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는 윤증현 장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요즘 기획재정부에서는 여당인 한나라당이 진행 중인 각종 정책 추진에 대해 당혹감을 넘어 불만으로 끓어오르고 있다. 친 서민을 앞세워 그동안 추진해왔던 정책을 뒤집거나,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를 방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까닭에서다. 세금 관련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그 내막을 따라가 봤다.
재정부가 불만을 표출하는 가장 큰 내용은 공공기관 선진화에 대한 한나라당의 이중적인 태도다. 재정부는 이명박 정부 들어 공공기관 선진화를 앞장서서 추진 중이다. 공공기관 선진화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전부터 강조해온 역점사업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통해 성과급이 방만하게 주어지는 것을 막는 한편, 공공기관 전체 인력을 2만 명 줄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재정부가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현재 노동계, 특히 한국노총은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선진화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17대 대통령선거 때 한나라당과 정책공조를 선언하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등 현 정권과 관련이 깊다.
이 한국노총이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가 공기업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압박 중이다. 한국노총 소속 공공부문노조 대표자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서비스 악화와 비정규직 증가 등의 폐해를 가져올 외주 확대와 퇴직 강요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현 정부 임기 내에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근거한 인력 감축을 완료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의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공공부문의 이런 요구사항을 적극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한나라당에 삭감된 공공기관 성과급 추가 지급과, 대졸 초임 원상복귀, 인력 증원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면 그동안 이 정부 들어 추진해왔던 공공기관 선진화는 완전히 원점으로 회귀하게 된다”면서 “그런데 한나라당이 이런 논의를 한국노총과 하면서 각종 당내 회의나 국정감사에서는 공공기관 방만 경영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실제로 지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 못지않게 공공기관 방만 경영을 비판해왔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26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공기업의 방만 경영 문제는 깊이 들어가면 굉장히 큰 만큼 상임위별로 감사청구권 활용하고 예산지원을 삭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불일치는 최근 논의 중인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논란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해 세금을 일부 면제해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가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올해 말 이를 폐지하고, 고용을 많이 하는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고용 창출형 세액공제’로 변동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세제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반대하고 있다.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된 것은 맞지만 혜택을 받는 기업 수는 중소기업이 더 많다는 것이 반대의 주된 논리다.
한나라당이 10월 27일 오전에 밝힌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철회 검토는 이와는 정반대 입장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지원을 위해 법인세 2억 원 초과구간에 대해 적용되는 세율 22%를 20%로 인하하는 방안을 2009년 국회에 제출했지만 부자감세 논란에 휘말리며 통과되지 못했다. 대신 이를 2년간 유예한 뒤 2012년에 추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금융위기에 따른 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된 점도 이를 뒷받침했다.
그런데 부자감세 논란이 지속되고, 야당의 반발이 커지자 한나라당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에 대한 철회 검토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논란이 빚어지자 이날 오후 단순히 검토하는 차원이라고 발을 뺐다.
정부 관계자는 “대기업의 투자에 혜택을 주겠다는 논리라면 임시투자세액공제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모두 진행돼야 하고, 그 반대면 둘 다 진행돼선 안 된다”면서 “정치 논리나 여론에 따라 정책 선택이 왜곡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