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9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224조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은 지방의 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서 아무개 씨(여·49)였다. 서 씨는 친어머니로부터 존속상해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해 기소됐다가 무죄가 확정되자 어머니를 무고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라 서 씨의 고소건은 각하됐고, 결국 서 씨는 2008년 헌법소원을 냈다.
서 씨와 어머니 간의 갈등은 서 씨가 어린 시절이었던 수십년 전부터 시작됐다. 서 씨의 어머니는 서 씨가 세 살 때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입을 잡아 찢는가 하면 사망한 부친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부친이 살아 있는데도 허위로 사망신고를 했다며 전기드릴로 서 씨의 집을 부수고 들어오기도 했다. 또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가로채려 했다며 서 씨와 그녀의 주변인을 수차례 고소했지만 모두 무혐의로 종결된 적도 있다.
서 씨로서는 어머니로 인해 수십년 간 심각한 고통을 받아온 상황이었다. 낳아준 친어머니를 고소한 것은 서 씨로서는 어찌보면 최후의 선택이었다. 서 씨는 어머니에 대한 처벌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어머니가 치료감호 같은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소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행법상 부모에 대한 고소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날 헌재 공개변론에서는 형사소송법 224조가 헌법상 평등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지를 놓고 열띤 공방이 이어졌다. “부모를 고소하도록 하면 우리가 계승·발전시켜야 할 효 사상과 사회구성의 최소단위인 가족이 무너질 수 있다”는 법무부 측과 “서 씨는 지금도 친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 고소를 금지해 해결 방법이 없다. 부모 고소를 전면 금지하는 건 지나치다”는 원고 측 간에 팽팽한 공방이 벌어졌다.
직계존속 고소에 대한 공방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현재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모로부터 시달림을 받는다는 이유 등으로 부모에 대한 처벌을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법률상담소에는 존속고소와 관련된 상담이 적잖게 들어오고 있다.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 입사 5년차인 A 씨는 사생활이 문란하고 낭비벽이 심한 어머니로 인해 청소년기부터 큰 고통을 당해왔다. A 씨가 직장인이 된 후 어머니는 수시로 돈을 달라며 괴롭혔고 회사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급기야 어머니는 직장생활과 주식투자로 모은 1억 원을 몰래 출금해 달아났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B 씨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수시로 B 씨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폭력을 행사했으며 반항하면 기도원에 끌고 가 강제로 며칠씩 금식기도를 시키곤 했다. 급기야 어머니는 B 씨를 고등학교 자퇴시켰다. 어머니로 인해 학업도 중단해야 했던 B 씨는 지금도 걸핏하면 자살소동을 벌이며 자해를 시도하는 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직장인 C 씨는 청소년기부터 어머니로부터 ‘창녀’ ‘걸레’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왔다. 히스테리가 있는 어머니는 이혼 후 모든 스트레스를 외동딸인 C 씨에게 풀었고 그때마다 입에 담기 힘든 모욕적인 욕설과 폭행이 이어졌다. 어머니를 피해 서울로 와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회사로 찾아와 회사 직원들에게 C 씨의 욕을 해댔고 “남자관계가 문란하다”는 헛소문까지 퍼뜨렸다. 결국 C 씨는 퇴사 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D 씨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을 향한 아버지의 이유없는 폭력에 시달려왔다. 술만 마시면 아버지는 온 가족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했고, 평생을 아버지의 행패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D 씨는 결혼 후 가정을 꾸렸지만 아버지의 행패는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수시로 D 씨네 집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와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고 며느리는 물론 초등학생 손자에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고통을 참다못한 D 씨 부부는 정신과 치료를 권했지만 아버지는 “아들 부부가 나를 정신병자 취급한다. 정신병원에 처넣으려고 일을 꾸민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참다못한 D 씨의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 10년 만에 별거에 들어갔다.
부적절한 부모의 처신과 대우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자식들의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하지만 부모를 고소해서라도 자신들이 겪은 피해를 보상받길 원하는 이들은 형사소송법 224조에 가로막혀 여전히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계존속고소금지법은 ‘효’ 사상이라는 우리나라의 기본적 가치질서와 직계존비속 간의 관계유지와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이어져오고 있다. 조선시대 전통윤리의 법적 근간인 <경국대전>에서도 직계존속 고소를 금지하고 있다. 자식 된 입장에서 이유를 막론하고 부모를 고소하는 것은 존경과 사랑에 기초한 가족질서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직계존속 고소를 위헌이라 결정할 경우 전통윤리가 부정되며 고소가 남발될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합헌을 주장하는 이들은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 금지를 법으로 규정한 것은 가정의 붕괴를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헌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고소를 못 하게 한다고 해서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달성된다고 볼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주변에서는 부모자식 간 사소한 갈등에서 비롯된 앙금이 공권력 개입으로 이어지는 씁쓸한 일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3월에는 여대생이 어머니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어머니를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벌어졌다. 어머니는 대학 졸업반인 딸이 공무원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꾸짖으며 어깨와 팔을 꼬집고 목을 잡아 흔들었다. 출동한 경찰에게 딸은 어머니가 자주 손찌검을 했다며 강력한 처벌과 함께 ‘100m 접근금지 처분’을 요구했다.
2006년 성동경찰서에서는 백수 아들을 타이르다가 격분한 나머지 ‘박치기’를 한 아버지가 아들의 신고로 경찰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2007년 전남 부안에서는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며 폭행한 아버지를 아들이 고소한 사건도 있었고 2008년 춘천에서는 아들이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노리고 어머니를 허위로 고소한 패륜사건도 있었다.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자식간 사소한 갈등이나 의견차이가 무조건적인 고소로 이어지거나 나쁜 의도로 고소가 이용될 부작용도 있는 셈이다.
‘패륜’이냐 ‘기본권’이냐. 직계존속고소의 위·합헌 여부를 두고 헌재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