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장 쪽에서 바라본 강원랜드 전경. |
춘천지검 영월지청에 따르면 피의자는 육군 대위 출신의 박 아무개 씨(37)로 수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협박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실제 암살을 시도한 정황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년 동안 수차례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며 수사기관의 표적이 되어 온 박 씨. 그는 ‘금전적 보상이 아닌 제도적인 보상을 원한다’며 암살시도를 1인 과격시위로 합리화하고 있다고 한다. 박 씨가 ‘대통령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범행을 시도한 배경 및 사건 전모를 따라가 봤다.
10여 년 전 27세에 육군 대위로 제대한 박 씨. 무난하던 그의 삶은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강원랜드 카지노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개업했다는 소식에 흥미 삼아 시작한 도박이 그의 인생을 ‘막장’으로 치닫게 한 것이다. 처음에 도박으로 수백만 원의 돈을 따자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카지노를 찾았다. 사건 담당 검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박 씨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강원랜드 카지노에 출입한 횟수는 무려 608회에 달했다. 1년 동안 100여 차례나 카지노를 찾은 셈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사채를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도박자금을 마련해 모두 18억 원을 탕진했다.
지난 10여 년간 도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박 씨는 올해 들어 문득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됐다. 사채를 끌어다 쓴 탓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18억 원의 거액을 변제할 길도 막막했다.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그는 어긋난 망상 속으로 빠지게 됐다. 강원랜드가 내국인 출입을 허용함으로 인해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 인생까지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때문에 박 씨는 지난 1월 국회의사당으로 찾아가 “내국인 출입 제한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라”며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자신의 손을 연거푸 내리 찍으며 소동을 피웠던 것. 그러나 그의 시위는 경찰에 의해 즉시 제지돼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첫 시도가 싱겁게 끝나자 박 씨는 6월말경 결국 ‘강원랜드 폭파계획’을 세웠다. 폭탄 장치를 카지노 곳곳에 설치해뒀고 버튼만 누르면 된다는 식의 협박 이메일을 강원랜드 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기고 있는 중독자들에게도 계획을 공공연히 알리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박 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됐고, 1심에서 징역 8개월이 선고됐지만 그는 혐의를 부인하면서 항소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임에도 박 씨의 범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박 씨의 피해의식은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등 더욱 대담해졌다. 검찰 조사에서 박 씨는 “강원랜드는 절반 이상이 국가의 돈으로 운영되고 사장 선임권도 대통령에게 있지 않냐”며 “국민들이 도박에 중독돼 수억 원을 탕진하고 있는 사례를 지켜만 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범행을 합리화하고 있다.
박 씨는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 암살계획’을 기술한 협박편지를 청와대에 수차례 보냈다. 편지에는 일간지를 통해 파악한 대통령의 일정과 정확한 살해 계획 날짜가 명시돼 있었다. 그의 살해 계획은 트위터에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내국인 출입을 제한하고 강원랜드 탓에 금전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지 않으면 대통령을 암살하고 할복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박 씨는 이러한 예고를 실제 실행에 옮기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예고한 날짜에 청와대 경내로 진입을 시도하다 상근 경찰에 의해 적발된 것이다. 그러나 협박편지에 기술한 내용과 달리 그는 당시 비무장 상태였기 때문에 암살계획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해 훈방조치 됐다.
그러나 박 씨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청와대에 협박 편지를 보냈고, 결국 트위터에 올린 글을 추적하던 수사기관에 의해 소재가 파악돼 검거됐다. 그의 집에서는 쇠구슬을 이용해 특수 제작된 새총이 발견되는가 하면 총기를 구입하려 애쓴 인터넷 검색기록도 발견됐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살인 예비죄 혐의로 박 씨를 구속했다.
박 씨를 수사하고 있는 담당 검사는 “아직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며 “조사 중인 사안이라 개인의 신변이나 추가 범행 등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제발 저 좀 출금시켜 주세요’
박 씨의 범행이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도박중독자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고 있는 강원랜드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박 씨의 범행은 합리화되기 힘들지만 그가 10년 동안 18억 원을 잃을 때까지 어떻게 카지노를 지속적으로 출입할 수 있었는지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랜드 측이 도박중독자에 대한 출입제한 규정을 철저히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강원랜드에는 내부 규정상 본인 또는 배우자가 출입제한을 요청하면 카지노 출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박 씨는 각서를 제출한 이후에도 카지노를 드나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전 재산이었던 500억 원을 탕진한 A 씨의 사연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또다시 도박중독자들을 묵인하고 있는 강원랜드의 운영 실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같은 강원랜드의 문제점은 통계상의 수치에서도 드러나 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인 김태환 한나라당 의원 측이 강원랜드로부터 제출받은 ‘영구적 카지노 출입제한 신청자의 재출입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강원랜드 카지노 개장 후 지난 8월 31일까지 자기 스스로 카지노에 대한 영구 출입제한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1만 2677명에 달했다. 하지만 자발적 신청자 중 29.6%에 해당하는 3760명이 다시 카지노를 드나든 것으로 확인됐다. 또 신청자 중 66%는 각서 제출 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다시 카지노를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랜드가 자발적 출입제한자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원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2006년부터 점진적으로 출입제한 규정을 강화해 실시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제한 기준 및 방지책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말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내 도박중독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도박중독은 정신 질환과 마찬가지로 본다”며 “지속적인 상담과 외부의 제재 혹은 관리 등이 있어야만 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