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신라호텔에서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 주최로 열린 조찬 포럼에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우리경제가 현재 경제정책의 한계에 부닥친 이유는 주력세대인 386이 정치적 암흑기에 저항운동을 하느라 경제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우리 경제는 IMF 사태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며 날카롭게 지적했다.
7월 15일
이 부총리의 발언 내용이 알려진 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수구적 발상” “보수적 발언” “현 각료의 작태” 등 온갖 비난을 쏟아놓으며 이 부총리를 공격했다.
7월 18일
이 부총리의 발언 이후 내재된 갈등이 일단 봉합되는 듯하던 상황에서 국민은행은 2002년 10월부터 2004년 2월까지 16개월간 이 부총리에게 매달 자문료 5백만원씩 주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재경부 장관을 마친 뒤 2년이 흐른 시점인 2002년 10월부터 국민은행의 요청에 따라 자문역을 해주었다고 시인했다.
7월 19일
이날 저녁 KBS 9시 뉴스에 쇼킹한 기사가 보도됐다. ‘재경부 장관 이헌재씨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뉴스는 과천 재경부 청사를 비롯해 언론사들을 들쑤셨다.
7월 20일 오전
이 보도는 이날 오전 재경부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면서 일단 상황이 종료됐다. 그러나 재경부 관계자는 “이 부총리가 사의설이 보도되기 하루 전인 지난 18일 자택에 머물면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전해 사의설이 전혀 뜬금없는 루머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이날 저녁 출입기자들과 만난 이 부총리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 등에 반대하며, 시장경제원리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7월 21일 낮
재경부 출입기자와의 면담에서 이 부총리는 권력의 중심에 뛰어든 세칭 386세대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열린우리당의 신진 중심세력들은 대통령에게 충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월 22일
이 부총리는 이날 오전 미리 예정돼 있던 과천 정례 브리핑을 돌연 취소했다. 정부 부처 기자실이 없어지면서 설립된 통합브리핑실에서는 이날 오전 이 부총리의 정례 브리핑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재경부 김광림 차관은 “특별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동안 특별한 안건이 없어도 정례 브리핑은 반드시 참석했던 이 부총리의 관례상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상은 최근 9일 동안 이 부총리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다.
이헌재 부총리. 그는 노무현 정부가 삼고초려 끝에 경제부총리로 영입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현 집권세력들과는 다른 경제논리로 정면 충돌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그의 최근 행보는 시장경제론 사수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분배문제에 치중하고 있는 현 집권층과 갈등을 빚고 있다. 그 같은 갈등이 뭉쳐 빚어낸 사건이 최근의 사의설 소동인 것으로 과천 관가는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 이 부총리의 사표설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이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사실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나 측근들은 “가능한 얘기”라는 반응이다. 이 부총리 자신도 사의설에 대한 진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부인하지 않았다.
그의 일정을 보면 사의를 표명한 시점이 대략 7월18일 밤부터 19일 오전이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이에 앞서 그는 시장경제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현 집권세력들과 보이지 않는 암투를 해오던 터였다.
그러던 중 지난 18일 국민은행측이 이 부총리에게 월 5백만원의 자문료를 지급했다는 사실을 발표했고, 이 문제로 곤경에 처한 이 부총리는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부총리의 사의표명에 대해 청와대는 처음에는 수리를 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일부 핵심 측근들이 지금 시점에 이 부총리를 교체하는 것은 경제상황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어 일단 사의표명을 반려했다는 것.
특히 청와대는 이 부총리를 퇴진시킬 경우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가 뒤따라야 하는 데다, 현재로선 이 부총리를 교체할 만한 대안이 없다는 점 사의표명을 반려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이 부총리를 퇴진시키면 현 내각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청와대가 삼각갈등을 겪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어서 이 부총리의 거취를 쉽게 정하기 어려웠다는 얘기.
그러면 그의 사의표명설은 어떻게 언론에 보도된 것일까. 지금도 많은 의문점을 남긴 사항중 하나는 이 부총리의 사의 표명을 보도한 KBS는 어디서 그 정보를 얻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재경부 차관도 부총리의 동향을 모르고 있었던 만큼 청와대에서 그 같은 내용이 나왔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사들도 있다. 청와대로선 공식적으로 사표를 접수한 것도 아닌 데다, 만약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면 대통령에게 직접 했을 가능성이 높아 정보 유출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어쨌든 현재로선 이 부총리가 사의표명을 한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가 반려했고, 이 부총리는 계속 집권세력과 갈등을 빚으며 자신의 시장경제 사수론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 이 부총리의 사의파동은 시장경제론과 분배론의 정면 충돌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일각에서 이 부총리의 이 같은 경제론에 정면 반발하고 있어 향후 양측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