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무한도전> 사교댄스 미션 장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제공=MBC |
최근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뜬 동호회가 있다. 바로 직장인 밴드다. MBC의 ‘일밤 오빠밴드’를 비롯해 KBS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중년 남성들의 음악 본능은 많은 직장인들을 자극했다. 뒤늦게 악기를 잡는가 하면 잊었던 과거를 되짚어 다시 밴드활동을 시작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각 지역의 ‘직밴’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밴드이기에 민폐를 끼치는 회원들이 적지 않다. 교사인 K 씨(여·27)는 얼마 전 1년간 고락을 함께 했던 밴드를 탈퇴했다. 같이 활동하는 멤버 중 한 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다.
“아무리 친목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기타리스트가 전혀 연습을 안 해와요. 밴드는 한 사람만 처져도 합주를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곡을 다 연습해오는데 그분만 갖고 있는 미천한 실력으로 대충 때우기만 하는 거예요. 넉살이 좋아 준비를 안 해와도 ‘에이 다음에 하자’면서 넘어가는데 다른 분들은 유순해서 그런지 허허 웃고 말더군요. 전 친목의 목적도 있지만 한 곡씩 제대로 연습해가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막내라서 대놓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어렵고 해서 결국 혼자 나오기로 했죠.”
키보드를 맡고 있는 K 씨는 현재 다른 밴드를 알아보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꼼꼼하게 체크해 볼 생각이다. 그는 “일단 음악적 취향이 맞으면서도 열정적인 멤버들이 있는 팀이 좋다”며 “생각 없는 한 사람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잃은 것이 제일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산업용품 제조사에 근무하는 N 씨(38)도 직장인 밴드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멤버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전용 합주실이 있는 동호회도 있지만 저희 팀은 아직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매주 합주실을 빌려요. 시간당 1만 5000원 정도인데 보통 두 시간씩 합주하죠. 이럴 때는 한 사람이라도 지각하면 그 멤버를 기다리게 되고 그럼 실제 합주시간은 얼마 안 돼요. 돈 주고 빌리는 장소니 우리 팀 편의를 봐주지 않죠.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30~40분씩 꼭 지각하는 멤버가 있습니다. 몇 번 주의를 줬는데도 상습적으로 늦어요. 그렇다고 오래 같이 한 멤버에게 매정하게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정말 일찍부터 와서 손까지 풀고 준비하는 다른 멤버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면 그렇게 개념 없이 행동할 수 없을 겁니다.”
동호회는 일단 친목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다른 목적으로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금융업계의 P 씨(여·33)는 특히 ‘이성교제’를 노리고 모임에 나오는 직장인들이 가장 꼴불견이었다고. 수영 동호회 활동을 했던 그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 티가 난다고 이야기한다.
“대부분 회원들은 순수하게 수영이 좋아서 왔는데 그렇지 않은 회원이 있었어요. 이성 때문이었던 거죠. 대부분 안정적인 여자 회원들도 많고 하니까 끊임없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작업’을 걸더라고요. 보통 수영모임이 끝나고 술자리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작업남’은 이 술자리에서 제일 활동적이었습니다. 여러 사람한테 집적거린다는 소문 때문에 여성 회원들이 기피했는데도 포기를 모르더군요. 술버릇도 안 좋아서 조금만 마시면 목소리가 커지고 억지로 술을 권하는 등 다들 개념 없다고 싫어했는데 특별히 ‘강퇴’시킬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어서 그냥 은근히 왕따를 시켰죠.”
회원들끼리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귀는 단계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작업남’처럼 노골적인 행동을 하는 회원은 드물다는 것이 P 씨의 설명이다. 신체접촉이 많은 춤 동호회에도 무개념 회원이 있다. 살사 동호회에서 2년 활동한 그래픽 디자이너 O 씨(여·33)의 이야기다,
“보통 상대방이 홀딩 신청(춤 상대가 되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했을 때 거절하는 건 동호회에서 예의가 아니에요. 거절하면 용기 내서 신청한 상대방이 무안하기 때문이란 거죠. 그래서 자신이 추고 싶은 상대하고만 출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정말 거절하고 싶은 회원이 있었어요. 춤추기 직전에 담배를 피우고 오는 데다 몸에서 역한 냄새까지 났죠. 춤을 출 때도 동작을 오버하면서 은근히 몸이 닿도록 유도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살사는 남자가 여자를 리드하는 춤이잖아요. 그럼 따라가기 쉽게 해줘야 하는데 무리하게 해서 춤을 어렵게 만들고 금세 지치게 만들기도 했어요.”
가전업체에 근무하는 B 씨(31)는 신나게 운동만 할 것 같은 야구 동호회에서도 아웃사이더 같은 회원이 있었다며 왜 동호회 활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요일 아침에 잠자기 싫고 할 일 없어서 나온 거 아니거든요. 근데 꼭 와서는 연신 하품만 하고 뚱한 얼굴로 잘 뛰지도 않는 회원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 하나 때문에 팀 전체 사기가 떨어지기도 하죠. 실력 없이 의욕만 넘치는 회원도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의욕 없는 그 회원은 하기 싫은 표정으로 경기 내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디다. 결국 그 사람 그만뒀습니다만 솔직히 그만뒀을 때 다들 시원해 했습니다. 팀을 위해선 그 편이 낫거든요.”
직장인 동호회 활동은 또 다른 사회생활이다. 다른 사람과의 융화가 중요하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단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모임이지만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오랫동안 사진 동호회에서 활동한 회사원 S 씨(41)는 어딜 가나 기본적인 ‘동호회 예의범절’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라며 “어떤 모임이든 조금 안다고 해서 잘난 척을 하거나 함부로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는 것은 동호회 활동 의사가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