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사진기자단 |
그런데 여당 일각에서는 “이번 사정광풍이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자초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청목회 사건뿐 아니라 C&그룹 비자금 사건 등과 관련해 여권의 거물급 의원 몇 명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하지만 대포폰 수사에 대해서는 꼬리를 내리는 등 형평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어 내부갈등이 폭발 직전에 있다. 또한 야당도 겉으로는 청목회 사건에 대해 수사협조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여권 핵심 실세가 개입된 의혹에 대해 추가 폭로를 준비하는 등 적극적인 반격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도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인사 불만 세력의 저항 등으로 통제 불능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정정국을 기대했던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오히려 사면초가로 내몰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이 던진 사정광풍의 부메랑을 피해갈 수 있을지 추적해봤다.
검찰의 사정바람이 복잡한 양상으로 얽혀가고 있다. 청와대는 대기업 수사 등을 두고 국정 후반기 레임덕 방지와 4대강 예산안 정국에 대한 대야 압박용 등과 같은 ‘정무적’ 효과를 기대했다. 실제로 검찰의 정치권 사정에 대한 여론도 긍정적인 것으로 조사되면서 당분간 여의도는 바짝 엎드린 채 ‘춤추는 칼’을 지켜봐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사정정국을 조성했다가 오히려 그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른 격이 될 것”이라고 표현하는 인사도 있다.
먼저 검찰의 ‘불공정한’ 수사가 여권 내부 갈등을 촉발시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더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오는 점을 주목해보자.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태철)는 지난 11월 5일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여야 국회의원 11명의 지역구 사무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국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 의원 11명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은 거의 전례가 없는 검찰의 초강수였기 때문이다.
여권 내부적으로는 이번 압수수색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검찰의 통제 불능 사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여권 특정 실세가 대포폰 수사를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사정정국이 여권 권력 갈등을 재연할 것이라는 예측은 후자의 분석에 따른다.
먼저 이번 압수수색의 ‘배후’에 여권 권력 실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어른거리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북부지검이 여야 의원들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던 때는 대포폰 사건이 다시 정국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압수수색이 있었던 지난 11월 5일, 불법사찰 피해자 3인방인 소장파의 정태근 남경필 정두언 의원은 재수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안상수 대표와 홍준표, 서병수 최고위원까지 재수사를 해야 한다며 압박에 가세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가 이뤄진다면 정국은 또다시 이상득-박영준 라인과 ‘영포회’ 논란으로 시끄러울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은 정권 실세로 향하던 의혹의 화살을 청목회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압수수색의 ‘정치적 배후’를 거론하고 있다.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이에 대해 “정국 국면전환과 국회 공격을 위해서 청목회 사건을 박영준 차관 후배가 지검장으로 있는 북부지검에 배분하고 수사지휘를 맡긴 것이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여당의 한 관계자도 이에 대해 “불법사찰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상득 의원에게 ‘대포폰’ 파문은 큰 악재다. 박영준 차관의 후배가 지검장으로 있는 북부지검을 통해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는 의혹은 대포폰 정국을 덮기 위한 기획수사라는 정황을 굳혀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부지검은 소장파 정태근 의원의 보좌관이 지역구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생긴 사건에 대한 수사도 진행했을 정도로 소장파와는 악연이 있는 곳인 것으로 알려진다.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박 차관이 소장파 견제를 위해 북부지검에 자신의 라인을 심어놓고 수사를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압수수색을 보면서 ‘역시 그쪽에서 대포폰을 덮기 위해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청목회 사건 압수수색은 주류가 소장파를 간접 공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소장파에서는 일단 대응을 삼가고 있지만, “검찰의 정치인 사정정국 조성은 주류가 눈엣가시로 여기는 소장파를 죽이려는 기획수사의 일환으로도 이용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소장파는 “대포폰에 대한 재수사 없이 검찰이 아무리 다른 비자금 수사를 하더라도 그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라며 저항하고 있다. 