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코엑스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대기업들은 G20 공식일정에 포함된 장소, 동선 등을 파악해 자사 제품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협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러한 홍보문구를 달 수 있는 ‘특수’를 노리기 위해 대기업들은 G20 정상회의 기간 동안 뜨거운 홍보 및 협찬전쟁을 벌였다. 기업들 입장에서 G20 정상회의는 별도의 섭외과정 없이 각국 정상들과 세계 로열패밀리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이러한 ‘G20 대목’을 노리기 위해 공식일정에 포함된 장소, 동선 등을 파악해 자사 제품을 돋보이게 할 수 있을 만한 타이밍 등을 분석해 협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G20 정상회의 못지않게 치열했던 대기업들의 홍보 및 협찬 전쟁 속으로 들어가봤다.
세계 VVIP들이 사용한 물건은 행사가 끝난 후에도 지속적인 홍보효과를 누린다.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APEC) 당시 건배주로 사용된 ‘천년약속’은 2004년 4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2006년 185억 원까지 뛰었다. 만찬주 ‘보해 복분자주’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6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사례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이었을까. 이번 G20 정상회의 기간 동안 홍보 특수를 누리고자 하는 기업들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다.
롯데그룹의 경우는 ‘세계 VVIP 관계자들이 선택한 한식’이란 타이틀을 얻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서울 롯데호텔은 지하1층에 있던 한식당을 호텔의 노른자위로 불리는 최고층인 38층으로 옮겼다. G20 전만 해도 호텔을 찾는 내외국인들이 주로 일식, 중식, 뷔페를 선호하는 데다, 한식의 경우 인건비와 식자재가 많이 들어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 분야였다. 따라서 본래 롯데호텔 최고층에는 일본 현지 정원을 본뜬 화려한 인테리어와 일본 코스요리 전문점이 들어서 매출을 올리는 데 공헌하고 있었다. 그러나 롯데호텔 서울 측은 G20 기간 동안 세계 귀빈들의 입맛이 가장 한국적인 것에 맞춰질 것이라 예상하고 1년 전부터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층에 한식당 ‘무궁화’를 이전하고 확장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 50억 원의 투자비용이 들었고 공사 기간 동안 급감하는 매출손해 역시 감수해야 했다.
LG그룹의 경우는 ‘세계 정상들의 눈을 사로잡은 TV’ ‘영부인들의 눈을 편하게 한 조명’이란 타이틀을 얻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LG전자는 11월 12일 각국 영부인들의 오찬 장소가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라는 것이 밝혀지자마자 해당 장소에 모두 357개의 LED조명을 설치했다. 한국가구박물관은 한국 전통가옥 10여 채로 구성된 박물관으로 2000여 점의 전통 목가구를 소장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일반 조명에 비해 LED조명은 발열량이 적고 덜 눈부시기 때문에 영부인들의 눈 피로를 덜어줄 것이다”며 “전통가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재질의 고유한 느낌을 살리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제격이다”고 홍보했다. 또 LG전자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모이는 G20 공식 행사장과 문화공연장 등에 LG전자의 LED TV 및 3D TV를 지원해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LG와 롯데가 먹을 것과 볼거리에 집중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했다면 삼성은 이번 G20 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먼저 삼성재단에서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은 주요 20개국 ‘퍼스트레이디’들이 한국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첫 장소로 공식 일정에 포함되는 기회를 얻었다. 11월 11일 일정 첫날, 20개국 영부인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러 역사적 유물을 감상한 후 리움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미술관장의 안내를 받아 미술작품을 감상했다. 또 미술관 내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이날 저녁 식사는 신라호텔 주방장이 직접 만든 한식 만찬이었다.
G20 준비위 측은 리움미술관을 공식 일정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 “미술관 측이 보유한 방대한 예술작품 등을 감안하면 만찬 장소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1박2일이라는 짧은 일정 동안 결코 비중이 작지 않은 첫날 저녁 시간대에 삼성의 리움미술관이 공식 일정으로 잡힌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움미술관은 국공립이 아닌 개인 미술관이기 때문에 적합지 않다는 논리다. G20 준비위 관계자는 “리셉션장인 국립중앙박물관과도 거리가 멀지 않은 데다, 세계적인 건축가 세 명이 한국의 전통 도자기에서 영감을 얻어 건물을 설계했다는 점도 한국의 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김윤옥 여사를 비롯한 G20 정상회의 참가 영부인들이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배우자 환영 리셉션에서 건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제일기획이 제시한 IT기반 사이버 정상회의장에 관한 계획은 삼성전자 태블릿PC ‘갤럭시탭’의 활용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거물급 최고경영자(CEO) 120여 명 모두에게 갤럭시탭을 제공해 자연스레 홍보효과를 누렸다. 회의장에 들어서면 세계 무역투자, 금융, 녹색성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등 4개 분과의 참석자들 책상에 갤럭시탭이 모두 하나씩 올려져 있었고, 그 자리에 앉을 참석자 개인별로 캐리커처를 그려 바탕화면에 깔아 놓는 서비스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갤럽시탭 사용법을 옆 자리에 앉은 맥시코 국영석유회사인 페멕스 사장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보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 이틀 동안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자사 제품을 협찬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대기업들의 홍보 마케팅이 이후 투자 대비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둬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설화수 화장품’ 벌써 대박
기업들의 노력이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는 잠재적 효과라면 벌써부터 매출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김윤옥 여사가 20개국 퍼스트레이디 및 국내외 기자단 3000명을 위해 준비한 선물세트다.
