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 부사장의 승진은 삼성그룹 조직개편의 신호탄이다. 이제 연말 인사의 남은 초점은 이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로 모아진다. 특히 이부진 전무의 경우 ‘리틀 이건희’라는 별명답게 최근 그룹 내에서 ‘광폭행보’를 벌이며 남다른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그의 향후 행보에 따라서 그룹 구도가 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말 삼성그룹 인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다가오는 삼성그룹 인사에서 이재용 부사장의 승진에 버금가는 관심사는 아마도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의 승진 여부일 것이다. 이 전무는 전무 직함을 단 지 이제 1년이 됐다. 지금까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3년 연한을 채워야 했다. 2년 전 이재용 부사장이 사장으로의 승진이 점쳐졌을 때도 이 조항에 걸려 승진이 한 해 미뤄진 바 있다.
그러나 이 전무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최근 이건희 회장이 폭 넓은 인사를 강조했고 각종 승진 근무연한도 축소됐다. 일각에서는 성영목 호텔신라 사장이 올해 말로 임기가 만료돼 이 전무가 이 자리에 앉을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반면 전반적으로 승진 근무연한이 줄었지만 전무에서 부사장 승진 연한 3년은 그대로인 것을 근거로 이 전무가 이번에 승진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부진 전무 인사와 관련해서는 승진도 승진이지만 사실 보직 변경, 혹은 확대 여부가 더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삼성그룹 내에서 ‘포스트 이건희’로 이재용 부사장을 꼽는 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삼성그룹이 언제인가 계열분리를 하게 된다면 그 방법과 시기는 이부진 전무의 향후 행보에 달렸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전무의 행보만 봐도 왜 이런 전망이 나왔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등 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그룹이 전자와 금융 등으로 나눠질 것이라는 예측은 금산법이 생기면서부터 있어왔지만 보다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이 전무가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을 겸임하면서부터다.
이 전무의 삼성에버랜드 임원 겸임은 몇 달 전부터 치밀한 사전정지 작업을 한 가운데 이뤄졌다고 한다. 특히 호텔신라에 있던 이 전무의 최측근이 먼저 에버랜드 임원으로 수평이동을 했다. 이 측근은 이 전무의 해외출장에도 동행하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던 인물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측근이 에버랜드로 발령이 났다는 것은 이 전무가 에버랜드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할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이때부터 삼성그룹 내부에서 향후 그룹 계열분리에 대한 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이 전무가 에버랜드 전무 겸임이 확정됐고 레저·서비스부문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삼성그룹 전체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이 전무의 연말 인사에 관심이 가는 또 다른 이유는 삼성물산 때문이다. 그는 올 들어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대한 경영진단(감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등 건설부문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특히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 전무는 ‘건축=디자인’이란 생각 때문에 건설부문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삼성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사실상 이 전무가 삼성물산을 ‘핸들링’한다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물산은 바이오 광물 사업 등에서 삼성의 차세대 주력사업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즉 지금까지 이 전무가 비공식적으로 삼성물산에 관여해왔다면 연말 인사를 통해 삼성물산에 공식 입성할지에 삼성그룹 내외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전무의 광폭행보 뒤에는 ‘리틀 이건희’라 불릴 정도로 남다른 그의 집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전무가 업무와 사업에 대해 갖는 열정은 삼성그룹 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호텔신라 상무 시절이던 지난 2007년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불과 사흘 만에 사무실에 출근,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해 직원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오빠인 이재용 부사장에 대해 갖는 경쟁의식도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신라 임원 출신의 한 인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재용 부사장이 외국 바이어와 함께 신라호텔에 들러 스테이크로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후 이 부사장이 이 전무에게 전화로 스테이크 품질에 대해 평가를 좋지 않게 했다는 것. 이 전화를 받고 이 전무는 크게 화를 냈고 관련 직원들에 대한 문책도 뒤따랐다. 오빠인 이 부사장에게 지기 싫어하는 이 전무의 성격을 보여준 셈이다.
만약 일각의 예상대로 그가 공식적으로 삼성물산 경영에 관여하게 될 경우 향후 삼성그룹이 계열을 분리하게 되면 그가 가져가는 파이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삼성그룹 측은 인사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계열분리나 후계구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 전무의 연말 인사가 향후 삼성그룹의 구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가늠자’임은 분명해 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 김순택 부회장. |
‘이재용 승계’ 컨트롤하라
삼성그룹이 전략기획실 해체 1년 7개월 만에 컨트롤타워 재건에 나섰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지난 19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이건희 회장 지시로 그룹 조직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며 “그룹 조직을 꾸려 나갈 책임자로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인 김순택 부회장이 임명됐다”고 밝혔다. 컨트롤타워 조직은 지난 2008년 4·22 삼성 쇄신안을 통해 해체된 전략기획실과 같은 형태로, 김 부회장이 과거 전략기획실장의 역할을 맡게 된다.
전략기획실장을 지낸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으로 발령받았다. 이에 대해 이인용 팀장은 “과거 전략기획실 임원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이학수 고문의 입지가 좁아질 거라 보는 시선은 많지 않다. 컨트롤타워를 이끌게 된 김 부회장은 이 고문의 입사 1년 후배로 두 사람은 전략기획실 전신인 그룹 회장비서실에서 14년간(1982~1996년)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다.
때문에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1년간 컨트롤타워 수장을 맡았던 이 고문의 노하우가 김 부회장의 그룹 조직 운영에 어떻게든 녹아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건희 회장의 머릿속에 새 컨트롤타워를 바탕으로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딸들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의 승계와 계열분리 관련 구상이 한창 바쁘게 그려지고 있을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