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CN TV무비 <직장연애사> 메인 포스터. |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호칭’에 관한 고민을 한다. 호칭 하나로 동료나 선배, 후배와 미묘한 관계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장 내에서는 호칭이 서열과 관련될 수도 있고, 듣기에 따라 기분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부르는 사람이나 불리는 사람 모두를 애매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호칭이다. 이로 인한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존칭을 해줘도 문제가 생기고 친근하게 하대를 해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호칭 때문에 사회생활의 씁쓸함을 맛보는 경우도 있다. 여성 직장인들이 호칭 때문에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들어봤다.
직장에서는 존칭이 기본이다. 하지만 때로 이 존칭이 서로간의 벽을 허물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존칭을 하는 것에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 때는 더 더욱 그렇다. 외식업체로 이직한 지 3개월이 넘은 K 씨(여·30)는 다른 직원들과의 호칭 문제가 여전히 신경 쓰인다. 호칭으로 은근히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경력직으로 들어오자마자 대리 직급을 달았어요. 그게 먼저 입사한 다른 여직원들 보기에는 좋지 않았나 봐요. 보통 직급을 붙여서 부르는데 꼬박꼬박 ○○ 씨라고 부르더군요. 다른 직원들끼리는 ‘○ 대리, 점심 먹으러 갈까’ 하면서 친근하게들 지내는데 저에게는 극존칭을 하면서 직급은 항상 빼고 말을 건네요. 하대하는 것도 아니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은근히 기분이 상하더라고요. 직원들이 회사 문만 나서면 동갑들끼리는 서로 친구처럼 ○○야, 하고 부르는데 제가 있으면 좀 자제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호칭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건 사실이에요.”
K 씨는 고민이다.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서 편하게 부르라고 하자니 막 대할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답답하다. 그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 같아서 일단 조용히 있는데 이렇게 소외감을 느끼면서 일을 하니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직장에서는 호칭으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다반사다. 도자기 유통업체에 다니는 L 씨(여·32)는 지금은 친구 사이가 된 전 직장 동료와 퇴사 직전까지 호칭이 애매했다. 그때는 누구 한 쪽도 먼저 호칭 문제를 정리하려고 하지 않았었다고.
“제가 1년 먼저 입사해서 다니고 있었고요, 그 친구는 저보다 2년 정도 경력이 많은 상태에서 저희 회사로 이직해 온 경우였어요. 경력은 적었지만 입사는 제가 먼저였고 친구와는 나이와 직급이 같았습니다. 근데 호칭이 참 어렵더군요. 편하게 말을 하자고 제의할까 했지만 서로 눈치만 보게 되고 쉽지 않더라고요. 누구 한 사람이 먼저 벽을 허물어야 하는데 괜한 자존심 때문에 여직원이라고는 달랑 두 명밖에 없으면서도 존칭 쓰면서 지냈습니다. 성격상 맞지 않았지만 꼬박 1년을 서로 ○○ 씨라고 불렀어요. 그러다 거의 동시에 이직하면서 밖에서 만났는데 성격이 너무 잘 맞는 거예요. 지금은 고향친구처럼 편해서 호칭이고 뭐고 없습니다.”
L 씨는 그때 마음을 조금만 더 일찍 열었더라면 훨씬 재미있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는 “호칭이 어려우니까 동갑에 사정이 비슷해도 상사나 직장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없어 답답한 적이 많았다”며 “지금 사이 같았으면 서로 의지하면서 이직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칭을 깍듯하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하대하는 것은 더 문제다. 자존심 문제와 직결돼 직장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식음료 수입업체에 근무하는 S 씨(여·24)는 진지하게 퇴직을 고려하고 있다. 호칭으로 시작된 자존감 문제가 심각해졌다.
“직원이 30명 정도 돼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첫 직장이었고 지금은 경리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가 어려서인 것도 있지만 다른 직원들이 저에게 ○○야 라고 부릅니다. 다른 여직원들은 ○○ 씨나 직급을 붙여서 부르는데 저만 그렇게 불리죠. 워낙 같이 오래 근무한 탓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근본적으로 ‘무시’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여직원들은 전문대라도 일단 대학을 나왔지만 저는 그렇지 않은 것도 이유인 것 같고요. 단순히 호칭 문제를 떠나서 전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아서 마음이 편치 않아요. 요즘 들어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자기계발을 해야지, 이러다간 직장에서 늘 하대만 받고 허드렛일만 하다가 퇴사할 것 같아 고민이 많습니다.”
호칭 때문에 씁쓸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은 ‘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부족할 경우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IT 관련 업체에 일하는 Y 씨(여·28)는 호칭 때문에 어색한 직원이 생겼다.
“제가 입사하고 6개월 뒤에 저보다 세 살이 많지만 신입으로 들어온 직원이 있어요. 다른 일을 하다 업종을 바꿔서 나이가 많더군요. 그래서 꼬박꼬박 호칭도 높여서 부르고 존칭을 썼죠. 하루는 메신저를 하게 됐는데 입사도 먼저고 하니 저보고 편하게 부르라는 거예요. 서로 불편하지 않느냐면서요. 둘이 있을 땐 그냥 오빠라고 해도 된다면서 말 낮추고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데 처음엔 좀 놀랐죠. 그런데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해외 경험도 많고 노래도 잘하고 해서 점차 호감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오빠라고 불렀어요. 그 직원도 저한테 호감이 있는 줄 알았죠. 그런데 알고 봤더니 다른 여직원들에게도 ‘오빠라고 불러요’라고 했더라고요. ‘특권’을 누렸는지 알았더니 완전 빗나갔죠. 그것도 모르고 술 한잔하자고 부르고, 회식자리에서도 티 나게 옆자리에 앉곤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올라서 서로 어색해졌습니다.”
중소기업 회계팀에서 일하는 N 씨(여·33)도 호칭 때문에 고민하고 속상해 했던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 호칭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는 곳에서는 그 룰을 따르면 되고, 없는 곳은 자연스런 호칭이 친근함의 표시일 수도 있으니 스스로 하대로 생각해서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는 “한참 어린 직원이 누나라고 부르는 곳도 있었지만 몰라서 그런 거라 천천히 고쳐나갔다”며 “억지로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인간적인 신뢰를 쌓으면 호칭은 저절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고 충고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