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12개 대기업 회장들이 간담회를 가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최근 들어 대기업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여온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대기업 역할론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대놓고 대기업을 질타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 청와대는 이 발언에 대해 “20분 동안 인사말을 이어가던 이 대통령의 말이 엉키면서 정반대로 나온 것”이라 해명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오후 브리핑에서 “평소 대통령의 생각과 달라서 대통령에게 진짜 의도를 확인한 결과 ‘아닌 게’를 빠뜨렸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원래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 되는 것도 ‘아닌 게’ 사실입니다”라고 말하려던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신문 기자들이 방송 기자들에게 부탁해 방송 녹취 내용을 들어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청와대의 해명과 관련해 기자들 사이에선 “발언의 파장을 의식한 청와대가 재빨리 수습에 나선 것 아니냐” “대기업 비판하려던 이 대통령이 본심을 밝힌 것일 수도 있다” 같은 말들이 오갔다는 후문이다.
당초 이번 회동은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 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릴 예정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자칫 ‘대기업 군기 잡기’로 비칠까 싶어 없던 일이 됐다지만 이 대통령이 대기업을 향해 일침을 놓고 싶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인 셈이다.
이날 청와대에서는 이 대통령과 총수들의 자리 배치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청와대에선 13일 회동 일정을 사전에 각 기업에 통보했지만 해당 총수들의 일정을 미리 알 수 없는 터라 사전 자리 배치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전해진다.
결국 회동 당일 타원형 테이블에는 이 대통령 바로 오른쪽에 이건희 삼성 회장, 이 대통령 바로 왼쪽에 정몽구 현대차 회장, 이 대통령 맞은편에 구본무 LG 회장, 구 회장 오른쪽에 최태원 SK 회장, 그리고 구 회장 왼쪽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앉아 간담회가 진행됐다. 그런데 당초 계획된 자리 배치는 이와 달랐다고 한다. 이 대통령 맞은편 자리가 정몽구 회장 몫이었고 그 오른편에 구본무 회장이, 그리고 최태원 회장은 이 대통령 바로 왼편에 앉기로 돼 있었다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김승연 한화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
그런데 정몽구 회장 바로 왼편에 김승연 한화 회장이 앉은 점이 눈에 띄었다. 김 회장 왼편엔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이 자리했다. 이 대통령 오른편에 앉은 이건희 회장 바로 오른쪽 옆자리가 재계 7위 GS의 허창수 회장 몫이었음을 감안하면 재계 8위 현대중공업의 민 회장 자리가 13위 한화의 김 회장 자리보다 이 대통령에 가까워야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회동 이후 일각에선 “민 회장은 전문경영인이고 김 회장은 총수인 만큼 김 회장을 예우해준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올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행사에 자산총액 기준 국내 기업 12곳이 초청을 받게 됐는데 한화가 포함됐다고 전해진다. 한화는 재계 서열 13위지만 워크아웃 중인 12위 금호아시아나그룹 대신 초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김승연 회장이 해외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만큼 청와대가 G20을 앞두고 김 회장 챙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