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신동빈 부회장과 신영자 사장이 서울 건대입구역 스타시티에서 개점한 롯데백화점 25번째 점포인 ‘스타시티점’ 내부를 둘러보는 모습. 작은 사진은 신격호 회장. 연합뉴스 |
롯데그룹은 지난 3일 공시를 통해 비상장 계열사 롯데로지스틱스와 본길로지스의 합병 결정을 알렸다. 두 회사 모두 물류 서비스업을 하는 곳으로 ‘유사 업종 간 합병을 통한 경영 효율성 제고’가 롯데가 공시를 통해 밝힌 합병 목적이다.
롯데로지스틱스가 본길로지스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롯데로지스틱스가 본길로지스를 흡수·합병하는 구도다. 롯데로지스 틱스가 본길로지스의 주식을 사들인 것은 지난 10월 26일. 바이더웨이가 갖고 있던 본길로지스 주식 100%(34만 주)를 롯데로지스틱스가 전량 매입한 것이다. 롯데로지스틱스는 본길로지스 주식 34만 주를 불과 4억 3850만 원(주당 1290원)에 사들였다. 지난 1월 롯데그룹이 2740억 원에 인수한 바이더웨이 물량 공급이 주업인 본길로지스는 지난해 88억 6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바이더웨이 물량으로 먹고 사는 본길로지스가 바이더웨이에서 롯데로지스틱스로 넘어간 까닭은 무엇일까. 바이더웨이는 지난 2008년과 2009년 각각 15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렸을 정도로 재무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본길로지스 지분 매각 대금이 4억 원대에 불과해 바이더웨이에 대한 재무 지원 성격보다는 롯데로지스틱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성격이 강해 보인다. 롯데로지스틱스가 지난 2007년 롯데냉동과 합병한 이후로 그룹 차원에서 롯데로지스틱스를 대형 물류회사로 키워주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롯데로지스틱스는 롯데 계열 편의점 세븐일레븐 물류업무를 맡고 있다. 매출의 대부분이 세븐일레븐 물량에서 발생한다. 롯데로지스틱스는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 지분 13.87%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로지스틱스의 이번 본길로지스 인수를 롯데로지스틱스가 세븐일레븐과 바이더웨이의 물량을 전담하면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신격호 회장 딸 신영자-신유미 자매와 롯데로지스틱스 간의 관계 또한 눈길을 끈다. 롯데로지스틱스는 지난 2007년 12월 신격호 회장이 갖고 있던 롯데로지스틱스 지분 전량(4.99%)을 롯데후레쉬델리카에 증여하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신 회장의 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과 신유미 씨가 각각 지분 9.31%씩을 보유해 개인 공동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회사다. 롯데 주변에선 신 회장 딸들이 롯데후레쉬델리카 롯데로지스틱스 등을 중심으로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공공연하게 거론돼 왔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세븐일레븐과 롯데슈퍼 등에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가공식품을 납품하는 회사다. 최근 롯데로지스틱스의 본길로지스 합병으로 신 회장 딸들의 영향력하에 놓인 롯데후레쉬델리카-롯데로지스틱스가 그룹 내 편의점 물류 사업을 독점하게 됐다. 재계에선 이를 신 회장의 딸들 챙겨주기 일환으로 보고 있으며 조만간 롯데로지스틱스에 대한 롯데후레쉬델리카와 신영자-신유미 자매의 지분율 증가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 회장 딸들에 대한 계열분리 관측이 구체화되는 것은 신 회장 차남 신동빈 부회장이 이미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대관식’ 초읽기에 들어간 점과 무관하지 않다. 신영자 사장은 롯데쇼핑 성장 주역으로 평가받아왔지만 그의 롯데쇼핑 지분율은 0.79%에 불과하다. 롯데쇼핑의 최대주주는 지분 14.59%를 보유한 신동빈 부회장이다. 지난 2006년 2월 신 부회장 주도하의 롯데쇼핑 상장을 전후로 신 부회장으로의 그룹 승계구도가 자리 잡으면서 롯데 주변에선 신영자 사장의 계열분리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 사장이 지난해 12월 출범한 롯데삼동복지재단의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신 회장이 장녀의 분가 영역을 넓혀주고 있다는 말을 낳기도 했다. 재계 여러 인사들은 “신동빈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공식적으로 물려받기 전에 신격호 회장이 능력이 출중한 큰딸(신영자 사장)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업을 챙겨주려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롯데후레쉬델리카-롯데로지스틱스 외에도 신영자 사장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이미 여러 회사를 손에 쥐고 있다. 서울 경기를 제외한 롯데시네마 지방체인의 매점 위탁운영을 하고 있는 시네마통상은 신 사장이 지분 28.3%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그밖에 신 사장 장녀인 장혜선 씨가 이 회사 지분 7.6%를 보유하고 있으며 차녀 장선윤 씨와 삼녀 장정안 씨도 각각 5.7%씩의 지분을 갖고 있다. 신 사장 장남 장재영 씨가 운영하는 롯데 비상장 계열사 유니엘은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의 전단지 제작과 판촉 광고 등의 인쇄물 납품을 맡고 있다.
한편 서미경 씨의 딸 신유미 씨가 최대주주인 유원실업은 롯데시네마 서울 경기 지역의 매점사업을 도맡고 있다. 롯데그룹과 서미경 씨 주변인사들 사이엔 “신유미 씨가 언니(신영자 사장)와 함께 큰 사업을 하게 될 것”이란 이야기가 퍼져 있다. 신격호 회장의 지원하에 ‘유통지존’ 롯데 내에서 유통 소그룹을 만들어가고 있는 신 회장 딸들이 조만간 계열분리 수순을 밟게 될지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