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486 그룹이 독자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인영 최고위원도 ‘진보행동’에 참여했다. |
이들의 행보를 바라보는 당 안팎의 시각은 매우 복합적이다. 이들의 기치가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하며 세력을 확장해나갈지, 손학규 대표체제와는 어떤 관계를 형성해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지, 이들이 당내에서 새로운 주류로 부상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그 시점은 언제쯤일지, 나아가 2012년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이념을 내세워 누구를 지지할지, 이 모든 문제를 놓고 각 정파 간 이해와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간단히 바라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모임이 공식출범하기까지 1년여의 ‘숙성기간’을 거쳤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하자 진보진영 내에서 “이대로 가면 구심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면서 전대협 출신의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삼수회가 꾸려졌고, 매주 모임을 개최하면서 ‘처절한 반성과 치열한 모색’을 해왔다고 한다.
한 핵심 관계자는 그 반성의 내용에 대해 “386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한 인사들이 486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학생운동 시절 뜨겁게 외쳤던 구호를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모두가 여의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진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한 게 아니라, 현실의 벽을 핑계로 내세워 유력 정치인의 보호를 받는 각 계파로 흩어져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반성이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적당한 절충주의가 횡행했던 이 시절을 ‘하청정치 시대’로 정리했다. 지난 총선 때 불출마를 선언하며 탈당했던 김영춘 전 의원이 복당하며 지명직 최고위원직을 받아들인 것도 ‘뜬금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라, 삼수회 내에서 지난 행적에 대한 반성의 과정을 거친 결과라고 한다.
특히 이 모임에 참여한 42명이 모두 19대 총선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는 지역위원장이라는 점이 당내 긴장도를 더욱 높여놓고 있다. ‘진보행동’은 더 이상 친목모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당내 당’의 성격을 띤 정치결사체다. 당내 세 확대가 당장의 최우선 과제이지만, 19대 총선 결과에 따라 민주당을 ‘접수’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분당을 통한 독자정당화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모임 관계자들은 이런 관측에 대해 한결같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하지만, “분당 문제는 차기 총선 이후 대선 전망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게 아니냐”고 그 가능성을 아주 닫아놓지는 않고 있다.
게다가 유력 정치인 중심의 계파적 조직특성에서 탈피해 공동의 이념 추구를 목표로 세운 조직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일단 ‘진보행동’은 손학규 대표는 물론,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 등 당내 잠재적 대권주자군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정책적 차원의 지원과 견제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486 인사들이 속했던 계파나 친소관계 구별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는 차기 대권 구도에서 먼저 세력으로 결집한 뒤 후보 선택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정치과정에서 그 내부에서 상징성과 대중성을 갖춘 전국적 지명도의 인물이 등장할 경우와 기존 정치인 가운데 대안을 모색하는 경우 모두 그 판을 주도하는 주체는 ‘진보행동’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인영 최고위원이 그간 강조해왔던 ‘진보민주진영 대통합론’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포함하는 진보진영의 통합론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이면서, 판을 주도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진보행동은 우상호 전 의원이 운영위원장을 맡고, 임종석 전 의원은 기획운영위원으로, 김형주·한병도 전 의원 등 11명은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들이 내세운 이념적 기치는 진보와 민주 두 가지다. 진보는 정책적 지향점을 포괄하고 있고, 민주는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정통성을 의미한다.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세대적 과제를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그 함의를 공개적으로 검증받기 위해 ‘진보행동’ 발족식에서는 ‘진보·486·민주당’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다.
이들은 우선 ‘현장 민생 정치’를 통해 정책 이슈를 생산해낼 계획이라고 한다. 김영춘 최고위원이 서민대책특위 위원장, 이인영 최고위원이 4대강저지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진보행동’만의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월 1회 전국 곳곳을 찾아 농민, 노동자, 자영업자 등을 만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지역주의, 기득권 등을 타파하기 위해 영남과 부산 등 민주당 취약지역을 적극 돕고, 나아가 새로운 정치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우상호 전 의원은 ‘진보행동’ 출범과 관련, “더 이상 누구의 계파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고 486 정치인들이 국민과 공유하는 현실정치를 기반으로 ‘정치 독립’을 선언한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고통 받는 국민을 현장에서 만나고 이를 통해 정치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찾아갈 것”이라며 “4대강 문제 등 주요 이슈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정치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실험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하다. 한 당직자는 “486그룹이 더 이상 과거의 정치자산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자신들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아야 할 시기에 다다랐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밖에 더 되느냐”고 힐난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모두 권력을 맛을 본 사람들이 이제 와서 탈계파 정치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게 전혀 신선하지 않다”고 비꼬았다. 민주당 내에선 486그룹의 반성과 새로운 모색을 놓고 복잡한 시선들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