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
이건희 회장의 ‘젊은 조직론’은 연말로 예상되는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 부사장의 승진 속도는 다른 재벌가 2세들에 비해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었다. 올해 42세인 이 부사장은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아들 정용진 부회장과 동갑내기이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보다 두 살이 많다.
이런 이 부사장의 승진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는 것은 이건희 회장의 ‘젊은 조직론’이 사장단 인사들을 겨냥한 게 아닐 것이란 일부 관측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 측도 “그동안 사장단 연령도 낮아지고 조직이 많이 젊어졌다”며 “(이 회장의 ‘젊은 조직’ 발언으로) 조직이 동요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이 회장 발언은 이미 젊어진 사장단보다는 이재용 부사장의 도약에 더 무게를 둔 발언일 것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지난해 초 2009년 정기인사 당시 나왔던 ‘3년 연한’ 논의가 이 부사장 승진의 변수가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난해 초 인사에서 이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가 전무로 승진할 때 이재용 부사장(당시 전무)은 승진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당시 삼성 측은 “이재용 전무가 전무직 3년 근무 연한을 채우지 못했다”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임원이 되면 최소 3년 근무를 해야 승진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국 이 부사장은 지난해 말 전무로 3년을 채우고 부사장으로 승진해 현재 부사장으로서 약 1년을 마친 상태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부장에서 상무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기 위해 보통 3년 이상 근무를 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정해진 룰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3년 연한을 채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사장급 이상부터는 다르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부사장부터는 CEO(최고경영자)급이기 때문에 굳이 근무 연한을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재용 당시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할 수 없게 발목 잡았던 ‘3년 룰’이 이번엔 해당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재계 일각에선 이 부사장의 사장 승진 여부가 이건희 회장이 구상하는 경영권 승계 밑그림의 윤곽을 보여주는 대목이 될 거라 보기도 한다. 지난해 초 이 부사장의 이혼 이후 여동생 이부진 전무의 경영능력이 부각됐고, 이 전무는 기존의 호텔신라 업무에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 담당을 겸하면서 삼성물산 업무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한 것이 이재용-이부진 남매의 라이벌 구도를 부추길 것이란 해석마저 등장했다. 이렇다 보니 재계에선 “부사장에 오른 지 1년밖에 안 된 이 부사장이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할 경우 경영권 승계구도에서 황태자인 이 부사장과 이부진 전무 사이에 확실한 차이를 두면서 승계 관련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이 회장의 의도가 반영되는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의 ‘젊은 조직론’이 지난 2008년 4·22 삼성 쇄신안 발표를 통해 해체된 전략기획실의 부활 구상과 맞닿아 있을 거란 시각도 있다. 전략기획실장을 지낸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이 8·15 광복절특별사면을 받은 이후로 전략기획실 재건을 통해 경영일선에 복귀할 것이란 관측이 줄곧 제기돼 왔다. 삼성 측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확대해석을 잔뜩 경계하는 상태. 재계 일각에선 최근 검찰의 C&그룹 수사를 통해 ‘C&그룹이 로비창구로 구조본(구조조정본부)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부각되면서 구조본 성격의 전략기획실 부활을 놓고 삼성이 여론의 눈치를 살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전략기획실 재건 여부에 대해서도 삼성 측은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이 2010년 인사를 지난해 말에 발표한 것처럼 이번에도 연말에 인사 발표가 있을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발표를 두 달 남짓 앞둔 삼성 내 조직 개편 움직임에 대한 재계의 관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