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전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며 추징금 1672억 원의 납부를 거부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월 14일 스스로 300만 원을 납부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강연료로 소득이 생겼다”며 ‘자발적인 납부’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납부 시점과 외부적인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진짜 속사정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납부 시점이다. 검찰이 가장 최근에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을 집행한 것은 2008년 3월이다. 은행계좌에 잠자고 있던 전 전 대통령의 돈 4만7000원을 채권 추심으로 추징한 것이었다. 극히 미미한 금액이었지만 검찰은 3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추징 시효 기간인 3년 동안 추징금 집행 실적이 없으면 추징 시효가 만료되고 더는 추징금을 집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효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왜 전 전 대통령은 자진해서 300만 원을 납부했을까. 이를 놓고 법조계에선 전 전 대통령과 검찰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우선 전 전 대통령으로선 통상 검찰이 추징금 납부 기간이 끝나기 전 강제 집행 절차를 실시해왔다는 것을 감안해 만에 하나 있을 ‘불상사’를 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역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부진한 추징금 징수를 바라보는 여론이 따가운 상황인지라 소액이라도 변제해 기간을 연장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이번 납부로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시효는 2011년 6월에서 2013년 10월로 늦춰졌다.
전 전 대통령처럼 추징금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례는 20여 건이 넘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고액추징금 미납자 명단’에 따르면 100억 원 이상 고액 추징금 미납 사례는 개인과 법인을 포함해 모두 24건으로 나타났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는 이 가운데 다섯 번째다. 1위부터 3위까지는 옛 대우그룹 임원들이 차지했다. 이들 세 명이 납부하지 않은 금액은 무려 23조 원으로 전체 추징금 총액(24조 1208억 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4위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자금관리인으로 알려진 김 아무개 씨(1963억 원)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