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M+W 그룹 본사. 지역 언론에서조차 이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
입찰 전쟁의 포커스가 자본력에 맞춰지면서 인수전을 지켜보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시선은 현대그룹이 파트너로 내세운 독일 기업 M+W그룹에 모아지고 있다. 현대그룹이 내세운 이 ‘흑기사’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현대그룹은 이 회사에 대해 우호적이면서도 제한적인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이 회사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M+W가 전략적 투자자로 가장한 투기 자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M+W그룹은 현대그룹을 구원할 독일판 흑기사일까, 아니면 단물만 쏙 빼먹고 달아나는 독일판 ‘먹튀’일까. <일요신문>은 소문만 무성한 M+W그룹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직접 날아갔다.
▲ 현정은 현대 회장. |
이처럼 자금력에서 열세인 현대그룹은 독일계 M+W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현대그룹은 M+W그룹과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입찰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현대그룹이 공개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독일 현지에서는 이 회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일에서도 이 회사는 상당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와 관련된 업계 관계자들이나 독일 유력 경제신문, 본사가 위치한 슈투트가르트 지방언론 기자들도 이 회사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M+W그룹과 사업 영역이 겹치는 경쟁 회사에서도 이 회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독일에 진출해 있는 중동계 건설회사 마츠다르(Mazdar)의 한 관계자는 “M+W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독일 증권 전문 신문인 <뵈오세 자이퉁>의 안드레아스 히핀(Andreas Hippin) 기자는 “(독일에서는) 상장되지 않은 기업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M+W도 비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우리 신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신문에서 다뤄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 지역 최대 일간지 <슈투트가르트 자이퉁>의 잉에 노박(Inge Nowak) 기자는 “M+W그룹이 지난해 사명을 M+W Zander에서 M+W그룹으로 바꿨다는 단신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이마저도 회사에서 뿌린 보도자료를 가지고 쓴 것이다. 능동적으로 기사를 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적 건설사를 인수하려는 회사에 대해 심지어는 해당 지역 신문 기자들도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의외였다. 가장 큰 이유는 히핀 기자의 말처럼 이 회사가 비상장이기 때문. 독일은 총 6개의 거래소가 있는데 슈투트가르트에도 거래소가 있다. 때문에 슈투트가르트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기업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반면 비상장기업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업 구조가 폐쇄적이거나 규모가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비상장기업이라고 해서 규모가 작거나 부실기업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독일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독일의 비상장 기업 중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기업이 바로 ‘보쉬’다. 노박 기자는 “보쉬는 철저하게 오너 일가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부러 상장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보쉬의 매출 규모가 작다거나 부실기업으로 보는 사람들은 없지 않나. 물론 M+W가 보쉬와 같은 케이스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 몇 년간 독일 언론 중에서 언론 노출이 극히 적은 M+W그룹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기사를 쓴 곳은 독일판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Deutchland, FTD)가 거의 유일하다. 지난 2007년 12월 FTD는 M+W그룹이 2005년부터 경영권 분쟁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오스트리아의 슈텀프그룹에 넘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FTD는 당시 M+W의 매각 및 인수 과정에 참여한 오스트리아 및 스위스 자본을 ‘탐욕스런 자본가’로 표현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 FTD도 당시 보도 이후 M+W그룹에 대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현재 FTD의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일요신문>은 현재 슈투트가르트에 주재하며 이 지역 경제 동향 및 기업을 담당하고 있는 FTD의 헤이모 피셔(Heimo Fisher) 기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M+W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 언론 기자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의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피셔 기자는 최근의 M+W그룹 행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피셔 기자는 “지난 2007년을 전후해 경영권을 둘러싼 몸살을 앓은 후 독일 전자 업체 지멘스 사장 출신인 외르겐 와일드를 CEO(최고경영자)로 영입해 공격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아시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피셔 기자 역시 M+W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특히 M+W그룹의 자금 동원 능력에 의문을 표했다. 피셔 기자는 “M+W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슈텀프그룹에서 자금을 조달하든가, 지불하기로 한 자금을 줄이면서 동시에 요구조건도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인수가의 절반 가까운 돈을 대는 듯한데 경영권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다”며 이면 계약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M+W그룹 측은 슈투트가르트 본사에 찾아간 <일요신문>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지금은 한국 언론에 해줄 말이 아무 것도 없다”며 거절했다. 다만 이 회사는 <일요신문>이 현지 취재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일부 지역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내 “현대건설을 인수해 그동안 M+W가 취약한 분야였던 일반 건설 공사 등을 보완할 것이며 M+W 자체적으로는 자금을 조달할 수 없기 때문에 슈텀프그룹 본사에서 자금을 댈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셔 기자와 M+W그룹 측의 설명대로 현실적으로 M+W가 자체적으로 현대건설 인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이번 인수전의 ‘열쇠’는 오스트리아 슈텀프그룹의 슈텀프 회장이 쥐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현대그룹 측은 지난 10월 1일 M+W그룹과 공동으로 현대건설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슈텀프그룹의 게오르그 슈텀프(Georg Stumpt) 회장을 ‘오스트리아의 정주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슈텀프 회장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었다.
