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도 학교나 군대와 같은 단체생활이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별명이 생기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에게 별명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별명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눈에 띈다는 의미다. 직장인들에게 별명은 때로 친근함의 표시가 되기도 하고 공공의 적을 논할 때 서로간의 암호가 되기도 한다. 이런 별명이 생기는 사연은 가지각색이다. 외모에서 기인할 때도 있고 독특한 성격 때문에 붙여지기도 한다. 무색무취한 존재로 회사 생활을 하다 사고 한 번으로 별명을 달게 되는 직장인도 있다. 직장인들의 별명에 관한 에피소드를 모아봤다.
모든 별명이 그렇지만 회사 내에서도 가장 흔한 것이 외모에서 기인한 별명이다. 특징을 잡아내기 쉽기 때문이다. 교사로 재직 중인 K 씨(33)는 별명이 ‘날개’다. 아이들 사이에 그렇게 통한다.
“보통 암내라고 하죠. 겨드랑이 쪽에 냄새가 나는 거요. 사춘기 시절부터 그것 때문에 별명도 여러 가지였는데 직장생활 하면서도 여지없네요. 땀이 많은 데다 유난히 냄새가 심한 편이긴 해요. 일부러 자주 씻는데도 여름 같은 경우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니까요. 아이들이 공공연하게 ‘날개’라고 부르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알지만 뭐 사실이니까 딱히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여학생반을 맡고 있어서 나름대로 신경 쓰는데도 어쩔 수가 없어서 요즘에는 그냥 포기하고 있어요.”
K 씨는 이젠 현재의 별명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날개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고. 그는 “별명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아니겠느냐”며 “좋게 생각하니 금방 익숙해지더라”고 말했다.
외식업체에 근무하는 L 씨(여·28)는 같은 부서 부장님을 ‘대부’ 혹은 ‘대가’라고 부른다. 여직원들끼리 점심시간에 모여 밥을 먹거나 수다를 떨 때 종종 회자되는 별명이다.
“보통 상사한테 별명을 붙여서 직원들끼리 돌려 말하곤 하잖아요. 깨지고 나면 바로 이름 부르기 뭐하고, 복수하는 기분도 있고요. 나름 순화시켜서 말한 건데 대부는 ‘대머리 부장’의 줄임말이고, ‘대가’는 대머리 가발의 줄임말이에요. 40대이신데 머리숱이 영 없는 편이거든요. 게다가 누구라도 한 번 보면 단번에 알아챌 부분 가발을 착용하고 계세요. 그것도 윗부분만요. 다른 남자 직원이 전에 같이 출장 갔다가 봤다는 소문은 있는데 아직까지 최고 윗선들 아니면 가발 벗은 것을 본 적이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이기도 해요.”
L 씨는 걸려도 어감이 나쁘지 않을 별명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혹시라도 걸리면 대부업체 핑계를 대거나 영화라고 둘러대면 된다”고 웃었다. 외모 못지않게 별명의 원인 제공을 하는 것이 독특한 성격이나 행동이다. 한 번이야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별명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C 씨(30)는 사내에서 별명이 ‘할배’다. 젊은 사람이 이런 별명을 얻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보통 신입 시절에는 군기가 바짝 들어 일찍 출근하지만 지나치게 일찍 출근을 해 이런 별명이 생겼다.
“입사 한 달 지나면서부터 생긴 별명인데 2년차인 지금도 계속되네요. 회사가 8시 30분까지 출근인데 신입 때는 막내라 눈치 보이기도 하고 집이 멀기도 해서 부지런 좀 떨었어요. 6시 50분까지 회사에 왔거든요. 신입 시절에야 그때 왔어도 꼿꼿이 앉아서 인터넷 검색도 하고 회의준비도 하고 그랬죠. 지금은 오자마자 엎드려 자다가 8시 30분 회의시간 직전에 일어납니다. 젊은 애가 잠도 없느냐고 하면서 옆자리 선배가 붙여준 별명인데요, 나쁘진 않습니다. 부지런하다는 뜻이잖아요. 익숙해지다 보니까 이젠 선배가 정색하고 제 이름을 부르면 어색하다니까요.”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B 씨(여·32)는 성격이 대단히 거칠고 불같은 사장과 일하고 있다. 당연히 별명이 붙는다. B 씨는 사장에 대해 직원들 괴롭히는 솜씨가 좋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사람이라 표현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봐요. 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죠. 일하다 갑자기 깜짝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키가 작고 뚱뚱한데 목소리는 칼처럼 날카롭고 높아서 솔직히 말하자면 직원들끼리는 ‘돼지 멱따는 소리’ 같다고 말합니다. 별명은 ‘오똘’이에요. 오 씨인 데다 ‘똘아이’ 같은 행동을 일삼는다고 해서요. 메신저로 ‘오똘’이라는 단어가 뜨면 사장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는 뜻이죠. 그럴 때는 몸 사리고 자리에서 숨죽이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사건 사고 한 번이면 잊지 못할 별명이 생긴다. 물류회사에 근무하는 J 씨(여·27)도 단 한 번의 실수로 ‘태풍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단다.
“보통 회식 때도 술을 잘 안 마시는 편인데요, 입사 후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전체 회식을 하게 됐어요. 필름이 끊겨 나중에 들은 소리인데 술자리에서 제가 갑자기 앞으로 나오더니 위아래 가리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술을 따르면서 자리를 주도하더랍니다. 마치 레크리에이션 강사 같았다나요? 그렇게 회식 자리를 들썩이게 만들더니 어느새 푹 쓰러져 잤대요. 그래서 마치 태풍이 왔다간 것 같다고 ‘태풍녀’라는 별명이 붙여졌지 뭡니까. 나름 평소에는 조용조용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모습을 보이니 다들 놀라셨나 봐요.”
IT 관련 개발사에 다니는 S 씨(32)도 근무하는 회사에 독특한 별명을 가진 여직원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특이하게 그 여직원은 별명이 한 번의 사건으로 뒤바뀐 사례다.
“원래 이미지가 굉장히 좋았던 여직원이었어요. 평소에 옷도 세련되게 잘 입고 외모도 뛰어난 편이었죠. 목소리나 행동도 사근사근해서 입사 당시에는 다들 기분 좋게 바라보면서 예뻐했습니다. 언제나 깜찍한 행동에 다양한 패션을 구사한다고 해서 별명이 ‘아바타’였어요. 그러다 행사 한 번 치르고 ‘럭비공’이 됐습니다.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니고 ‘럭셔리 비호감 공주’의 줄임말입니다. 중요한 회사 행사 때 미니스커트를 입고 와서는 컵 몇 번 나르더니 힘들다고 털썩 주저앉아 가만히 있더군요. 공주처럼 대접만 받으려는 행동 때문에 붙여진 거랍니다.”
식자재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N 씨(30)는 서로 별명을 부르는 사내 분위기가 그저 부럽다. 좋지 않은 의미로 별명을 부르기도 하지만 별명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는 증거라고. 그는 “회사에서는 보통 가까운 사이라도 존댓말을 꼭 쓰고 별명은 생각도 못 한다”며 “좀 딱딱한 분위기라 별명도 부르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되고 싶지만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