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찬들의 논산공장 | ||
해찬들의 대주주인 오형근 회장과 오정근 사장, 오 회장의 부인 이옥경씨 등 3인은 최근 자사 지분 50%를 갖고 있는 대주주인 CJ를 상대로 경업(競業)금지 의무 위반에 따른 주주간 계약해지와 주식매수를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한때 한집살림을 꾸리던 기업 간에 사이가 벌어져 법정으로 싸움이 옮겨붙은 것. 두 회사가 법정싸움으로 치닫게 된 사연은 이렇다.
CJ는 지난 2000년 2월, 해찬들과 합작투자계약을 맺었다. 장류 전문업체인 해찬들의 연구개발 제조능력과 CJ의 영업능력을 결합시키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1년 2월 초 CJ는 해찬들 대주주의 지분 50%인 22만8천 주를 5백29억원에 인수해 해찬들을 계열사로 편입하며 자본 제휴관계로 발전시켰다.
해찬들의 창업주 2세이자 공동 대주주인 오형근 회장과 오정근 사장, 오 회장의 부인 이옥경씨는 해찬들의 지분을 CJ에 넘김으로써 유동성을 확보하고, 장류식품에서 경쟁사인 대상이나 샘표식품에 밀리던 CJ는 장류식품의 구색을 갖추는 효과를 기대했다.
이후 CJ쪽에서 해찬들 경영진에 2명의 이사와 감사, 그리고 핵심 부서의 관리인력을 파견하면서 경영에 참여했다.
하지만 지분 제휴 이듬해부터 경영방향을 두고 양사 간에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CJ가 자사브랜드인 ‘다담’ 상표로 된장찌개 제품을 내놓으면서 해찬들의 고유 시장에 진출, 양사는 정면 충돌하게 됐다.
게다가 CJ는 해찬들이 내부적으로 중국 진출 브랜드로 정해놓은 상표를 먼저 등록한 사실이 드러나 양사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일단 해찬들에선 CJ가 당초 약속과 달리 주주간 계약의 핵심사항인 경쟁업종 금지 의무를 위반한 채 된장, 고추장 등 장류 식품을 제조, 판매했다는 점을 들어 계약파기를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해찬들의 기존 오너들이 CJ가 판매 조직 축소, 경쟁 제품 출시 등으로 해찬들을 안락사시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해찬들 쪽에선 애초 지분제휴관계를 맺을 때 대기업인 CJ가 지분제휴를 통해 해찬들의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장류제품의 개발과 제조, 상표 및 영업에 관한 내부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존립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로 계약서상 엄격한 경쟁업종 금지조항을 넣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찬들 창업자의 2세이자 현재 대표이사와 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오형근 회장과 오정근 사장 등 기존 대주주들이 보기에 CJ가 2003년 11월 ‘다담찌개전용된장’이라는 혼합장 제품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
이 다담찌개전용된장에는 원재료인 된장이 74%나 들어가 있는 ‘혼합장’ 식품으로 주주간 계약에 의해 제조 판매가 금지된 제품이라는 게 해찬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이 제품들은 CJ의 자회사인 CJ푸드시스템에서 제조 납품하는 제품으로 해찬들 ‘양념듬뿍쌈장’과 비슷한 형태의 용기와 디자인을 채택해 소비자들에게 마치 해찬들 제품이라는 혼란을 줬다는 것.
이것이 결국 기존 해찬들 오너들을 격분시켰던 것.
해찬들의 임직원들은 양사의 지분제휴관계 초창기부터 ‘판촉용 판매 조직이 와해됐다’, ‘CJ를 믿을 수 없다’는 보고를 오 회장 형제들에게 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지원본부장을 해찬들에 파견하고 있던 CJ에서 판촉 조직을 따로 둘 필요가 있느냐, 서로 윈윈하자며 할인점 등에서 영업하는 판촉 조직을 없애 버린 것 등이 경계심을 유발시킨 셈이다.
하지만 오 회장 쪽에선 이재현 CJ 회장 등 ‘오너들끼리의 합의’라며 지분제휴관계를 공식화했다.
두 회사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지난해.
현재 해찬들의 경영지원 본부장은 CJ에서 파견된 마케팅 이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해찬들은 중국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중국 발음으로 ‘하오찬드어’로 읽혀 우리말 해찬들 발음과 비슷해 ‘좋은 식품’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호찬득(好餐得)’이란 상호와 상표를 중국 현지에 출원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 생겼다. 중국에서 호찬득 상표가 ‘희걸청도식품유한공사’라는 회사에서 지난 2003년 3월 등록시킨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 상표 등록 분야도 ‘조미장과 조미품’으로 우리나라의 장류식품에 해당하는 분야다. 즉 해찬들의 중국 내 상표 등록이 원천적으로 막힌 것. 재미있는 점은 문제의 희걸청도식품유한공사는 CJ가 85.9%의 지분을 가진 중국 내 회사라는 점이다. 게다가 호찬득이라는 말도 중국어 생활권에선 쓰이지 않는 말로 우리말 해찬들의 뜻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조어라는 게 해찬들의 주장이다. 때문에 해찬들의 기존 오너들은 이런 기업 비밀이 내부에서 새나갔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 해찬들의 사장이 과장급 직원을 불러놓고 한 얘기가 CJ에 흘러들어가는 일도 생겼다. 현재 CJ에선 경영지원본부장 등 두 명의 이사와 한 명의 감사를 해찬들에 파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CJ에선 “해찬들의 기업 비밀을 빼돌린 적도 없고, 파견 직원들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CJ는 또 2000년 2월 맺은 주주간 계약에 의하면 “계약체결일 현재 기존 사업에 대해서는 경업금지의무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CJ가 다담이라는 브랜드로 찌개전용 ‘양념’을 출시해 판매한 것은 97년 12월부터였고, 이 제품은 ‘양념’이며 해찬들과 경합이 되는 ‘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CJ는 “현재 제기된 시비거리는 해찬들의 기존 대주주들이 펴고 있는 일방적인 입장에 불과하며 소송도 자신들의 이익침해 우려에 대한 억지”라고 주장했다.
CJ는 “해찬들측은 CJ홈쇼핑에서 해찬들 제품을 제외한 다른 장류제품을 팔지말라는 주장까지 펴고 있으며, CJ푸드시스템에서 해찬들에 장류제품을 공급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가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등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찬들은 “비록 CJ의 브랜드인 다담 제품이 예전부터 나온 제품이긴 하지만 해찬들과 계약을 한 이상 계속 팔려면 계약서 쓸 때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다담 제품을 리뉴얼하면서 사실상 된장 제품을 내놓은 것은 누가 봐도 계약서 내용을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해찬들의 오너 일가족은 변호사를 통해 지난 7월5일 법정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CJ는 이 사안은 CJ와 해찬들의 회사간 문제가 아닌, CJ와 해찬들의 기존 대주주인 오 회장 형제 간의 문제로 선을 긋고 있다. 회사간 대립이 될 경우 사안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때문에 해찬들 홍보 책임자가 이 사건에 대한 해찬들 차원의 보도자료를 내자, CJ에서 파견된 해찬들 감사가 “기존 주주들의 개인적인 문제에 왜 회사가 보도자료를 내느냐”며 반발하는 등 내부불화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CJ도 지난 4년간 해찬들의 경영 실상을 낱낱이 알고 있는 처지라 두 대주주간의 싸움이 본격화될 경우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