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휴원 사장과 홍성균 부회장. |
지난 7일 금융감독원은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에게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중징계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신한은행에 대한 조사 결과 라 회장이 차명계좌 개설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확인된 것에 따른 조치다.
라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 수위는 이르면 이달 말 혹은 다음 달 초에 열릴 제재심의를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만약 직무정지 같은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그는 효력 발생 시점부터 회장직을 수행할 수 없다.
지난 9월 2일 고문료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은 9월 15일 이사회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신한은행지부(위원장 김국환)가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5억 원 수수’ 의혹을 제기하자 이를 시인한 이백순 신한은행장의 입지 또한 불안해 보인다. 신 사장의 고문료 횡령 공방에 대한 검찰 수사와 금감원 종합 검사 결과에 따라 신상훈 사장과 이백순 행장의 거취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처럼 신한금융 서열 1, 2, 3위 인사들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신한 빅3’의 동반 사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금감원의 라 회장에 대한 징계수위가 확정되고 신한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되면 이들에 대한 퇴진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신한 빅3의 동반 사퇴론은 차기 신한 CEO, 빅3에 대한 하마평을 부추기고 있다. 먼저 신한 내부 인사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이다. 이 사장은 1982년 설립된 신한은행 창립 멤버로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동지상고(현 동지고) 출신이다. 라응찬 회장, 이백순 행장과 더불어 고졸 성공신화를 이룬 금융권 CEO로 꼽히는 인물이다.
신한은행 부행장이었던 지난해 초 이백순 당시 신한금융지주 부사장과 차기 행장 경합에서 밀린 이휴원 사장이 이번 신한금융 사태를 맞아 아쉬움을 털어낼 기회를 잡았다고 보는 인사들이 제법 많다. 정치권과 금융권에선 경북 포항 출신인 이 사장이 현 정권 들어 최고 실세로 군림해온 영일·포항 출신, 이른바 ‘영포라인’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보스 기질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 이 사장은 지연 등을 바탕으로 그룹 내 자파세력을 제법 두텁게 만들어 놓았고, 이는 라응찬 회장 측의 우려를 살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신한 빅3 공백을 대체할 내부 지지 기반도 탄탄한 셈이다.
반면 1953년생인 이 사장이 신한금융의 간판이 되기엔 너무 젊다는 지적도 있다. 1947년생인 홍성균 신한카드 부회장, 1950년생인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 등이 위에 있는데 이들도 모두 신한은행 창립 멤버다. 신한은행 입행은 1983년으로 이휴원 사장보다 1년 늦지만 은행권 근무 경력에서 앞서는 1951년생 서진원 신한생명 사장도 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서 사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이 대통령과 학연·지연이 닿아있다.
이휴원 사장의 나이를 걸림돌로 보는 금융권 인사들은 신상훈 사장과 더불어 신한 1세대 경영인으로 평가받는 한동우 전 신한생명 부회장,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홍성균 신한카드 부회장 등을 주목하기도 한다. 한 전 부회장과 홍 부회장은 1947년생으로 신한은행 창립 멤버이며, 1948년생으로 신상훈 사장과 동갑내기인 이 전 부회장은 한일은행 출신으로 창립 멤버보다 5년 늦은 1987년 신한은행에 들어왔다. 신한 빅3 공백을 메우기엔 부족하지 않은 연륜을 지닌 셈이다.
이들은 한때 신 사장과 함께 ‘포스트 라응찬’ 후보군으로 꼽혔지만 지난 2003년 신 사장과의 신한은행장 경쟁에서 밀린 이후 생명·카드 등 비은행 계열사로 옮겨야 했다. 라응찬 회장이 신상훈 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변방으로 떠난 셈이다. 한동우 이동걸 전 부회장은 각각 지난해와 올 초 퇴직했으며 홍 부회장만이 현직에 남아 있다.
과거 신한금융을 대표했던 이 인사들로 신한 빅3 공백을 메우게 될 경우 신한금융이 관치 논란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라 회장 계열이 아닌 인사가 신한금융을 이끌게 된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해 라응찬-이백순 등 고졸 CEO가 대세를 이뤄온 신한의 문화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동우 이동걸 전 부회장, 홍성균 부회장보다 선배인 이인호 고문의 차기 신한 CEO 입성 가능성도 일각에서 거론되기도 한다. 1943년생인 이 고문은 신한은행장을 거쳐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주사 사장을 지냈다. 다만 한동우 이동걸 전 부회장과 이인호 고문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인사들인 만큼 되돌아오더라도 과도기 수장 이상의 영향력을 갖긴 어려울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 왼쪽부터 류시열 이사, 이철휘 전 사장. |
지난 9월 2일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직에서 물러난 이철휘 전 사장도 시선을 모은다. 지난 6월 KB금융 회장 공모에 응했다가 어윤대 회장에게 패했던 이 전 사장이 다시 한 번 금융지주사 CEO에 도전할 가능성이 주목받는 것이다. 일본 정부 대장성 재정금융연구소 연구위원,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주 일본대사관 재경관(국장) 등을 거치며 신한금융 대주주인 재일동포들과 친분이 닿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신한은행이 신상훈 사장을 횡령 혐의로 고소한 날(9월 2일) 이 전 사장이 캠코 사장직 임기를 불과 4개월여 남기고 물러나면서 신한금융 CEO 도전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이 전 사장은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인척인 까닭에 KB금융 CEO 도전 당시 외압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 같은 정치적 배경이 혼란에 휩싸인 신한금융에 입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천우진 기자 wjchun@iyo.co.kr
재일교포 주주들의 대리전?
