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재영 씨, 박찬구 회장, 박삼구 명예회장. |
지난 8월 30일 금호개발상사는 공시를 통해 금호가 장손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의 아들 박재영 씨가 금호개발상사 지분 6.25%(7만 5000주)를 금호피앤비화학에 전량 매각했다고 알렸다. 이전까지 금호개발상사에서 박재영 씨는 금호피앤비화학(지분율 50%) 금호알에이시(43.75%)에 이은 3대 주주였다. 이번 거래를 통해 금호개발상사의 최대주주인 금호피앤비화학은 지분율을 56.25%까지 끌어올리게 됐다. 거래가는 약 61억 6000만 원. 주당 8만 2150원이다.
그런데 금호개발상사가 비상장 회사인 까닭에서인지 일각에선 이번 지분 거래가격에 대한 적정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년여 전의 지분 거래가격과 비교되는 까닭에서다. 지난 2008년 11월 박삼구 명예회장을 비롯한 지배주주 일가가 금호렌터카에 금호개발상사 지분 22만 5000주(지분율 18.75%)를 주당 6만 6140원(총 149억 원)에 매각한 바 있다. 2008년 당시 금호개발상사의 당기순이익은 121억 6000만 원, 그런데 지난해 금호개발상사는 50억 8000만 원의 당기순손실(적자)을 냈다.
이와 관련해 좋은기업지배연구소(CGCG)는 지난 2일 리포트를 통해 “금호개발상사 영업이익이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9년 금호산업 지분 가치 하락 등으로 인한 161억 원의 지분법 손실이 발생, 당기순손실이 50억 원에 이르게 됐고 주당 순자산도 크게 감소했다”면서 “그럼에도 금호피앤비화학은 박재영 씨 지분을 2008년 11월에 비해 주당 1만 6010원이나 비싸게 매입했다”고 밝혔다. 즉 박재영 씨 지분을 금호피앤비화학에서 지나치게 비싸게 사줬다는 주장이다.
박재영 씨 지분을 사들인 금호피앤비화학은 금호석유화학이 지분 78.2%를 보유한 곳이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가 4남 박찬구 회장 계열의 회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총수일가는 지난해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지분 매입을 둘러싼 ‘형제의 난’ 갈등을 겪었으며 이후 대형 M&A(인수·합병) 후유증에 따른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 지난 2월 금호가는 3남 박삼구 명예회장이 금호타이어 등을 맡고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 부자와 금호가 2남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박철완 상무가 공동 경영하는 분리 방안에 합의했다.
이번 박재영 씨 지분 거래는 박재영 씨가 거액을 확보했다는 점과 함께 금호석유화학의 계열사 지배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여기에 박재영 씨 지분 거래가에 대한 적정가 논란이 더해지면서 박재영 씨와 박찬구 회장 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는 해석을 낳기도 한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과 미국인인 마거릿 클라크 박 씨의 아들인 박재영 씨는 현재 미국에서 예술 분야를 공부 중이며 애초부터 그룹 경영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금호가에선 그가 지닌 상징성을 간과할 순 없다. 지난해 형제의 난이 불거지기 전까지 금호가의 경영은 철저하게 ‘아름다운 형제경영’ 논리에 입각해 이뤄져왔다. 주요 계열사 지분도 고 박성용-고 박정구-박삼구-박찬구 4형제 부자가 균등하게 나눠가졌다.
금호가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에 이어 2남인 고 박정구 회장, 이어 3남 박삼구 명예회장이 차례로 회장직을 승계해온 만큼 원칙상 박재영 씨는 금호가 3세 중 총수직 승계 1순위 인사였다. 금호가에서 박재영 씨가 지닌 상징성을 고려할 때 박삼구-박찬구 형제 갈등 국면에서 박재영 씨가 어느 쪽에 서느냐가 이들에게 작지 않은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박찬구 회장이 박재영 씨에게 적극 손을 내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 것이다.
박재영 씨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한남동 자택을 담보로 박찬구 회장의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상무보가 은행 대출을 받을 정도로 박재영 씨와 박찬구 회장 사이는 가까워 보인다.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박철완 상무보와 박삼구 명예회장의 아들 박세창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도 박재영 씨 한남동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러나 형제의 난 발발 직후인 지난해 8월 7일 동시에 채무설정을 해지했다. 빚을 다 갚아 버린 것이다. 반면 박준경 상무보의 박재영 씨 집을 담보로 한 채무계약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연말 경영복귀설이 나돌고 있는 박삼구 명예회장이 박재영 씨 끌어안기에 나설지도 관심사다. 박삼구 명예회장의 총수 체제하에서 다른 총수일가 인사들의 계열사 지분율이 늘어갈 때 박재영 씨만 배제되면서 박재영 씨가 박삼구 명예회장 측과 소원해졌을 가능성이 재계 일각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 분야를 공부 중인 박재영 씨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관심이 클 것으로 보이기에 재단 경영을 맡아온 박삼구 명예회장과의 관계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시선 또한 뜨겁다. 게다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박재영 씨 선친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의 애착이 남달랐던 곳으로 현재 박삼구 명예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올 하반기 금호아시아나그룹 신입사원 공채가 금호석유화학과 별도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지난해 형제의 난 이후 등을 돌려온 박삼구-박찬구 형제의 갈등구도가 연말 박삼구 명예회장의 경영 복귀 여부에 따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룹 경영에 큰 관심이 없음에도 여전히 금호가 권력지형에서 중요한 변수로 주목받고 있는 박재영 씨가 어떤 숙부에게 더 큰 호감을 갖고 있을지, 재계 인사들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