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정권 초기 벤처 육성의 골격을 마련한 유종근 전 전북지사(오른쪽).당시 서울 테헤란밸리는 벤처기업의 메카로 각광받았고(1.위), 코스닥 열풍은 온 국민을 증시로 끌어들였다(2.아래). | ||
한국 경제에서 벤처기업 육성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98년 무렵이었다. 당시 IMF사태가 터지자 김대중 정부는 대기업의 경영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벤처기업 육성에 매달렸다.
그러나 6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김대중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에 대한 평가는 성공보다는 실패했다는 데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하다.
사실 이 문제는 한국 경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현정부도 그렇고,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도 이 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6년 전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벤처기업 정책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지금쯤 한국 경제는 한 단계 도약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이 정책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없다는 점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벤처기업 정책과 관련해 지금도 정부 당국자나 경제전문가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째는 이 정책을 고안해낸 당시 권력층의 정책 출발점이 대기업에 대한 반발심이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벤처기업에 대한 당시 정책당국자들의 무지함이었다는 점이다.
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정권인수위의 최대 과제는 어떻게 IMF 관리체제를 조기에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고, 그 중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해 신권부에서 가장 무게를 둔 분야가 벤처기업 육성이었다.
이 정책의 기본골격을 만들어낸 사람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특보를 맡고 있던 유종근 전 전북지사였다. 유 전 지사는 이 정책의 기초를 당시 미국 클런턴 행정부의 벤처밸리정책에서 가져왔다는 게 정설. 그는 이 정책을 만들어내면서 김 전 대통령에게 큰 칭찬을 들었던 것으로 당시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당시 인수위 정책팀은 98년 2월 말까지 벤처기업 육성책을 만들고, 그해 6월부터 재경부-산자부-과기처-정통부-공진청 등 관계기관을 총동원해 본격적으로 벤처기업을 발굴해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를 위해 재경부는 1차로 총 20조원의 벤처기업 지원금을 마련하고, 99년에는 최소한 30조원, 그리고 2000년까지는 최대 50조원가량의 지원자금을 추가로 벤처기업에 투입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 정책안은 처음부터 극비리에 부쳐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입안 초기부터 언론을 통해 그 내용이 알려지게 됐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이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공개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정책이 실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정부의 벤처정책이 알려지면서 당시 형편없던 코스닥시장의 일부 벤처기업 주가가 수십 배씩 폭등하는 현상이 빚어진 때문이었다. 벤처기업 육성책이 본격화되면 우선적으로 기존 벤처기업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집중할 것이라는 시장의 판단이 선수를 친 셈이었다. 정부정책을 홍보하기에 바빴던 일부 정책담당자들의 자가발전식 행위가 한국 경제의 백년대계를 그르치게 한 원인이 되고 만 것이었다.
98년 7월부터 시작된 코스닥 열풍은 시중의 자금을 모두 이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한글과소프트, 골드뱅크, 장미디어, 나모, 한국기술투자, 세원텔레콤, 맥슨전자, 한국정보통신 등 97년까지만해도 별 볼일 없던 코스닥시장의 벤처기업 주가는 2~3개월 만에 수십만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폭등세를 기록했다.
이렇게 되자 벤처시장 내부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일들이 벌어졌다. 떼돈을 번 일부 벤처기업 오너들이 그 돈을 가지고 잇따라 새로운 벤처기업을 설립하거나 기존 벤처기업을 M&A하는 이합집산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정부가 이 정책의 추진 방향을 다른 방면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당초 정부는 핵심 기술을 가진 다수의 벤처기업을 선정해 정책과 자금을 지원, 고용창출과 경제시너지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벤처기업을 둘러싼 머니게임이 벌어지면서 벤처기업들은 기술개발이나 고용창출보다는 벤처기업인들의 머니게임판으로 치닫고 말았다.
이에 98년 9월경 정부는 벤처기업 정책의 원래 취지를 살리기 위한 2차 육성방안을 만들었다. 벤처기업 지정을 보다 엄격히 하고, 벤처기업에 대한 법률적 규제방안을 만드는 한편 금감원 제3국에 관리권을 주었다.
그러나 이미 시장은 돈놀이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주가장난으로 떼돈을 번 일부 벤처기업인들은 돈을 앞세워 정부정책마저 좌우했다. 재미있는 것은 일부 권력층 인사들이나 권력층 자제들까지 이 판에 끼어들어 언더테이블머니를 챙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벤처기업인들로부터 막대한 로비자금을 챙긴 뒤 정부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전개, 벤처 관련 정책까지 뒤바꾸어 놓기도 했다. 대표적인 벤처투자회사인 M사를 겨냥한 투자범위 확대 및 수수료율 인상책 등은 대표적인 로비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벤처기업 정책은 98년 말경 이미 초기 정책방향과 크게 멀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정부도 이 부분을 원래 목적대로 되돌리려는 의지가 없었다. 어쩌면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98년부터 시작된 벤처기업 붐은 2004년 현재까지 산업측면에서 핵심코어가 몇 단계의 변화를 보여왔다. 1차 붐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업체들이었고, 2차는 휴대폰부품업체, 3차는 벤처기술투자업체, 4차는 인터넷 관련 업체였다.
그렇지만 벤처기업 육성이 시작된 지 6년이 흐른 지금, 벤처시장으로 몰렸던 인재들은 거리로 내몰려 있다. 머니게임으로 한탕을 했던 대부분의 벤처기업인들도 고등실업자가 되어 있다. 요즘 청년실업이 문제가 되면서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에 대해 다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정부는 과거 벤처기업 육성책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 성공과 실패를 분석한 다음 차근차근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선섭 기자
** ‘재계비화 사실은’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