세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들은 표면상으로는 다른 것 같지만 사실상 같은 문제다. 결국 은행 권력의 주도권 다툼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차기 신한금융 회장 자리를 둘러싼 세 사람 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최근 일각에서는 ‘재일교포 주주들 간의 대리전’이라는,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이 사태를 조명하고 있다. 그 이유를 따라가 봤다.
신한금융 사태의 ‘일본 진원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신한은행의 역사를 되짚어봐야 한다. 신한금융지주는 재일교포 자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1950년대 일본에서 신용조합 등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한 재일교포들은 1970년대를 전후해 각종 규제가 생기며 사업 확장이 어려워지자 모국으로 눈을 돌렸다. 재일교포들은 1973년 교민은행 설립 추진위원회와 1974년 재일 한국인 모국투자기업연합회를 차례로 발족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7년 사단법인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본국투자협회)를 설립했다.
본국투자협회는 1977년 7월 자본금 5억 원으로 제일투자금융이라는 단기금융회사를 세웠다. 이후 1981년 한국 정부로부터 은행 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1982년 신한은행을 창립하게 된다. 당시 재일교포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했던 사람이 바로 이희건 신한금융 명예회장이다. 라 회장과 신 사장도 신한은행의 창립 멤버다.
현재 신한금융지주의 지분 내역을 살펴보면 BNP파리바와 국민연금이 각각 6.35%와 5.04%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다. 그러나 두 기관을 신한금융의 최대주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신한금융의 재일교포 주주들 5000명을 사실상 하나의 개체로 인식해 이들을 최대주주라 본다. 재일교포 주주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주식은 적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율을 모두 합하면 약 17%다.
게다가 이사회 구성원 12명 중 4명이 재일교포 주주다. 특히 재일교포들은 자신들이 신한금융을 창립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이들은 대부분의 사안에서 한목소리를 낸다. 때문에 신한금융에 미치는 재일교포들의 영향력은 지분율 17% 그 이상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재일교포 주주들 사이에서도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재일교포 주주들이 1세대를 넘어 2세대, 3세대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권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지금도 매년 연말 신한은행에서는 재일교포 주주들을 초청해 송년회를 여는데 1세대뿐만 아니라 2, 3세대들까지 대를 이어 참석한다. 하지만 이희건 명예회장이 영향력을 발휘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사안마다 주주들의 의견이 갈린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재일교포 주주들 간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점을 지난 2002년 이 명예회장과 그의 아들인 이승재 전 부회장이 배임 혐의로 일본 경찰에 구속됐던 시점을 꼽았다. 당시 이 명예회장 부자는 도덕적 타격을 입고 재일교포 주주들의 신뢰를 잃었다. 결국 주주 1세대의 끈끈함이 2, 3세대로 넘어오면서 점차 약해져갔는데도 이를 유지시킬 구심점이 사실상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일본 내에 존재하는 지역갈등이 이 균열을 가속화했다고 한다. 현재 재일교포 주주들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 살고 있다. 재일교포 사외이사 4명 중 도쿄에 2명이, 오사카와 나고야에 1명씩 거주하고 있다. 이들 사외이사들은 해당 지역 교포 주주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영호남 갈등처럼 일본에도 지역갈등이 존재한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조 아무개 씨는 “개개인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특히 오사카 쪽에 사는 사람들은 도쿄 쪽의 사람들을 쩨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인 나고야 사람들은 오사카, 도쿄 사람들과는 또 다르다”고 말했다.
현해탄을 건너와 동고동락하던 1세대와는 달리 오사카 도쿄 나고야 등지에 떨어져 사는 2, 3세대들은 일본 내 지역갈등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일본 신한은행 쪽 사정에 밝은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번 신한 내분 사태도 일본 내 주주들 간 역학구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된다고 말한다. 즉 창립멤버인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퇴진과 차기 회장 선정에 대한 물밑작업이 시작되면서 재일교포 주주들 간 균열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사카 지점장을 역임했던 신 사장은 오사카 주주들의 지원을, 라 회장과 이 행장은 도쿄 측 주주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한은행이 신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 이후 이 행장이 일련의 사태를 주주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분위기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신한금융의 한 관계자는 “이 행장이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에는 ‘신상훈 동정론’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도쿄 방문 때에는 해임안에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 금융청에서 최근 신한금융 일본법인에 대한 검사에 들어간 것도 재일교포 주주들 간의 갈등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은행이 신 사장을 업무상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일본 내 일부 주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 행장에 대한 직무정지 소송을 한 것을 보면 일본 측 주주들이 무언가를 준비해 온 느낌을 준다”며 “이런 점으로 미뤄 보아 이번 신한은행 내분 사태는 재일교포 주주들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