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금 20억 원을 두고 D 교회와 원로권사 P 씨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현재 P 씨는 조카에서 양녀로 입적된 C 씨와 C 씨의 남편 A 씨를 법적 대리인으로 위임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
양녀 C 씨는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에 “D 교회 관계자들이 연로한 어머니의 재산관리를 해준다고 회유해 졸지에 20억 원이 넘는 돈을 가로챘으며 교회측에 포섭된 또 다른 양녀 T 씨가 개입해 진실을 흐리고 있다”며 T 씨와 교회관계자 등 5명을 상대로 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양측이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등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확실한 진상은 검찰 수사가 진행돼봐야 알 것 같다.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20억대 헌금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오랫동안 D 교회에 출석하며 봉사해온 P 씨는 2007년 5월 양로원을 지으라는 뜻으로 15억 원을 헌금했을 정도로 깊은 신앙심을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P 씨가 상당한 재산가임이 교회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불거지기 시작했다. 사후 재산의 상당부분을 교회에 헌금할 의사를 밝힌 P 씨를 교회 측에서 회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장에 따르면 D 교회 사무장 K 씨는 P 씨로부터 당장 거액을 받아내 교회에 공을 세울 욕심에 그녀의 재산현황을 파악했고, 그 결과 차명계좌 등에 엄청난 금액이 예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법정대리인인 P 씨의 사위 A 씨는 “2008년부터 사무장 K 씨를 비롯한 교회집행부는 친생자도 없이 불편한 몸으로 혼자 사는 양모님을 돕겠다며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놨다. 차명계좌가 발각되면 다 뺏기게 되니 교회계좌로 돌려놓으면 상속세도 안내고 재산관리도 쉽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20억 원이 넘는 양모님의 예치·투자금 만기가 2009년 중 도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K 사무장은 ‘연로하셔서 돈 관리도 힘드실텐데 미리 교회가 재산관리를 하면 여러모로 편하다. 생활비를 지급하며 잘 돌봐 드릴 테니 교회 앞으로 재산을 돌려놓으라’며 양모님을 현혹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09년 3월 말경 K 사무장은 P 씨를 대동해 그녀가 거래하는 금융기관을 함께 방문하기에 이른다. K 사무장이 담당직원과 상담한 뒤 내민 서류에 P 씨는 자세한 영문도 모른 채 K 씨만 믿고 날인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같은 해 8월 14일까지 20억 6000만 원이 넘는 P 씨의 재산은 D 교회 명의의 금융기관으로 이체·입금됐다. 재산관리를 해주겠다는 K 사무장의 말을 믿은 P 씨는 재산을 교회명의의 계좌에 입금하는 것일 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약 보름 후 교회 주보에 P 씨가 20억여 원을 헌금했다는 광고가 게재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20억여 원을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뺏기는 기막힌 일을 당하게 된 P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P 씨는 20억여 원을 헌금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으나 교회 측에서는 헌금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격분한 P 씨는 조카딸에서 양녀로 입적된 C 씨 부부에게 “억울해서 잠도 못 잔다”며 하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양로원 사업을 위해 15억 원을 헌금한 것 외에는 일절 헌금의사를 밝힌 바 없다는 것이 P 씨의 주장이었다.
