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계열분리를 통해 구본무 회장의 5촌 당숙인 구자홍 회장(현 LS그룹 회장)이 LG전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구본무 회장은 LG전자 대표 자리에 김쌍수 당시 부회장(현 한국전력 사장)을 앉혔다. 2007년 3월 남용 부회장이 바통을 이어받게 하면서 지난 7년간 구 회장은 LG전자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꾸려왔다. 그러나 지난 9월 17일 남용 부회장이 실적 부진 책임을 지고 LG전자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후임 대표이사로 구 부회장 선임이 결정되면서 LG전자는 오너경영인 체제로 재편되게 됐다.
LG그룹 안팎에선 그동안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행을 강력하게 희망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초 남용 부회장이 3년 대표이사 임기를 마치면서 구 부회장이 후임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결과는 남 부회장의 연임이었다. 일각에선 “그룹 내 일정 지지 세력을 갖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를 맡을 경우 후계구도가 복잡해진다”는 우려가 구 부회장의 LG전자행을 가로막아 왔다는 시각도 있다.
LG 오너일가가 구 부회장의 LG전자행을 결정한 배경엔 LG전자 위기설이 가장 컸다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최근 실적 부진으로 인한 LG전자 위기설이 부각되면서 오너경영인의 LG전자 복귀를 통한 위기 타파 가능성이 거론돼 온 것이다. 웬만해선 임기 중 대표이사를 교체하지 않는 LG가 구본무 회장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남 부회장을 중도 퇴진시키고 구 부회장을 앉힐 정도로 LG전자 사정이 절박했던 셈이다.
LG그룹의 굵직한 인사는 아직 구자경 명예회장의 손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명예회장이 가신인 남 부회장 대신 구 부회장의 새 LG전자 대표 발탁에 손을 들어준 것이 LG그룹 후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끈다. 현재 경영 수업 중인 구본무 회장의 양자 구광모 LG전자 과장은 아직 32세에 불과하다. 지주사 ㈜LG 지분율에서도 구 과장(4.72%)은 작은 아버지 구본준 부회장(7.63%)보다 2.91% 뒤진다. 아직 LG그룹이 후계구도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는 터라 구 부회장의 약진을 둘러싼 구자경 명예회장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구본준 부회장을 새 수장으로 맞이한 LG전자는 일단 남용 부회장의 색깔을 빼고 구 부회장 경영 스타일을 도입하는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남 부회장이 글로벌 기업화를 위해 파격적으로 등용했던 외국인 인사들 대신 그룹 내 ‘구본준 사단’이 대거 LG전자에 입성할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고개를 든다.
구 부회장이 남 부회장의 마케팅 위주 경영방식을 벗어나 오너경영인다운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라이벌 삼성전자에 맞서려 할 것이란 전망도 대두된다. 지난 2006년 말 구 부회장이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직에서 물러날 때 실적 부진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후 LCD 사업이 호황을 맞이하면서 구 부회장의 공격적인 설비투자 덕을 톡톡히 본다는 평가가 뒤를 이었다.
구 부회장이 과거 반도체 사업에 관심이 컸던 만큼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추진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LG그룹 측은 하이닉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전혀 관심 없다”고 일축해 왔지만 반도체 사업에 애착을 갖고 있는 오너경영인 구 부회장이 LG전자 CEO(최고경영자)가 된 만큼 하이닉스 채권단에서도 LG 측에 재차 러브콜을 보내려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