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강대 홍모모델로 깜짝 등장한 박근혜 전 대표. |
정치인의 광고 출연에 대해 정치전문가들과 광고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득과 실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명 정치인들의 광고모델로서의 ‘점수’는 몇 점이나 될까. 또 정치인으로서 광고모델로 나서는 것은 과연 ‘표심’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정치인과 광고 출연, 그 사이의 미묘한 함수관계를 한번 들여다봤다.
외국의 경우 정치인이 파격적인 광고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보수적인 정서가 앞서는 듯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학교 홍보모델 출연이 화제를 불러올 만큼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정치인의 광고 출연은 그 자체만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 박 전 대표는 최근 모교인 서강대학교 홍보 광고의 모델로 등장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서강대 자연과학부와 공학부의 2011년도 입학생을 모집하는 신문 전면광고에 홍보모델로 사진이 실린 것. 박 전 대표 사진 옆에는 조그맣게 ‘74년 전자공학과 졸업’이라고 씌어 있고, 특히 ‘서강대학교 이공계가 대한민국을 이끌겠습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눈에 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이끌겠습니다’라는 표현은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져 정가의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 광고를 놓고 내부 검토를 통해 선거법 위반(사전선거운동) 여부를 따져보았다고 한다. 사전선거운동이란 ‘선거운동기간 전에 특정 선거에서 특정 입후보 예정자가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선거운동기간 전에 이를 행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결국 중앙선관위 측은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선거운동으로 보기 어렵다. 일반적인 신입생 유치 광고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선관위의 공식 해석이 나오기까지 내부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고. 이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박 전 대표 측은 “서강대학교로부터 연락을 받고 취지가 좋아 사진을 제공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모교를 위한 일이어서 광고료는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몇 년 전에도 박찬욱 감독 등 서강대 출신 몇몇 인사들과 함께 서강대학교의 광고모델로 등장한 바 있다. 박 전 대표 측에서도 이미 한 번 학교 모델을 했었는데 이렇게 논란이 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광고전문가들은 “박 전 대표의 ‘브랜드가치’가 여느 유명스타 이상이기 때문에 광고 모델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이 광고 모델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델 선호도 등에 대한 광고업계의 조사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지만, 광고모델로서의 가치와 상품성을 평가하자면 연예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광고업계의 대체적 평가다. 더구나 “일반 정치인과는 ‘급’이 다른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의 ‘상품성’은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분석. 서강대학교 측도 박 전 대표를 홍보모델로 ‘활용’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논란을 불러온 것이 더 큰 광고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실제로 논란을 일으켜 광고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노이즈마케팅’ 기법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 2006년 지선을 앞두고 정수기 모델로 출연한 오세훈 시장. |
그 해 5·31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오 시장의 정수기 광고가 선거일 90일 전에 해당되는 기간 동안 방영되었다는 점 때문에 당시 열린우리당이 오 시장을 고발한 것. 결국 검찰은 광고 방영 당시 오 시장이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당시 정치인의 상업광고 출연 여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었다.
오세훈 시장의 정수기 광고 출연은 당시 박근혜 전 대표 피습사건과도 ‘연루’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지방선거 유세 중 박 전 대표 얼굴에 상해를 가했던 지충호 씨가 범행 동기에 대해 “오세훈 후보를 노렸다”고 진술했던 것. 공교롭게도 지 씨가 오 시장이 광고 모델로 출연했던 정수기 회사에 취직해 일하다가 그만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일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광고 출연으로 잡음이 불거지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오 시장은 정수기 광고 출연으로 이미지 메이킹 측면에선 톡톡히 효과를 얻었다. 광고 속에서 다리를 높이 들거나 양쪽으로 넓게 벌리는 다소 어려운 필라테스 동작을 선보이며 건강하고 활기찬 ‘젊은 주자’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었고, ‘세상도 속 보이는 얼음처럼 투명하게’라는 문구와 함께 깨끗하고 청렴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 광고 전문가들도 “당시 정수기 광고가 몇 개월 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 시장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홍보효과 면에서 정치 광고에 비해 상업광고가 정치인 개인의 이미지 메이킹에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정치인의 상업광고 출연 1호를 기록한 이는 박찬종 전 의원이다. 1992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당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한 우유회사의 ‘무균질 우유’ 광고에 출연해 순수 정치인 상업광고모델 첫 테이프를 끊었다. 박 의원은 이 광고로 인해 ‘무균질 정치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얻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박찬종 전 의원이 1993년 TV 광고모델로 데뷔하면서 정치인의 광고 출연에 대해 논란이 시작됐다. 당시 세간에선 ‘참신하고 친근감 있다’는 긍정적 평가와 ‘(공인으로서) 부적절해 보인다’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렸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광고모델 제의를 받고 거절한 바 있다. 1994년 초 모 의류업체로부터 박지원 당시 민주당 대변인에게 남성복 모델 제의가 들어온 것. 이 회사는 30~40대 남성 모델 중 중후한 이미지의 모델을 물색하다가 모델에이전시로부터 박지원 의원을 추천받고 섭외를 했다고 한다. 당시 박지원 의원은 50대 초반(51세)의 나이였지만 깔끔한 외모에 패션업계에서도 옷을 잘 입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박 의원은 결국 이를 거절했으나 당시 여러 명의 측근들에게 의견을 묻는 등 광고 모델 제의에 대해 고심했었다는 후문이다.
