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전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장기 미제 사건을 연이어 해결한 박찬수 경사(왼쪽)와 김성휘 경장을 만나봤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 @ilyo.co.kr |
끈질긴 노력의 결실이었다. 다른 경찰서에서는 사건 해결을 일찌감치 포기했고, 상사들마저 ‘그만두라’고 만류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두 사람은 5년이 넘게 사건에 매달렸다. 10월 27일 기자와 만난 두 사람은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뒀던 고충과 수사 뒷얘기를 들려줬다.
1998년 7월 광명 철산리파 행동대장 김 아무개 씨(37)와 그의 수하 5명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흥업소를 돌며 여자들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들은 보도방 사업으로 중간 차익을 챙기며 이를 기반으로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래업소인 A 단란주점 주인인 유 아무개 씨(당시 28세)가 아가씨 중 한 명을 강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대금 결제 문제 등으로 유 씨와 갈등을 겪어왔기에 김 씨 일행은 그를 손보기로 결심했다. 모 술집에서 유 씨와 마주친 그들은 유 씨와 언쟁을 벌인 끝에 흉기로 그의 머리와 가슴을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그리고는 속초에 유기했다. 당시 지상파 방송과 신문사들은 이 사건을 떠들썩하게 보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당시 순경이었던 박찬수 경사는 이 사건을 놓지 않았다. 박 경사는 “수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먼저 사건 발생지역이 인천이 아니었고, 조직폭력배 관할 지역도 아니었기에 증거 확보 등 사건 내용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탄탄한 조직망과 자금력을 갖춘 철산리파의 지원을 받은 김 씨가 도피처를 여러 차례 옮겨 주변 인물과 도피처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만약 잘못된 장소를 수색한다면 김 씨가 알고 도망갈 확률이 높았다. 때문에 수사는 조심스럽게 진행됐고, 김 씨의 도피처를 알아내는 데 5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5명의 인원이 밤새도록 풀가동하며 잠복근무를 했다. 박 경사는 “도피처로 추정되는 곳이 여러 곳 있었지만 그 장소를 직접 수사할 수 없었다”며 “확신이 들 때까지 (도피처 수색을) 기다리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지난 2010년 5월, 결정적인 제보 전화가 인천지방경찰청으로 걸려왔다. 김 씨가 친구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수원의 한 모텔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장장 12년 동안 끌어오던 장기 미제사건은 종지부를 찍었다. 살인죄 공소시효(당시 15년, 현재 25년으로 개정)를 2년 7개월 남기고 피의자의 도피행각이 막을 내린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강원 속초경찰서가 수년째 수사를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서울지방경찰청에서도 지난 5월 수사를 종결해 자칫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경사는 지난해에도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했다. 10년 전인 1999년 서울 롯데호텔 내 양복점 대표인 유 아무개 씨(당시 64)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2005년 9월 당시 박 경사는 유 씨의 가정부였던 김 아무개 씨로부터 ‘피해자의 처 등이 범인으로 의심되는데 경찰은 수사를 종결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유 씨의 처인 이 아무개씨(52)를 비롯해 그의 내연남, 작은 처남 등 3명이 유 씨를 살해하고 유기한 뒤 가출신고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제보를 시발점으로 재수사가 결정됐고, 박 경사는 김성휘 경장과 한 팀을 이뤄 수사에 착수했다.
두 사람은 이미 3년 전 은평경찰서 시절부터 이 사건을 주목하고 있던 터였다. 두 사람은 피의자 이 씨의 휴대폰과 집 통화내역을 분석해 범행 전후 이 씨가 내연남, 처남과 자주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유 씨가 실종된 지 얼마되지 않아 자택, 차량 등이 임의 처분된 사실과 유 씨 명의로 가입된 4개 보험이 실종 직후 이 씨에 의해 해약된 사실을 알아냈다. ‘실종’이 아닌 ‘살해’ 혐의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피의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혐의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해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던 중 결정적으로 “아버지 실종 전날 부모님이 크게 싸웠다”는 유 씨 딸의 진술을 확보하고 사체를 찾기 위해 집 근처를 수색했다. 유 씨의 사체는 집 근처 (북한산 이령계곡) 야산에서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피의자들은 유 씨가 양복점을 도와주던 처남들을 내보내고 전문 경영인을 데려오려하자 반발한 이 씨 등이 이 같은 일을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 경사는 “용의주도한 피의자들이 굴삭기로 이미 매장한 사체를 다시 훼손시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회상하는 박 경사의 얼굴에는 연민의 정이 묻어났다. 그는 “가슴이 미어진다. 수사 중 피해자 유 씨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그는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을 위해 열 살도 되기 전에 봉제공장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며 “유 씨는 그렇게 고생한 결과 정·재계 유명인사만 상대하는 디자이너로 성공한 ‘바른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수사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묻자 박 경사와 김 경장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양복점 주인 살해 사건’ 조사 당시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했다. 김 경장은 “유 씨가 죽고 별장이 아무개 교수에게 경매로 넘어갔다. 당시 유 씨가 키우던 개도 같이 경매로 넘어갔는데 그 개가 밤마다 여우 울음 소리를 내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교수가 피의자 이 씨를 만나서 개를 데려가라고 했는데 이 씨가 거부해 계속 싸움이 일어났다”며 “이 씨는 개가 유 씨의 살해 장면을 다 봤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레 겁을 먹고 거부한 것 같다”며 웃음지었다.
다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유 씨 살해 직후 이 씨는 딸과 함께 점을 보러 갔다고 한다. 점쟁이가 “아직도 남편을 기다리냐”고 호통을 치자, 딸은 “엄마가 아빠를 죽인 게 아니냐”고 의심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 씨는 놀라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미제사건 조사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주위 동료들은 박 경사와 김 경장에게 “그 사건 털어라. 너무 오래된 사건 아니냐”며 주문을 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도 점점 없어졌다. ‘광명 유흥업소 사장 살해 사건’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12년 동안 서장은 두 번, 수사지휘관은 30여 차례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 박 경사. 옆에서 3년 넘게 그와 함께 수사를 해 온 김 경장도 소회가 남다른 듯 했다. “만족한다기보다는 사건이 해결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인터뷰를 마친 두 사람은 또 다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