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칫국 한 사발 광주 서구청장 재선거 패배로 손학규 대표 체제가 시련기에 접어들었다. 사진은 지난 9월 당권 경쟁 당시 손 대표 모습.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10·27 재선거’ 역풍은 당장 당 운영에서 나타났다. 손 대표는 이틀 뒤인 29일 단행한 주요 당직자 인선에서 철저하게 계파 안배 원칙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요직인 사무부총장의 경우 조직 담당은 손학규계인 최광웅 전 청와대 인사비서관, 재정 담당은 이학로 전 정동영 대선후보 조직단장, 대외 담당은 박주선 최고위원과 가까운 정진우 전 서울시의원이 임명됐다. 상근 부대변인도 조대현(손학규계), 김영근(정동영계), 황희·김현(정세균계) 씨가 임명돼 계파 이해관계가 그대로 반영됐다. 손 대표가 전날 밤 당직 인선을 놓고 최고위원 전원과 3시간가량 비공개 협의를 벌인 결과다.
손 대표는 “당직 인선에서 중요시한 원칙은 소통과 공감”이라며 “출신에 상관없이 능력 중심으로 발탁하는 열린 자세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대표가 당초 강조했던 당 개혁과는 거리가 먼 ‘퇴행적 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 장악력을 높이면서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는 친정체제를 구축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화합’을 명분으로 각 계파 인사를 고루 기용했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의원은 “손 대표는 취임 후 연일 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계파 이익만 반영된 이번 인사 어디에서도 그런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을 비롯한 비주류 측이 지속적으로 당직 안배를 요구하면서 한 달간 지연된 인선인 터라 집단지도체제의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향후 민주당의 운영이 ‘6인6색’에 따라 흔들릴 여지가 짙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당 대표로 등극하자마자 야권의 대표적인 차기주자로 화려하게 주목을 받고 있는 손 대표의 최근 입지와는 전혀 상반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광주 서구청장 선거 ‘이후’에 벌어진 것들이다.
한나라당의 승리와 민주당의 패배로 귀결된 10·27 재보선 결과는 민심의 향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6곳의 선거가 치러진 영남과 호남이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텃밭이라는 상징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부산·경남에서 열린 4곳의 선거를 싹쓸이하며 텃밭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 반면 손 대표는 취임 후 처음 치른 선거에서 전남 곡성군 기초의원 선거 1곳에서 승리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특히 광주 서구청장 선거는 상징적인 지역에서 패배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손 대표에게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 민주당 김선옥 후보(23.8%)가 김종식 당선인(38.2%)은 물론 ‘비민주 야4당 단일후보’로 나선 국민참여당 서대석 후보(35.0%)에게도 크게 밀리며 3위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더욱 크다.
물론 대표 취임 전인 ‘정세균 체제’ 아래서 공천이 이뤄진 만큼 손 대표는 정치적 책임에서 한 발 비켜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손 대표가 이번 선거에 당 지도부와 함께 총출동해 총력지원을 했던 터라 ‘수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사실 민주당 내에선 서구청장 후보 공천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선옥 후보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당시 무소속 전주언 후보에 패한 적이 있는데도 불과 4개월 만에 민주당 후보로 재출마했다. 일각에서는 “한 번 지역민들로부터 ‘평가’받은 인물을 다시 공천한 것은 지역민을 무시한 오만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에 따라 공천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조영택(서구갑) 의원과 김영진(서구을) 의원은 지역주민들에게 사과성명까지 내야 했다.
조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광주 서구청장 재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참패한 데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 의원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 서구민들의 준엄한 채찍질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며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등을 돌린 광주의 민심이 쉽게 돌아설 것 같지 않다는 게 민주당을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1년 6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2년 4월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차기 총선이 같은 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치러짐에 따라 호남지역의 선택이 대선 전망에 따라 다시 민주당으로 집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민심 흐름을 볼 때 상당한 변화가 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차기 총선에서 또 다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이 ‘반(反)민주당연대’를 결성할 경우 그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손 대표로서는 이번 선거 패배로 호남에서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이를 계기로 당내에선 정동영 최고위원 등 호남기반의 비주류의 공세가 거세질 것이고, 여기에 수세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당직 인선에서 계파안배는 이런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당 밖에선 이번 광주 선거를 통해 사실상 대리전을 치렀던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졌다는 인상을 준 것이 큰 타격이다. 손 대표가 강조해온 ‘비호남주자론’의 대표성을 유 원장에게 넘겨줘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손 대표의 처지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가 ‘광주가 민주당을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란 분석보다는, ‘광주가 손학규를 아직 인정하지 않은 것’이란 메시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야권 대표주자로 나서려는 손 대표에게 통과의례와도 같은 ‘시련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