이런 청목회 사건에 대한 시각은 청와대의 정무-민정 라인에서도 엇갈리며 내부 갈등을 노정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무라인은 대포폰 사건에 대해 특검까지 고려해야 하는 심각한 사태라는 인식이 강한 반면 민정 쪽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버티면 된다는 분위기가 강하고 대기업 수사 등으로 정국을 ‘턴’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사정정국은 여권 내부갈등을 촉발시키는 동시에 야당의 조직적 반발도 불러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더욱 위협할 수 있다. 민주당은 청목회 사건 압수수색에 대해 초반의 강경 분위기에서 일단 의원들 개별 대처로 수위를 낮춘 상태다. 여론이 검찰의 정치인 사정에 우호적이라 대놓고 반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 하지만 검찰에 마냥 밀릴 경우 그것은 야당의 존립 근거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생존 차원의 문제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조만간 민주당이 정권 핵심 실세가 연루된 제2, 제3의 폭로정국을 이끌어 내 이명박 대통령을 압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 2일 총리실이 청와대 지시에 의해 대포폰을 사용한 것과 관련, 국민들에게 소총폰이라도 지급하라고 비꼬았다. 연합뉴스 |
검찰의 통제 불능 징후도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위협하고 있다. 청와대 민정라인은 일부 통제를 벗어난 검찰이 현 정권이 철저하게 보호해야 할 실세들을 향해 정면으로 칼을 겨눌 경우 그것을 제어할 방어기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을 들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이번 검찰의 정치인 사정정국을 두고 여당 주변에서는 “검찰이 청와대와 협조 아래 잘하고 있는지, 아니면 컨트롤을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이는지 잘 모르겠다”라는 말들이 많다. 정답은 어떤 면에서 두 가지가 다 맞다고 할 수 있다. 청목회 사건 압수수색은 앞서 살펴본 대로 현 정권 실세들과의 ‘교감’ 아래 진행된 정치적 기획수사라는 의혹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여당의 대체적 시각은 “검찰이 이명박 정권 후반기를 맞아 점점 통제 불능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쪽이다. 여기에는 검찰 인사에 불만을 품은 조직 내부 세력 간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다음 검찰총수는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게 정설로 통한다. 경북 상주 출신인 그는 권력기관 내 대표적인 이상득 라인으로 꼽힌다. ‘열혈 고려대맨’인 노 지검장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을 건너뛰고 청와대와 직접 접촉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대포폰’을 폭로한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최근 “노 지검장이 대포폰의 파장을 우려해 청와대 민정수석(권재진)과 상의한 뒤 수사검사들에게 입단속을 시키고 사건을 덮었다고 한다”고 주장을 해 파문이 일었다. 현재의 검찰 조직 내부에는 TK 중심의 인사에서 소외돼 불만이 많은 ‘안티 이상득’ 세력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열혈 소장검사들도 다수 있다. 이들이 정치인 사정국면에 들어간 뒤 총장 등 윗선의 통제에 반발해 권력 핵심부에 칼을 들이댈 가능성은 충분하다.
여당의 한 소장파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사정기관의 통제는 점점 불가능해지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TK 위주 인사에 불만을 품은 검사들이 독을 품고 현 정권 실세들을 잡으려 할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고급정보들을 야당에 흘릴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것을 이명박 대통령이 컨트롤하지는 못한다. 권력 핵심들이 개입된 대형 게이트가 앞으로 터질 수 있다. 현 정권이 검찰 인사를 아주 공정하게 했으면 검찰 통제는 오래갈 수 있었겠지만 ‘만사형통’이 아직 존재하는 한 검찰은 점점 통제 불능 상황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주류 측 인사들이 걸려드느냐 마느냐는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이 검찰을 통제하기 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다면 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검찰의 사정정국은 여권의 내부갈등 심화, 민주당의 폭로정국 유발, 검찰의 통제 불능 사태 등을 불러일으키며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발목을 잡는 최대의 악재가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그 후폭풍을 피하는 방법은 대포폰 수사(지난 11월 11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59.2%가 재수사에 찬성하고 있음) 등을 최대한 ‘공정하게’ 하는 것 외에 돌파구는 없어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