<일요신문>이 오스트리아 내 상경대학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비즈니스대학에서 국제 경제나 비즈니스를 공부하는 학사 및 석사 과정 학생 10여 명에게 물어본 결과 슈텀프 회장에 대해서 알고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이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는 바인체틀 다니엘(Weinzettle Daniel) 씨는 “2001년 오스트리아 최고층 빌딩인 밀레니엄타워를 건설할 때 화제를 모았고 그 이후에는 거의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오스트리아 국민들 사이에서 슈텀프 회장이 정주영 회장만큼의 인지도가 없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FTD의 피셔 기자는 슈텀프 회장이 전형적인 투기 자본가라는 한국 언론의 평가에 대해 “오히려 외국보다 오스트리아 언론에서 그런 이미지를 만들었다. 노출 빈도가 적은 그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부모를 잘 만난 재벌 2세 정도로 인식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를 성공적인 투자가로 보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오스트리아 기업 관련 전문 변호사인 한스 게오르그 라이머(Hans Georg Laimer) 씨는 그를 ‘성공적인 기업가’라고 표현했다.
주목할 점은 슈텀프 회장이 손을 댄 곳 중 상당수가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슈텀프그룹이 지난 2005년 인수한 스위스 회사 ‘오에리콘’의 경우 인수 후 1500명에 달하는 직원이 구조조정됐고, M+W그룹의 설비 부문 역시 슈텀프 인수 이후인 2008년 독일계 건설회사에 매각됐다. 슈텀프그룹은 또한 2007년 스위스 회사 ‘슐처’를 인수했으나 공시의무 위반으로 법정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및 스위스 경제지 기자들과 접촉해 본 결과 슈텀프 회장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에 가지고 있는 회사는 대부분 비상장이다. 폐쇄적이면서도 분리된 구조 탓에 그룹 현안에 대한 것은 오직 슈텀프 회장 본인만 알고 있는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 이번 현대건설 인수전과 관련해 슈텀프그룹 회장 비서실장은 <일요신문>과 만나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위 인터뷰 기사 참조)라고 밝히는 등 슈텀프그룹 내부에서 설명이 다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재 현대그룹 측은 M+W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M+W의 자금조달 능력과 베일에 싸인 슈텀프그룹의 구조, 그리고 슈텀프 회장의 그간 이력으로 봤을 때 그들이 순순히 현대그룹 측이 발표한 조건대로 이번 인수전에 참여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M+W그룹의 ‘전략적 투자’를 둘러싼 논란은 현대건설 인수전 기간은 물론 인수전이 끝난 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오스트리아 빈 =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유럽 넘나들며 공격적 투자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밀레니엄타워를 독일계 펀드에 팔아넘겼고 이 이익금으로 스위스의 기업들을 사들였다. 하지만 인수 후 대규모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스위스 언론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기업 전문 변호사 라이머 씨는 “슈텀프 회장이 유럽 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슈텀프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 러시아 부호인 빅토르 웰스버그”라고 설명했다. 그는 “웰스버그는 유럽 내에서 즉흥적으로 투자를 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슈텀프 회장 비서실장 직격인터뷰
“현대건설 인수 참여? 우리와 상관 없다”
▲ 오스트리아 밀레니엄타워. 이 건물 49층에 슈텀프그룹 본사가 입주해 있다. |
-M+W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한 사실에 대해 아는가.
▲우리는 그 일과 관련이 없다. 여기가 비록 전 세계 슈텀프그룹의 본사이기는 하지만 각 국가에서 하는 사업은 원칙적으로 그 나라에 위치한 회사에서 결정한다. M+W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한 것은 전적으로 그 회사에서 결정하고 추진하는 일이다.
-M+W그룹에서는 오스트리아 슈텀프그룹에서 인수자금을 댈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현대건설과 M+W는 주력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두 회사가 손잡을 경우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조만간 슈텀프 회장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한국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
▲그런가. 처음 듣는 얘기다. 슈텀프 회장은 주로 독일과 스위스를 오가며 지내고 현재는 독일에 있다. 다음주에는 베를린에 체류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는데 한국에 갈 것이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향후 일정이 바뀌어 한국에 갈 수 있겠지만 현재(한국시간 5일)로서는 그런 계획은 없다.
-언론에서 슈텀프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투기자본으로 표현하는 비판적 기사가 많이 보도됐다.
▲슈텀프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언론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스위스 언론의 경우 외국 자본에 대해서는 일단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오스트리아 언론에서는 슈텀프 회장의 나이가 어린 데다가 언론 접촉을 극히 꺼려하는 면이 있어서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다. 오스트리아 최고층 빌딩인 밀레니엄타워를 건설할 때도 오스트리아 언론은 갖가지 루머에 대해 보도하며 빌딩 건축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결국 슈텀프 회장은 밀레니엄 타워를 건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