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 허씨 경영진들은 출범 초기에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GS그룹의 자산가치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LG칼텍스정유가 근로자들의 파업으로 극한 내부대립을 빚은 것이다. 물론 파업 이유가 LG로부터의 분가 때문은 아니지만, 허씨 오너들에겐 출범 이후 경영력을 평가받는 주요 이슈가 된 셈이었다.
다행히 파업은 최근 근로자들이 조업복귀를 결정하면서 해결국면을 보이고 있다. 허씨 오너들에게 닥친 첫 번째 돌발변수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한 셈이다.
아울러 회사가 생기자마자 재계 중심부에 진입한 허씨 오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들이 LG그룹에서 늘 2인자 자리에 있었던 탓에 재계의 오너 모임인 전경련 등 외부 행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허씨쪽에서 스스로 외부 노출을 자제하기도 했거니와 이런 자세가 두 가문의 50여 년간의 동업을 가능케한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실질적으로 LG그룹의 공동 창업주였고, 지난 50여 년간 LG그룹을 구씨 가문과 공동경영해 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내공’을 무시할 수는 없다.
허씨 가문의 창업 시조는 고 허만정씨다. 허만정씨는 경남 진양군의 만석꾼으로 그 지방에서 이름난 갑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의 6촌인 허만식씨의 딸이 LG의 창업회장인 구인회 회장과 결혼하면서 허씨와 구씨의 동업은 시작됐다. 허만정씨는 구인회 회장의 사업 수완을 보고 구 회장에게 자금을 대고 자제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던 것.
허만정씨는 8명의 아들 중 셋째인 허준구씨(전 LG건설 명예회장)가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오자 46년 LG에 투입시켰다. ‘락희화학’의 영업담당 이사로 준구씨가 들어가면서 구씨-허씨 동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 준구씨의 둘째 형인 학구씨와 바로 밑 동생인 신구씨(LG유통 명예회장) 등이 LG의 경영에 합류했다. 허만정씨의 장남인 허정구씨(전 삼양통상 명예회장)는 LG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허정구씨는 같은 진양 출신의 또다른 갑부인 이병철씨가 세운 삼성그룹에 몸을 담고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의 창업초기에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삼양통상이라는 주문자상표부착방식의 신발제조업체를 세워 삼양통상 그룹을 일궜다.
때문에 자연히 LG그룹에 참여한 허씨 일문의 중심은 허만정씨의 셋째 아들인 허준구씨 가계로 굳어지게 됐다. 현재 GS그룹의 중심격인 GS홀딩스는 허준구씨의 큰아들인 허창수씨가 회장이다.
허준구-허창수 계보로 이어지는 가계에서 벗어난 경우는 LG칼텍스정유의 회장인 허동수 회장과 허승조 LG유통 사장 정도다.
허동수 회장은 허만정씨의 큰아들인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허승조 사장은 허만정씨의 막내 아들로 허정구-허준구 회장 항렬이다.
허정구 전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양통상그룹을 세워 독자경영에 나섰다. 큰아들인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과 셋째아들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그쪽에서 일하고 둘째 아들인 허동수씨만 LG칼텍스정유 회장으로 활동중이다.
허학구씨 집안도 새로닉스라는 회사를 따로 경영하고 있다.
허신구 LG유통 명예회장 집안에선 장남인 허경수씨가 코스모산업, 코스모소재 등을 경영하며 최근 한국티타늄을 인수해 코스모화학으로 이름을 바꾸는 등 사세를 키우고 있다. 허경수씨의 동생인 허연수씨는 LG유통 상무로 재직중이다.
허만정씨의 다섯째 아들인 허완구 회장은 선친의 고향마을에서 이름을 딴 승산그룹을 일구었다. 계열사로 국내에는 운송업체와 미국에는 철강업체를 운영중이다.
여섯째 아들인 허승효 회장은 알토라는 기업을, 일곱째 아들인 허승표씨는 미디아트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막내 아들인 허승조씨는 LG유통 사장으로 GS그룹에서 두 번째로 큰 계열사를 경영하고 있다.
GS그룹의 중심격인 허준구씨 가계에선 큰 아들인 허창수씨가 GS홀딩스 회장으로, 셋째 아들인 허진수씨가 LG칼텍스정유 부사장으로, 넷째 아들인 허명수씨가 LG건설 부사장으로, 막내 아들인 허태수씨가 LG홈쇼핑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둘째 아들인 허정수씨가 일찌감치 LG그룹에서 떨어져 나간 LG기공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에서 보듯 GS그룹의 내부 역학구도가 허준구-허창수 회장 가문 중심으로 정리된 게 눈에 띈다.
하지만 허씨 가문의 후손들이 구씨 가문 못지않게 많고 이들의 가문 내 구도나 역학관계도 외부에서 보기엔 불분명한 점도 있다.
이미 허씨 가문 내에서도 삼양통상그룹, 코스모그룹, 승산그룹 등이 제법 큰 규모로 자리잡고 있다지만 GS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이나 허승조 LG유통 사장 등의 역할에서 보듯 GS그룹을 허준구-허창수 가계의 전유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인 듯한 감도 없지 않다.
때문에 재계에선 허준구-허창수 가계에서 삼촌 이상의 친인척 지분이 GS그룹 내에서 어떤 비율로 맞춰질지, 또 향후 이들이 새로운 분가 절차를 밟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