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로비’ 태풍이 여의도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가 청원경찰법 개정을 앞두고 여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전 방위적 로비활동을 벌인 정황이 속속 드러난 데 이어 농협중앙회도 국회 농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입법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대표적인 이익단체인 의사협회가 여야 의원 10여 명을 상대로 후원금 로비를 펼쳤던 이른바 ‘의정 커넥션’ 의혹이 재연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인과 이익단체 간에 은밀히 성행하고 있는 ‘입법 로비’ 요지경 실태 속으로 들어가 봤다.
청목회의 ‘입법 로비’ 사건이 여의도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청목회는 청원경찰법 개정을 위해 국회 상임위원회별로도 등급을 정해 조직적으로 로비를 전개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월 28일 청목회 간부 3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고, 이들이 모금한 8억 원 가운데 후원금으로 지출된 2억 7000여 만 원과 비용 등을 제외한 4억여 원의 행방을 쫓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또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 33명의 리스트를 확보해 후원회 계좌를 추적 중이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5000여 만 원을 후원받았고, 행안위 민주당 간사인 강기정 의원과 한나라당 간사인 권경석 의원 등 10명가량이 각각 1000만 원 정도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청목회는 법안을 발의한 행안위뿐 아니라 법제사법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등 법안에 영향을 미치는 각 상임위에 도 접근한 정황과 단서가 포착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의원들에게는 후원회 계좌로 후원금을 송금하지 않고, 직접 의원실을 방문해 현금 봉투와 회원 명부를 전달하는 대담성도 보였다.
청목회에서 1000만 원 이상 고액 후원금을 받은 정치인들은 한목소리로 대가성을 부인하는 등 검찰 수사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11월 12일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여야의원 사무실 12곳을 압수수색한데 이어 G20 정상회의를 전후해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어서 여의도 정치권은 또 한 차례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청목회의 ‘입법 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정치권과 이익단체 간의 입법을 둘러싼 검은 커넥션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재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18대 국회는 물론 17대 국회에서도 ‘입법 로비’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돼 온 단골 메뉴였다. 17대 국회인 2007년에는 대표적인 이익단체인 의사협회와 정치권의 검은 커넥션 의혹이 드러나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장동익 전 의협회장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의정 커넥션’으로 비화된 이 사건에는 당시 여야 현역 의원 7명이 의협 측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입법 로비’를 받아온 정황이 드러났다. 실제로 장 전 회장의 녹취록에는 ‘모 의원에게 현금 1000만 원을 줬다’ ‘의원 3명에게 200만 원씩 매달 600만 원을 쓰고 있다’ ‘술먹이려고 카드까지 써서 보좌관 9명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검찰은 2007년 5월 의료법 개정안 등에 대한 법안 심의와 관련해 장 전 회장으로부터 각각 1000만 원씩을 받은 혐의로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고경화 김병호 의원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역시 17대 국회인 2005년에는 문석호 전 의원이 S오일 직원들로부터 불법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에 추징금 5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선동 S오일 사장은 직원 546명에게 10만 원씩 문 전 의원의 후원금 계좌에 입금하도록 지시해 총 5560만 원의 후원금을 내는 방식으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18대 국회에서는 청목회 외에 농협중앙회가 ‘입법 로비’를 전개한 정황이 드러나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지난 8월 농협중앙회가 각 지역본부에 공문을 보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내라고 독려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경은 중앙회의 후원금 기부 독려가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농협법 개정 추진과 관련이 있는지, 농협 직원들이 기부한 후원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에 따르면 농협은 8월 19일 16개 지역본부에 ‘2010년 국회 농수식품위원 후원계획(안)’이라는 제목의 업무연락 문서를 보냈다. 이 문서는 농식품위 소속 의원 18명에게 후원을 요청하면서 의원 1인당 직원 200명(2000만 원)씩 총 3600명을 참여시킬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후 농협은 노조 측의 문제 제기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업무연락을 취소하며 “담당 직원이 일부 직원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 개인적으로 보낸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지휘를 받은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10월 26일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고, 조만간 농협 측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어서 수사 불똥이 여의도 정치권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청목회와 농협 이외에도 일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직원들에게 특정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강요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일부 이익단체를 비롯해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이 정치인들을 상대로 불법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사정기관은 관련 단체나 기관을 대상으로 은밀히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청목회 사건으로 재점화된 ‘입법 로비’ 의혹이 여의도 정치권 전체를 뒤흔드는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침구사법 부활 위한 물밑작업?
<일요신문>은 지난 2월 ‘구당 X파일’(929호) 제하의 기사를 통해 구당신화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함께 ‘입법 로비’ 정황이 담긴 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문건에는 침구사 부활 법안을 발의한 A 의원에게 후원금을 지원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당은 자신이 먼저 3000만 원을 건넬 테니 (뜸사랑) 회원들이 자신의 계좌로 10만 원씩 입금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일요신문> 보도 이후 <주간동아>(10월 12일자)와 <SBS 뉴스추적>(11월 3일자) 등 주요 매체들도 ‘구당 미스터리’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입법 로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은 구당과 뜸사랑 측의 ‘입법 로비’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