김 여사는 기자단 선물 세트와 한국가구박물관 일정 중 20개국 국가의 퍼스트레이디에게 줄 선물을 모두 국내 화장품 ‘설화수 5종 세트’로 선택했다.
G20 준비위 측은 설화수 선물세트로 선정한 배경에 대해 “대한민국만이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을 각국 정상들에게 전달한다는 취지에 설화수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공식선물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설화수 이외에도 국내에서 만든 한방 화장품이 존재하지만 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은 “가장 적합한 브랜드를 가려내기 위해 임원단 회의와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설화수가 국내 화장품 중 유일하게 귀빈들의 선물로 선택됐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러한 기회를 적극 활용해 자사 브랜드 철학 및 제품홍보 브로슈어를 동봉해 세트를 제작·전달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현재 동일 제품을 구매하려는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폭주한 수요만큼 제품이 남아 있질 않아 예약주문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국빈 만찬에 쓰인 음식재료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11월 12일 각국 정상들이 낮 12시30분 오찬으로 상주 한우, 서해산 넙치, 제주 한라봉, 영덕 대게 등을 먹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온라인 쇼핑몰에서 해당 제품의 판매율이 3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G20에 묻힌 대형 참사들
해군·공군 사고…등잔 밑 안전 구멍
11월 11~12일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 서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는 각국 정상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경찰력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G20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일어난 대형 참사들은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해군 고속정이 침몰했고, 공군기가 추락했는가 하면 요양원 화재로 적잖은 인명 피해를 입기도 했다.
11월 10일 밤 11시경, 제주 해상에서 150톤급 해군 고속정(참수리 295)이 270톤급 어선(106우양호)과 충돌해 침몰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수병 1명이 사망했고, 2명이 실종됐다. 정부는 이날 침몰한 참수리 고속정이 야간 경비임무를 수행한 후 귀환하다 어선과 충돌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고 당시 기상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 고속정에는 접근하는 선박을 식별하는 항해 레이더가 있다는 점, 운항 당시 조타실에 정장과 부정장이 있었고 관측요원이 따로 배치돼 있었는 데도 고속정보다 2배 큰 우양호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고속정 승무원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점도 납득하기 힘든 사안으로 지적받고 있다. 결국 사고는 ‘해군의 기강 해이’가 원인이 됐을 것이란 관측 쪽으로 힘이 실리고 있다.
다음 날인 11일에는 증시가 폭락했다. 마감 직전까지 2800억 원 이상 매수 우위였던 외국인이 동시호가 때 1조 6000억 원 이상 팔아치운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다시 말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외국 회사의 프로그램 대량 매도로 동시에 호가가 급락해 전일 대비 53.12 포인트 빠진 것이다. 이로 인해 프로그램 매도가 촉발되고 시가 총액 상위 종목들도 무더기로 하락했다. 이 탓에 몇몇 증권사와 운용사들은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고, 투자자들도 충격에 휩싸였다.
사건은 이뿐만 아니다. 12일 새벽에는 포항시 남구 인덕동에 위치한 인덕노인요양원에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당했다. 불은 30분 만에 진화됐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몸이 불편한 노인이어서 인명피해도 늘어났다. 또 이날 낮 1시경에는 전북 전주에서 공군 정찰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군은 “오전 11시50분께 이륙해 임무 중 12시30분께 전북 전주시 남방상공에서 공군 RF-4C 정찰기 1대가 추락했다”고 밝혔다. 조종사인 전방석 김 아무개 대위와 후방석 김 아무개 대위는 모두 순직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개포동의 박 아무개 씨(여·51)는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고 공군·해군 사고는 국가 방위와도 직결되는 사안인데 (정부가) G20 때문에 너무 무심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