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우 산모들의 20%가량이 산후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자칫 자살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주위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처럼 여성들만 겪는 것으로 알려진 산후우울증이 남자들, 즉 아빠들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독일 슈파이어에서 심리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로레타 무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변에서 이런 증상을 겪는 남성들을 많이 봐왔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첫째를 낳은 후 산후우울증을 겪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당시 출산준비반에서 만난 한 남성이 아이가 태어나고 몇 주가 지난 직후 우울증을 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살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이스턴버지니아 의과대학이 2만 8000명의 아빠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처럼 산후우울증을 앓는 남자들은 10명 가운데 한 명, 즉 10%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증상은 대개 여자들이 겪는 것과 비슷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제임스 폴슨 심리학 교수는 “아빠들이 단순히 돈만 벌어오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아빠들에게도 아이를 위한 시간, 감정, 인내심 등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이 때문에 피곤함과 함께 스트레스도 가중됐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산후우울증을 치료하고 있는 독일 피어젠 병원의 부인과장인 볼프 뤼트예는 “아빠들도 엄마들처럼 맡아야 할 역할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심신이 약해졌다”라고 설명했다. 한 예로 그는 비행기 조종사였던 한 남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남성은 아이가 태어나자 아내를 돕기 위해서 몇 주간 출산휴가를 냈다. 그리고 아이를 돌보면서 뜻하지 않은 사실에 직면하게 됐다. 자신이 생각보다 아기를 잘 돌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그러자 갑자기 무기력감이 몰려왔으며, “아이 하나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여객기를 조종한단 말인가”라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아이에 대한 부담감이 결국 직장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자신이 한없이 무능력하게 느껴진 그는 결국 다시 여객기를 조종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아기 기저귀를 갈 수 있을 때까지 시간과 그리고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에 뤼트예는 출산준비반에 참가하는 예비 아빠들에게 “태어날 아이들이 여러분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한 아빠인 자신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도움을 청할 상대를 미리 물색해 놓을 것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왜냐하면 아빠들은 아이에 대한 감정을 엄마들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아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폴슨 교수는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산후우울증을 앓으면 그 영향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미친다면서 산후우울증이 비단 부모들 본인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2005년 옥스퍼드의과대학이 14개월 된 아기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산후우울증을 앓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신경질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빠가 우울증인 경우에는 보통 딸보다 아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심한 경우에는 과잉행동 증상까지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뮌헨의과대학의 카를 하인츠 브리쉬 교수는 “부모가 서로 애정이 충만할 때 아이들은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아빠가 출산 직후부터 아이와 함께 생각하고 느끼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