그런가 하면 ‘자동차 모델’로 데뷔했던 정치인들도 있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선거캠페인에서 ‘눈물 광고’로 큰 효과를 거두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1년 8월 ‘대우자동차’의 신문광고 모델로 출연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 신분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우자동차의 요청을 받고 무료 모델로 나섰다고 한다. 또 신영국 전 의원(현 문경대학 총장)도 지난 2004년 대우자동차의 경차 마티즈 모델로 출연한 바 있다. 국회 건설교통위원장 출신인 신 전 의원은 의원 시절 실제로 마티즈를 직접 운전하고 다녀 ‘마티즈맨’으로 불릴 정도로 청렴한 의원으로 이름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치인의 광고출연은 그 ‘의도’가 좋을지라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오 시장 외에도 몇몇 정치인들이 광고 출연이 상대당의 공격을 받은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지난 97년(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국회의원) 에너지관리공단이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위해 만든 TV 공익광고에 출연했다가 제1 야당인 국민회의 의원들의 거센 반발로 단 하루 만에 하차해야 했다. 대선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어서 국민회의 의원들이 ‘특정정당 소속 의원이 좋은 이미지의 공익광고에 나오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항의했기 때문. 지난 92년에도 탤런트 출신 민자당 이순재 의원이 서울시의 쓰레기 재활용 캠페인 광고모델로 선정되자,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관련 공무원의 교체를 요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이는 광고가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함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 광고컨설팅 전문가는 “어떤 상품을 홍보하는 상업광고와 달리 공익광고의 경우 광고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출연 모델의 이미지 상승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공익광고 출연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홍보효과 면에서 가장 극대화된 방법이 광고 아니겠느냐. 특히 공익광고 출연은 잠재적 유권자들에게 신뢰감 높은 이미지를 주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날로 ‘진화’하는 광고세계에서 향후 또 어떤 정치인들이 특급모델로 등장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상품 홍보야, 모델 홍보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규안내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유광고 출연 얼마 후 한 전자제품 업체에서 당시 박찬종 의원을 모델로 하는 광고에 대한 심의 문의가 왔었다”고 전했다. ‘무공해 전자조리기’인 ‘○○쿡’이라는 상품이었는데 이 상품광고는 ‘불허’ 판정이 나와 결국 방영될 수 없었다고. 이 관계자는 “당시 광고카피에 ‘박찬종’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등 상품에 대한 광고라기보다 광고모델을 홍보하는 데 치우쳐 있어 불허 판정이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박찬종 전 의원은 광고모델 데뷔로 주가가 상승하던 상황. 이 ‘전자조리기’ 광고가 연이어 방영되었다면 당시 대중의 ‘평판’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정치인 모델 어떤 상품에 어울릴까
박근혜 은행광고 나경원 의류광고 딱!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박근혜 전 대표가 실제 상업광고에 등장한다면 어떤 광고 모델로 가장 어울릴까. 한 광고컨설팅 전문가는 “박 전 대표의 우아하고 단아한 이미지에 신뢰감 가는 정치인으로서의 인상은 광고 모델로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기업의 공익광고에 나선다면 아주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아파트나 은행 광고와 같은 신뢰도가 필요한 광고 모델에도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의류 광고’ 모델로는 오세훈 시장, 나경원 의원, 유정현 의원, 홍정욱 의원(한나라당) 등 호감형 외모를 가진 의원들이 어울린다는 평가다. 이미 오 시장은 지난 95년 한 신사복 모델로 출연한 적이 있고, 2008년 ‘제25회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던 나경원 의원은 한 잡지사의 의류 화보 모델로 출연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도 ‘옷테’는 좋은 편이어서 의류 모델로 어울릴 것”이라고 평했다.
외국에서는 정치인의 광고모델 출연에 매우 관대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속옷차림’의 캐리커처 모습으로 ‘폐차 보너스 정책’을 홍보하는 광고에 등장했었는데 당시 시민들은 ‘권위적 이미지를 지닌 정치인들의 변신에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 광고전문가는 “정책 홍보나 선거캠페인 광고에서도 지금보다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는다면 정치인 광고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