A 씨는 양모가 K 씨에게 속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P 씨의 자필문서를 기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P 씨의 자필 문서에는 “사무장 K 씨가 금융기관까지 따라다니며 금액까지 파악하고 헌금했다고 다 빼갔다. K 씨 종금사 담당직원과 소곤거리며 계좌번호까지 다 교회로 돌려놨다. K 씨가 내 돈 다 빼가서 세금도 못 내고 있다. 세금을 내준다며 세금고지서까지 갖고 갔다. 나는 헌금한다는 말도 입 밖에 낸 일이 없다. 모든 게 공로장로가 되기 위해 K 씨가 꾸민 짓이다. K 씨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결국 P 씨는 A 씨를 법적 대리인으로 위임해 서울중앙지법에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냈다. 이에 법원은 지난 6월 “피고 교회는 원고에게 7억 5000만 원을 반환하라”는 조정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친자가 없었던 P 씨가 핏덩이때부터 데려다 키운 또 다른 양녀 T 씨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A 씨는 “교회 측은 헌금을 빌미로 양모님의 재산을 착복한 것을 무마하기 위해 T 씨를 회유·매수했고, 돈에 눈이 먼 T 씨는 친자식처럼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고 심신이 미약하고 판단력이 상실된 양모님을 감금하고 겁박해 며칠 후 소송을 취하시켰다”고 격분했다. 특히 A 씨는 “T 씨는 양모님을 겁박해 소송을 취하해주는 대가로 교회 측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기고 양모님 사후에도 교회에 은닉한 재산 일부를 받기로 약속받았다”며 교회와의 결탁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P 씨의 고발장. |
A 씨는 “평생 근검절약하며 모은 재산을 교회계좌로 이체시킨 후 거동이 불편하고 청력감퇴로 심신미약상태에 있는 양모님의 재산을 헌금 명목으로 탈취하려는 술수다. 또 자신을 키워준 양모를 배신하고 교회에 매수된 T 씨가 공모해 꾸민 헌금 사기극이다”라고 성토했다.
하지만 A 씨 측의 주장에 대해 교회 측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K 씨는 9월 14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고소인측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교회가 헌금을 빌미로 개인재산을 가로채는 게 말이나 되며 있을 법한 얘기인가. P 권사님은 분명 헌금 의사를 밝혔고, 금융기관에서 날인한 것도 순전히 본인 의사에 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P 권사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느니 겁박에 의한 것이라느니 말도 안되는 음해를 퍼뜨리고 다니고 있다”고 항변했다. K 씨는 이어 “고소인 측이 돈에 눈이 멀어 말도 안 되는 음해를 하는 것이다. 온갖 악질 음해로 권사님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재산에 탐이 나서 꾸민 짓이다. 조만간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와 통화한 양녀 T 씨도 A 씨 측의 주장에 대해 “기가 막히다. 소를 제기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잘라 말했다. T 씨는 “20여억 원의 돈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교회 측이 어느 정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한 것은 맞다. 어머니는 그 돈이 교회로 넘어가는 줄 몰랐다고 하시고 교회 측은 만기가 되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고 하더라. 처음에 어머니가 ‘헌금으로 도둑 맞았다. 소송이라도 해서 찾아달라’고 내게 부탁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얘기를 나눠본 결과 헌금으로 인정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딸인 나도 반대 안 한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그 돈을 찾고 싶은 게 아니라 일 진행방식에 있어 K 씨에 대한 분노가 큰 것 같더라. 그래서 5억 3070만 원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그 후 어머니는 분명 ‘재판하기 싫다’며 소취하 의사를 밝혔고 그래서 6월 24일에 소가 취하됐다. 그런데도 고소인들은 그 돈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어머니는 ‘내가 찾을 마음이 없다는데 내 돈 갖고 저들(A 씨 부부)이 왜 저러냐’며 못마땅해 하셨다”고 주장했다.
T 씨는 또 “8월 13일 판사가 ‘원고위임장을 다시 받아오라’고 하자 A 씨는 불량배 5명을 앞세워 그 전날 어머니가 안 계신 집 담을 넘어 침입했고, 2200만 원과 어머니의 장부를 훔쳐가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경찰에 강도사건으로 신고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T 씨는 C 씨가 올 4월에 양녀로 된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에게 서류에 사인하라고 시켜 졸지에 양녀가 된 것이다. 어머니는 C 씨가 양녀로 입적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자필 확인서도 있다. C 씨는 사문서 위조 등으로 걸려있다. 이미 검찰에서는 유죄 입장을 밝힌 상태로 곧 판결이 나올 것”이라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T 씨는 “어머니는 그만 됐다고 하고 딸인 나도 가만있는데 저들이 소송을 하면서 한사코 20억을 받아내려는 의도가 무엇이겠나.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봐도 뻔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한 노인의 20억대 헌금을 둘러싼 양측이 첨예한 주장은 어느 쪽이 사실일까. 분명한 것은 어느 한쪽이 노인의 진의와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수사당국에서 이 할머니를 직접 만나 진의를 확인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