 90년대 중반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육각수’ 생수를 수입판매한 곳이었다.
4~5년 동안 사업을 수행하던 이 회사는 IMF 직전이던 97년 초반 무렵에 전격 폐쇄됐다. 육각수가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모았지만 의외로 판매실적이 부진해 적자를 내다가 결국 회사가 문을 닫게 됐다는 것이었다.
제보자인 최씨(재미교포 투자자는 10여 명에 달했다)가 최 회장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된 것은 신동아측이 생수법인을 없애면서, 투자자인 최씨 등에게 보상을 해주지 않은 때문이었다. 원금조차 건지기 어렵게 된 최씨 등은 수차례 최순영 회장과 협상을 벌였지만 제대로 응해주지 않자 회사 내부비리를 폭로키로 한 것이었다.
‘SWISS A BANK 112×××’
확인 결과 그것은 스위스의 A은행 계좌번호였다. 직감적으로 누군가의 비밀계좌라는 생각이 들어 최씨에게 계좌 부분을 질문하자 예상대로 그 계좌의 주인은 최순영 회장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최씨의 주장은 “생수회사를 통해 최 회장이 막대한 자금을 빼돌려 숨겨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계좌에 얼마만큼의 돈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대목이었다.
물론 이 부분은 1년 뒤 신동아그룹이 몰락한 뒤 최순영 회장이 법정에 서면서 밝혀졌다. 그 계좌에는 약 2억달러 정도가 숨겨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이 회수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씨의 제보내용을 취재하던 중 당시 신동아그룹은 또다른 사건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룹의 계열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김아무개 사장이 최순영 회장의 개인비리를 빌미로 수십억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아무개 사장이 그 같은 협박을 하게 된 이유도 미국에 설립했던 문제의 생수회사를 통해 최 회장이 자금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었다.
어쨌든 최아무개씨의 제보는 당초 생각과는 달리 엄청난 내용으로 점점 번져갔다. 그즈음 신동아그룹측은 언론의 취재망이 좁혀지고 있음을 알고는 협박을 하던 김아무개 사장을 검찰에 공갈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나 최순영 회장은 이 고발이 그룹의 공중분해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최 회장의 고발에 따라 검찰에 출두한 김아무개 사장은 최순영 회장의 개인비리와 그룹 경영비밀 등 극비사항을 진술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최 회장은 당초 고발인이라는 신분에서 검찰의 집중적인 조사를 받는 피의자로 둔갑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최 회장측은 김아무개 사장에 대한 보복은 고사하고 자신의 구명을 위해 뛰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그는 부인까지 동원해 법조계, 정치권, 권력층에 로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옷로비사건으로 번져가게 되는 단초가 됐던 것이다. 이 일로 김태정 검찰총장과 최고위층 인사들의 부인들이 줄줄이 사건에 연루되면서 큰 충격파를 던졌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수많은 권력층 인사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자 금융당국도 신동아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진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충격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신동아그룹은 경영공동화상황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주력회사인 대한생명은 IMF사태 이후 주가, 부동산값이 폭락하면서 BIS(자기자본비율)가 부도 직전상태에 놓여 있었다.
금융 당국은 99년 12월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사실상 정부가 신동아그룹을 접수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는 사실상 신동아그룹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이 이뤄지기까지는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신동아그룹의 몰락을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권력에 의한 강제해체라는 주장도 있고, 침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동아그룹의 몰락을 초래한 근본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선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