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불교 조계종 개태사가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금동대탑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
충남 논산시 소재 조계종 산하인 개태사는 지난해 6월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국보 213호인 금동대탑에 대한 소유권 이전 청구소송을 냈다. 금동대탑은 155㎝ 크기의 탑 형태 공예품으로 현재 이 탑은 한남동 삼성 리움미술관 1층에 전시돼 있다.
이번 소송은 개태사가 금동대탑의 원주인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시작됐다. 개태사 측은 금동대탑이 고려시대(10~11세기) 전기에 만들어졌으며 본 소유자는 개태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측은 어떻게 금동대탑을 소유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금동대탑을 소유하게 된 경위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상태다. 이 전 회장이 생전에 문화재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고미술품을 사들여온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이 전 회장의 문화재 수집에 대한 열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 1963년 문화재 도굴범들이 대규모로 검거됐을 당시, 도굴꾼들에게 압수한 장물 문화재 대다수가 국립박물관에 접수됐었다. 하지만 대가야 금관으로 추정되는 관 등 일부 유물은 끝내 찾지 못했다. 이 금관은 8년 후인 197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호암컬렉션’이 특별 전시될 때 그 모습을 드러내 국보 13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금관은 이 전 회장의 형 이병각 씨가 도굴꾼들로부터 구매했으며 최종 구매자가 이 전 회장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병각 씨는 1966년 불국사 석가탑과 황룡사 초석, 통도사 부도 등을 파헤친 도굴범이 검거됐을 때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 씨는 이 사건에서 장물의 최종 취득자로 지목돼 개인소장품 226점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리움미술관이 보유한 문화재 중 하나인 금은아미타여래좌상도 이 씨가 소유했던 문화재다. 이 문화재도 당시 압수됐으나 가짜로 판명돼 이 씨가 다시 소유하게 됐다. 불교계에서는 이를 두고 “가짜라면 삼성이 보유할 필요가 없으니 반환하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전 회장이 수집한 문화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삼성문화재단이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며 이 중 대부분이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보 300여 점 가운데 이 회장 개인이 25점, 삼성문화재단이 12점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국보 개수로는 가장 많은 수치로 알려져 있다. 소유권 소송이 진행 중인 금동대탑도 삼성문화재단이 소유한 12점의 국보 가운데 하나다.
개태사 측은 소송을 제기하면서 “금동대탑은 사찰이 창건된 936~940년 이후 대대로 소유하고 있었으며, 개태사 소유의 땅에 묻혀 있던 것을 1980년대 초 발굴조사가 진행될 때 도굴꾼에 의해 반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태사는 “도난된 탑을 이병철 전 회장이 장물 취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미술계 복귀설이 돌고 있는 홍라희 전 리움 미술관 관장. |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법원은 일단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개태사 측에서 제기한 항소심에 대해 지난 9월 6일 “개태사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측하는 자료가 있으나 구체적인 제작연도나 소유자 등에 관해 아무 자료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6월 1심 재판부도 똑같은 판결을 내렸었다. 서울고법 측은 “입증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며 “미술관이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강제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940년에 창건된 개태사는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사찰을 유지해왔지만 탑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줄 사료는 찾지 못했다. 때문에 상고심에서도 원심을 뒤집는 판결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금동대탑 소유권 문제가 불교계와 삼성이 문화재를 둘러싼 다툼의 서막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삼성과 불교 측의 문화재 소송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6년에는 현등사의 사리와 사리구를 놓고 양측이 법정소송을 벌인 바 있다. 이때도 삼성문화재단 측은 “정당하게 취득한 것”이라며 반환을 거부했고, 법원 역시 “사리구를 갖고 있던 옛 현등사와 현재의 현등사가 같은 절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삼성문화재단의 손을 들어줬었다. 하지만 조계종이 소송에서 패한 뒤에 ‘현등사 사리 제자리 찾기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자 삼성 측은 사리구를 돌려줬다.
당시 조계종은 재판에 패소하자 종단 차원에서 조계종 내 사찰에 항의 펼침막을 내걸고 1000만 불자 서명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삼성 리움박물관 앞에서 사리 반환을 기원하는 대규모 법회를 통해 ‘삼성’을 압박할 계획이었다. 삼성문화재단이 재판에서 이기고도 결국 사리 반환을 결정한 것은 이러한 불교계의 반발로 인해 ‘삼성’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번 금동대탑 소유권 분쟁도 당시 사건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불교계 인사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계종 측은 사리구나 금동대탑뿐만 아니라 삼성 측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 중 불교계가 원소유권을 가진 것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지난 2002년 발간한 ‘불교문화재 지정현황 목록’에 따르면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불교 문화재는 무려 14점에 달한다.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이러한 문화재들은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갈등의 씨앗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종교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아내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의 역할론에 주목하고 있다. 홍 전 관장의 불심은 불교계 내부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홍 전 관장은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어머니 김윤남 씨의 영향을 받은 원불교인이자 불교 사찰에도 자주 참배해 불교 스님들과도 많은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해 법정스님이 입적하기 전 치료비 6400만 원을 대납한 사실이 알려지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2006년 현등사 사리 반환 당시에도 홍 전 관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불교계 내부의 정설이다.
홍 전 관장은 삼성 특검을 받으며 관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미술계를 중심으로 홍 전 관장의 복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올해 초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할 때부터 홍 전 관장의 복귀설도 함께 거론된 바 있다. 실제로 한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던 홍 전 관장은 최근 삼청동이나 청담동에서 열리는 미술전에 참석하는 횟수가 부쩍 많아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