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서는 “일정 기준 없이 국회의원이 자의적으로 보좌진을 채용하는 ‘입법부 특채 관행’에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노 의원 아들 특채 사건을 계기로 재점화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실태를 들여다봤다.
노영민 의원의 아들인 해영 씨(26). 그는 지난해 시카고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노 씨는 동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지만 불합격해 귀국해야만 했다. 그 후 1년 가까이 취업하지 못한 상태로 지내던 노 씨는 올해 6월 갑자기 국회 부의장실에서 근무하게 된다. 홍재형 국회 부의장실에서 ‘국회 정책 관련’ 업무를 보는 4급 비서관으로 임용된 것이다. 노 씨의 임용 사실은 논란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20대 중반이고 그동안 보좌관 경력이 전무한 그에게 4급 별정직은 너무 높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름을 밝히길 꺼린 홍 부의장실 관계자는 “노영민 의원이 홍 부의장에게 부탁해 노 씨를 비서관으로 채용시켰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황영민 간사는 “보좌관은 별정직이기에 유 전 장관의 특채 사건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면서도 “홍 부의장과 노 의원이 지역구도 가깝고 같은 민주당으로 친분이 깊다는 점, 홍 부의장이 보좌관 채용 공고도 하지 않고 노 씨를 채용한 점 등에 미뤄 ‘인맥 고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영민 의원 측은 “미국 유명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아들이 영어에 능통하고 업무 능력이 탁월할 것 같아 소개했다”며 “올해 말 다시 미국에 가기 전까지만 일하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 의원 아들의 특채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국회 보좌진 특채’ 논란도 재점화되고 있다. 유 전 장관 특채 논란 당시 수세에 몰렸던 한나라당은 공세에 열을 올렸다.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데 힘 있는 사람의 친·인척이란 이유만으로 그래서야 되겠냐”고 비판했다.
특채 논란 불똥은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한 여야 의원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취재 결과 여야를 망라하고 18대 국회의원 상당수가 9급에서 4급에 이르기까지 친·인척을 보좌직원으로 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28 재보선 때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이재오 특임장관은 친척을 수행비서로 두고 있고,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또한 국회 의원실 7급 비서로 자신의 조카 안 아무개 씨(40)를 채용했다. 안 대표 의원실 관계자는 “안 씨는 15대 국회 당시 9급 인턴으로 취업해 12년 동안 의원님을 보좌했고, 현재는 7급 비서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송광호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딸을 국회의원실 보좌직원으로 8년 넘게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송 의원의 장녀인 송 아무개 씨(45)는 송 의원이 지난 1992년 14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직후 9급 비서로 채용됐다. 3년 뒤인 1995년에 7급으로 승진했고, 송 의원이 재선에 성공한 2000년에는 5급 비서관으로 승진했다. 8년 동안 그야말로 ‘파격적인’ 승진 인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송 씨는 송 의원이 3선에 성공한 2008년에는 잠시 다른 직장에 몸담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송 의원의 비서관으로 채용됐다. 그는 현재 월 400만 원이 넘는 고액의 급여를 받고 있다. 송 의원은 “딸은 내가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하게 해줬고, 14대 총선 전부터 나를 도와준 정치적인 동반자”라며 “성실하고 능력 있는 직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의 매제 강 아무개 씨는 현재 4급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도 친척인 한 아무개 씨(39)를 4급 보좌관으로 두고 있다. 한 씨는 2004년 5월 6급 비서로 채용된 뒤 1년 만인 2005년에 5급, 2006년에는 4급으로 승진했다. 한선교 의원실 관계자는 “한 씨가 밑에서부터 승진했기에 다른 의원들의 특채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비례대표인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 남동생과 남동생의 처남뿐만이 아니라 시동생과 조카까지 보좌진으로 채용해 ‘가족 보좌진’이란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기도 했다. 같은 당 백성운 의원의 아들도 5급 비서관으로 일하다 지난해 이 문제가 불거지자 황급히 사직했다.
초선인 정양석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남동생을 4급 보좌관으로, 조카를 9급 비서로 두고 있다. 정 의원의 남동생 정 아무개 씨(47)는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정 의원의 구청장 출마 준비를 도우면서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그는 2008년 5월 정식 비서관으로 임명된 뒤 현재 정책과 정무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월급은 500만 원이 넘는다. 정 의원의 조카인 정 아무개 씨(여·33)는 2008년 총선 당시 정 의원을 도우면서 보좌 역할을 시작했고, 그는 현재 200여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10월 22일 기자와 통화한 정 의원의 동생 정 씨는 “할 말 없습니다”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야당 의원들도 ‘특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장애를 딛고 일어난 철인’으로 칭송받는 박은수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친동생을 5급 비서관으로 채용했다. 이에 대해 의원실 관계자는 “박 의원님은 몸이 불편해 친족이 보좌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라고 못을 박았다. 같은 당 장세환 의원도 처남 김 아무개 씨를 5급 비서관으로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장 의원과 함께 일했다는 조형국 보좌관은 “속사정을 알아야 한다. 장 의원님이 자원 봉사로 바쁘실 때 인척이 의원님을 더 잘 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당시 김 씨를 추천했다”며 “김 씨는 당시 50대의 나이에 7급 비서로 취직해 운전기사 역할까지 하며 밑바닥부터 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국수법) 제9조 보좌직원 관련 법률 제2항은 ‘보좌직원에 대해서는 별표 4에 정한 정원의 범위 안에서 보수를 지급한다’는 추상적인 문구로 규정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 외 16명의 국회의원은 지난 4월 ‘국수법 개정안’을 발의해 보좌직원 특채 문제를 꼬집고 나섰다. 10월 21일 기자와 통화한 강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보좌직원은 입법지원, 정책제안, 국정감사 준비, 지역구 관리 등의 업무를 맡는 전문가”라며 “특채로 들어온 의원 친·인척들이 이런 업무를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정안은 4월 임시 국회에 제출됐지만 이 안건은 동료 의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면서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