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의 한 장면. |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하는 C 씨(30)는 점심시간과 퇴근 후 혹은 외근시 짬을 내서 악기 연습실을 찾는다. 얼마 전부터 속 시원한 취미를 찾아낸 것이다. 그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늘 두통과 위장병에 시달려왔지만 취미를 시작한 이후론 증세가 호전됐단다.
“항상 가슴 속이 답답했어요. 직장생활은 늘 똑같고, 스트레스는 여전했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참고 지내다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해 트럼펫 연주 동영상을 봤는데 굉장히 멋지고 즐거워 보이더군요. 며칠 고민하다가 트럼펫을 구입하고 두 달간 학원을 다녔습니다. 전문 연주자가 되려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론 혼자 연습하기로 했어요. 회사 근처 악기 학원에 비는 방을 빌렸습니다. 헬스클럽이랑 비용이 비슷하더군요. 이제는 틈만 나면 방음 잘된 방에 가서 빵빵거립니다. 그렇게 30분 이상을 불어대면 속도 시원하고 높은 산에서 소리를 지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주가가 요동을 칠 때마다 초조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었던 C 씨다. 이제는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트럼펫 불러가자’고 스스로에게 주문하고 진정시킨다. 그는 “트럼펫을 하면서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며 “일부러 회사 근처에 연습실을 잡은 것도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C 씨와 같은 금융권의 J 씨(여·26)도 현재의 극복방법을 알기 전에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에다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막내의 설움을 풀지 못해 늘 답답했다. 그런 그녀의 탈출구는 ‘춤’이었다.
“하루는 다음날 회사 갈 생각에 우울해 하고 있다가 음악을 틀었어요. 순간적으로 크게 틀고 몸을 움직이니까 신나더라고요. 그러다 주말만 되면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 바에 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죠. 원래 춤을 춰도 되는 가게였지만 사실 이전에는 춤추러 오는 손님도 별로 없던 가게였어요. 일부러 한적한 가게로 골랐거든요. 저 혼자 미친 듯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다른 손님들도 왔다가 춤을 추기도 하더군요. 가슴이 울릴 정도로 쿵쾅거리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 땐 무아지경에 빠지죠. 그랬더니 하루는 가게 직원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더군요. 직원들끼리 그게 너무 궁금했었다나요.”
J 씨는 그렇게 주말을 신나게 보내면 다음 한 주가 활기차다고 이야기한다. 회사에서의 어두웠던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그는 “일주일 전부터 살사 동호회에 들었다”며 “춤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우울증도 완벽하게 날려버릴 생각”이라고 전했다. 운동용품 회사에 근무하는 L 씨(여·31)는 경제적인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많은 여성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인터넷 쇼핑몰을 보면서 정신없이 ‘사재기’를 했던 때가 있었어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지르고 봤죠. 사진을 좋아하는데, 비싼 장비만 보면 갖고 싶어서 안달을 했고 갖고 나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우울해져서 비싼 물건을 사들였죠. 심지어 카드 현금서비스까지 받아 소위 말하는 ‘돌려막기’까지 했었어요. 이후 정신을 차려서 지금은 경제적인 소비를 합니다. 대신 확실하게 스트레스를 풀죠. 삼청동같이 산책하기도 좋고 구경할 거리도 많은 동네를 골라 다니면서 좋아하는 사진도 찍고 소소한 소품이나 액세서리를 사 모으고 있어요. 집에 와서 구입한 소품들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면 우울함이 싹 사라져요.”
외식업체에 근무하는 K 씨(여·26)한테는 예쁜 조각 케이크가 우울증 치료제다.
“첫 직장 생활이라 적응이 잘 안되어 그런지 우울한 사람이 돼 버렸어요. 안 좋은 생각들과 답답한 마음이 자꾸 쌓이기만 했죠. 어느 날 커피를 마시다가 생전 주문하지도 않던 맛있는 조각케이크를 먹게 됐어요. 달고 맛있는 케이크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면서 꽤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우울할 때마다 단 음식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랬더니 입사하고 나서 7㎏이나 쪘어요. 단 걸 먹는다고 짜증나는 상사가 갑자기 친절해지는 건 아니지만 일단 그때 기분만은 좋거든요. 이제 예쁜 케이크 가게 찾아다니는 게 취미가 됐어요. 가면 다 먹지도 못하면서 일단 3~4개를 주문하고 봐요.”
팬시 디자이너 E 씨(여·31)는 여행으로 우울함을 달랜다. 어릴 때는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훌쩍 떠났었지만 지금은 직장생활하면서 그럴 순 없는 노릇. 주말과 휴일, 휴가는 반드시 여행을 떠난다고.
“체질적으로 한 곳에 묶여 있는 게 답답한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회사에선 그러질 못하니까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어요. 이제는 주말이면 무조건 떠나고 봅니다. 낯선 환경이나 탁 트인 곳에 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야근일수가 모이면 휴가가 늘어나니까 나중을 생각하면서 야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연·월차를 모아서 열흘 이상 해외에 나갔다 오기도 해요.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의욕이 넘쳐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M 씨(29)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우울증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려 왔었다. 불안한 마음은 불면증을 불러왔고, 알코올 중독까지 이어져서 회사 생활에도 지장을 줬단다.
“정신과에서 우울증 약까지 처방받았지만 나아지질 않더군요. 몸은 점점 망가져가고 회사 생활도 엉망이었어요. 그러다 친구의 충고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잠깐 달리는 것도 힘들고 금세 무기력해졌지만 조금씩 달리는 거리를 늘려갔고, 아무도 없을 땐 달리면서 소리도 마구 질렀어요. 그랬더니 속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몸을 혹사시키면서 땀을 흘릴수록 우울한 기분도 잊히더군요.”
20대 후반의 M 씨처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직장인 P 씨(35)도 운동을 권한다. 처음 중소기업에 입사해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1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물류배달 닥트공사 등 몸 쓰는 일만 했었다. 이후 스스로도 눈빛이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고. 현재 무역회사에 다니는 P 씨는 우울증에 고생하는 이들에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쓸데없는 생각으로 우울증만 깊어진다”면서 “운동이든 일이든 땀을 흘리면 생각이 달라지고, 몸이 달라진다”고 조언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