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이 롯데건설에 대한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사진은 서울 잠원동에 위치한 롯데건설 본사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날 세무조사에 대해 국세청 측은 함구를, 롯데건설 측은 ‘정기조사일 것’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특별조사를 전담으로 하는 서울지방청 조사4국이 나섰다는 점, 협력업체들에 대한 동시 조사가 이뤄졌다는 점 등으로 미뤄보아 이번 조사가 단순 정기 조사가 아닐 것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롯데건설에 대한 전격 세무조사 배경을 취재했다.
롯데 측과 재계는 물론이고 국세청 내부에서도 이번 세무조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이번 세무조사의 규모 또한 일반적인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이 국세청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예치조사에 동원된 인원만 80명이 넘는 데다 지역에 있는 롯데건설 하청업체와 동시에 이뤄진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정기세무조사가 통상 4~6주 기간 동안 3개년 자료에 대해 이뤄지는 것과 달리 이번 세무조사는 약 12주간 5개년 자료에 대해 조사가 진행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롯데건설 세무조사에 대해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5일 이뤄진 예치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롯데건설 본사와 함께 예치조사를 받은 지방 하청업체는 총 세 곳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국세청이 대형 건설업체의 하청업체를 조사하는 경우는 비자금 조성이나 세금 탈루가 주로 하청업체와의 장부 조작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할 때다. 특히 해당 하청업체 중 한 곳은 성남에 위치한 조경업체. 국세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조경업체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나무를 공급하는데, 다른 건축자재와 달리 이러한 조경용 나무의 경우 가격책정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비자금 조성 창구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세청은 롯데 측이 하청업체에 불공정거래를 강요하거나 허위 또는 과대 세금계산서 발행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탈루 행위를 했는지 조사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여기에 최근 몇 달간 청와대 측에서 판단하기에 롯데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만한 악재들이 터진 것도 세무조사의 또 다른 배경으로 추측된다.
청와대 민정실의 한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경영 바람이 불면서 청와대나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대형 건설사들의 하청업체에서 넣은 투서가 많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롯데건설과 관련한 투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사 CEO(최고경영자) 출신인 대통령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워낙 자세하게 알고 있어 이런 투서를 보고 크게 화를 냈다”고 귀띔했다.
이외에도 이 대통령이 지난 7월 22일 서울 화곡동 포스코 미소금융지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 아무개 씨가 “롯데캐피탈로부터 40~50%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란 바 있다. 비록 정 씨가 말한 곳이 실제로는 롯데캐피탈이 아닌 대부업체인 것으로 드러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대통령은 이날 대기업 계열 금융사의 고금리 관행에 대해 불호령을 내렸다. 이런 여러 정황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이번 세무조사와 관련한 뒷말이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세무조사가 갑작스럽게 시작되자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의 숙원사업이었던 제2롯데월드 건설 인허가에 큰 역할을 한 전직 롯데 임원이 인허가 이후 ‘토사구팽’ 당했는데 이 임원이 이 대통령의 고려대 동기여서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다는 식의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없으나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번 롯데건설의 세무조사는 다른 대기업들에도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국정 기조 중 하나로 ‘공정사회’를 내세웠다. 이후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대기업을 향한 대대적 사정 바람이 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가 곧 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런 우려를 일축했고 기업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검찰이 한화그룹 비자금 수사, 고양 식사지구 재개발 관련 수사를 시작한 데 이어 국세청마저 롯데건설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까지 벌이고 나서자 대기업들이 다시 긴장 모드로 바뀐 것이다. 특히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협력업체와의 불공정 거래를 잡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건설업체들에까지 조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대기업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또한 이현동 국세청장이 취임 전부터 이 대통령의 정책을 잘 뒷받침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는 점도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가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실제로 국세청은 대기업 계열 금융사의 고금리가 문제가 된 지 2개월 만에 아주캐피탈에 대한 세무조사에도 착수했다. 대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이어 국세청의 세무조사까지, 대기업에게는 그야말로 ‘사정의 계절’이 찾아온 셈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납세자의 날 훈장도 받았는데…
국세청은 롯데건설에 대한 세무조사와 함께 아주그룹 계열 여신금융업체인 아주캐피탈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국세청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건설에 대한 예치조사가 이뤄진 지난 5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 10여 명은 서초동에 있는 아주캐피탈 본사를 찾아 각종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들을 압수했다.
지난 1994년 설립된 아주캐피탈은 아주그룹 계열사로 아주그룹이 74.5%, 신한은행이 12.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주캐피탈은 2006년 정기 세무조사를 받았다. 2007년 납세자의 날에는 대주주인 아주산업이 석탑산업훈장을 받아 아주캐피탈 역시 3년간 세무조사를 유예받기도 했다.
국세청은 아주캐피탈이 그룹과의 비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한 흔적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선 국세청이 이번 세무조사를 통해 아주캐피탈의 자금 출처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그룹 내 다른 계열사로 조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