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인기는 활엽이 독차지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침엽도 단풍이 드느냐?”는 이들이 많다.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침엽수림이라 봐야 거의 소나무가 유일하니까. 당연히 소나무에는 단풍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담양과 화순 등지의 메타세쿼이아는 가을이 되면 그야말로 불탄다. 또 있다. 그렇게 화려한 가을을 보내는 침엽수림이 바로 태백의 낙엽송들이다. 35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흘러나오는 낙엽송들의 가을 찬가. 그 흥겨운 노래를 감상해볼까.
이국적 풍경 구와우마을
‘태백’ 하면 역시 태백산이다. 하지만 그것은 겨울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새하얀 눈이 빚어내는 설경은 태백산 제일의 자랑거리다. 일단 태백시청이 있는 황지동으로 길을 잡는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만추드라이브가 시작된다. 우리가 타야 할 길은 35번 국도다. 태백에서 삼척으로 향하는 길로 곳곳에 보물 같은 명소를 품고 있고, 좌우로 펼쳐지는 낙엽송들의 샛노란 물결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하다.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첫째 장소는 구와우마을이다. 해바라기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해바라기가 다 지고 없다. 그런 곳에 뭐 볼 것 있다고 정차를 할까. 하지만 과감히 해바라기축제장 안으로 들어가보자. 야트막한 언덕이 좌우로 버틴 가운데, 터덜터덜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며 먼지가 풀풀 날린다. 언덕에는 낙엽송들이 띄엄띄엄 심어져 있다. 낙엽송은 노랗게 잎이 변색되어 있고, 언덕의 풀은 아직 푸르다.
해마다 해바라기를 가꾸며 이 축제장을 꾸려가는 김남표 대표의 작업장이자 침실 건물이 한 귀퉁이에 있다. 이 건물들의 삼각지붕마저 생소해서 전체적인 풍경이 이국적이다. 김 대표는 조형예술가집단 ‘할아텍’의 일원으로 작업장은 축제기간 동안 전시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는 8년 전 이곳으로 들어와 해바라기를 심고, 각종 고산식물의 씨를 뿌려 가꾸고 있다.
구와우마을 해바라기밭은 낙엽송과 강아지풀이 만들어내는 가을의 이미지가 기막히다. 낙엽송들이야 두말할 나위 없고, 해바라기밭에 가득한 강아지풀이 햇빛에 부서지며 황금처럼 빛나는 모습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구와우마을의 가을 풍경. |
다음 들를 곳은 검룡소다. 한강의 발원지로 구와우마을에서는 10㎞가량 떨어져 있다. 3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검룡소 가는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5분쯤 달리면 검룡소 입구다. 그런데 이 길이 또한 만만치 않게 좋다. 골이 깊은데, 낙엽송이 아주 무성할뿐더러 초록의 호밀밭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단풍 들고 낙엽 지는 이 늦가을에 초록의 호밀이라니.
금세 닿을 거리인데도 자동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되고, 멈추는 시간만큼 마음에는 여유가 쌓인다. 검룡소 입구에 마침내 닿으면 조금 걸어야 한다. 검룡소까지 약 1.4㎞ 산길이 놓여 있다. 거의 평탄해서 힘들지는 않다. 검룡소 물줄기 사진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챙기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끼 복원을 위해 삼각대 반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검룡소를 향해 가는 산책로가 무척 호젓하다. 봄여름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지만, 가을에는 사람들의 여행목록에서 지워진 까닭에 조용하다. 요란한 산새들의 지저귐이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묻히지 않아서 기분이 좋다.
검룡소의 물은 고목나무샘, 물구녕석간수, 제당굼샘에서부터 지하로 흘러와 솟구치는 것이다. 물줄기가 용이 솟구치는 것처럼 흘러나온다고 해서 ‘검룡소’다. 수만 년 동안 흘러온 물줄기 탓에 주변의 바위들이 깎이고 또 깎이어 마치 그릇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검룡소에서는 대덕산과 분주령 방면으로 등산을 할 수 있는데, 아쉽지만 참아야 한다. 11월 1일~12월 15일을 가을철 산불조심 기간으로 정해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정동진보다 먼저 해 뜨는 마을
검룡소에서 나와서 다시금 3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차례대로 예수원과 귀네미마을이 나온다. 예수원은 수도원과 같은 곳이다. 미국의 성공회 사제인 대천덕 신부가 특수 선교를 목적으로 1965년에 설립한 예수원은 돌로 지은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주변의 낙엽송들과 어울려 이곳도 묘한 가을빛을 낸다.
귀네미마을은 <1박2일>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고랭지배추를 재배하는 곳으로 정동진보다도 더 일찍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이곳이다. 해발 950m의 귀네미마을에 올라서면 동해바다가 훤히 펼쳐지는데, 정동진보다 1분가량 먼저 해가 떠오른다고 한다. 지금은 푸른 배추밭을 볼 수 없지만, 귀네미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낙엽송들의 배웅이 그 아쉬움을 달랜다.
귀네미마을은 1989년 9월, 광동호가 생기면서 수몰민들이 이주해서 사는 곳이다. 20여 가구가 있다. 약 72만㎡에 이르는 광활한 배추밭을 보면 과연 인간이 일군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물빛 단풍빛 찬란한 광동호
만추 태백의 드라이브는 광동호에 이르러 끝이 난다. 광동호는 삼척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호수를 둘러싼 산마다 낙엽송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가던 길을 멈추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광동호는 한강 제2지천인 골지천의 물이 모여 호수를 이룬 곳이다. 유역면적이 125㎢로 제법 넓다. 해가 고개를 내밀면 호수의 물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낙엽송은 화려한 자신들의 색깔을 수면에 풀어 놓는다.
참, 35번 국도를 달리다보면 자작나무 군락지를 흔히 볼 수 있다. 자작나무는 요즘 잎을 버리며 온전히 자신의 마른 몸만으로 빛낼 준비를 하고 있다. 손수건 같은 노란 낙엽을 흩날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한편, 태백을 여행하려거든 소도동의 태백체험공원도 찾아보도록 하자. 함태탄광 폐광지를 되살려 조성한 체험관광지다. 함태탄광은 연간 약 378만 톤을 생산하던 비교적 규모가 큰 탄광이었으나 1993년 폐광됐다. 태백시에서는 2006년 탄광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해 개장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제천IC→38번 국도→영월→정선→태백→35번 국도→구와우마을→검룡소→예수원→귀네미마을→광동호 ▲먹거리: 구와우마을에 있는 구와우순두부(033-552-7220)를 ‘강추’한다. 허름하고 작은 집이지만 맛만은 구수하고 깊다. 순두부 5000원, 모두부 5000원. 콩비지는 무료로 나눠준다. ▲잠자리: 아무래도 태백역이 있는 황지동으로 가는 것이 좋다. 이스턴호텔(033-553-2211), 이화모텔(033-552-2116), 호텔메르디앙(033-553-1266) 등이 있다. ▲문의: 태백시 관광문화과 033-550-2081, 태백시 관광안내소 033-550-2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