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엔진은 선박·발전용 디젤엔진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다. 최대주주는 두산중공업으로 총 53.0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7년 미국의 중장비 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옛 밥캣) 인수로 인해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두산은 최근 그룹 전체적인 실적이 회복되는 추세다. 때문에 내년을 목표로 추진해왔던 두산엔진의 상장을 올해 안에 마무리 짓는 것으로 일정을 앞당겼다.
두산그룹 측은 지난 5월 말 “두산엔진 업황과 직결되는 조선 경기가 차츰 살아나고 있고 투명경영과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취지에서 상장을 추진하게 됐다”며 “철저한 준비를 해 이르면 연내 상장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두산엔진 측은 동양종금증권과 하나대투증권을 주간사로 선정하고 상장을 준비해왔고 지난 9월 29일 상장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두산그룹은 두산엔진이 상장될 경우 자금에 숨통이 트여 전체적인 그룹 경영이 훨씬 원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두산엔진의 상장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다. 일각에서는 특히 두산엔진이 최근 몇 년간 적자를 기록한 것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두산엔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지난 2008년부터 실적이 악화되면서 모기업인 두산중공업과 두산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두산엔진은 2008년에는 5000억, 2009년 2500억 원대 적자에 이어 올 상반기에는 흑자로 전환됐으나 그 액수가 8억 원대에 불과하다. 매해 적자 폭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상장 기준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거래소는 상장 심사를 할 경우 상장에 나서는 기업들의 실적 기준으로 매출액과 이익 부분을 먼저 고려한다. 일반적으로 ‘연간 매출액 300억 원 이상, 최근 3년 평균 200억 원 이상’과 ‘연간 당기순익 25억 원, 3년 평균 합계 50억 원 이상’이면 상장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기준에 따른다면 두산엔진의 상장은 요원하다. 거래소 측도 지난 몇 년간 손실 부분에 대한 회복 여부에 따라 상장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내부 분위기가 밝은 편은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실적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 두산엔진이 상장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은 있다. 게다가 두산엔진은 이번 상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기에는 두산엔진의 최대 주주인 두산중공업의 자금 사정도 여의치 못하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실제로 두산중공업도 2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지난해에는 적자 폭이 3000억 원대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엔진이 상장될 경우 두산중공업은 지분을 매각해 1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두산엔진은 장외에서 주당 9만 원에 거래되고 있으나 상장될 경우 주당 15만 원까지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두산그룹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두산중공업 정상화를 위해서 두산엔진의 상장은 선결 조건인 셈이다. 두산 측의 기대대로 상장이 원활하게 이뤄질 경우 두산은 최근 몇 년간의 어려움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데에는 재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느긋하게 두산엔진의 상장 여부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현재 삼성중공업은 두산엔진의 지분 15.7%를 가지고 있으며 대우조선해양은 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는 두산 측만큼 상장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역시 상장될 경우 적지 않은 상장차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내심 상장을 기대하고 있다. 이 두 회사는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두산엔진 상장을 위한 측면 지원에 나선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 중 하나였다. 재빠른 자산 매각으로 한 고비 넘겼지만 과연 이번 두산엔진 상장으로 위기탈출의 ‘화룡점정’을 할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