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 마을이 폐허가 돼버렸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남북 충돌이 있었지만 민가가 포격당하는 ‘전시상태’는 처음이라 우리 국민들은 사건 발생 이후에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북측의 도발로 인한 피해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다양한 문제점들이다. 북측 도발의 사전 징후 감지 여부, 군과 정부당국의 미숙한 대응 논란, 전쟁에 대한 안전 불감증 실태 등 각종 사안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11월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군의 무차별 포격이 시작됐다. 12분 동안 모두 150여 발의 포탄이 연평도 민가를 비롯한 해상에 내리 꽂혔다. 우리 군은 내부포상으로 대피한 후 반격을 개시했다. K-9자주포로 대북 공격을 한 시간은 오후 2시 47분부터 오후 3시 15분까지. 북한의 첫 공격이 있은 지 13분 만에야 대응사격이 시작된 것이다. 2차 포격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북측은 오후 3시 12분부터 다시 20여 발의 포 공격을 해왔고, 우리 군은 오후 3시 25분부터 대응사격을 했다. 결과적으로 북측의 포격이 끝난 시점부터 겨우 대응사격을 한 셈이다.
만약 북한군의 포격이 연평도가 아닌 수도권을 겨냥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까. 북측의 처음 공격 이후 7~14분 안에 적의 폭격지점을 초토화시켜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연평도에서 드러난 우리 군의 대응은 수도권이 쑥대밭이 되고 나서야 겨우 대응사격을 한 결과를 연출했다.
합참과 해병대 측은 초기대응이 늦은 이유에 대해 적극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13분의 시간은 적의 포탄이 쏟아질 때 탄흔 분석과 레이더를 통해 적의 공격지점을 파악하는 데 소요됐으며, K-9 자주포를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 꺼내 2분 만에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뒤집는 다양한 근거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11월 24일 먼저 170발에 못 미치는 80발의 자주포만 날아간 것은 이번 대응 사격에서 6문 중 1문은 이미 고장 났고, 다른 1문도 불발탄으로 포신이 파열돼 4문만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11월 25일 브리핑에선 다시 4문이 아닌 3문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나마 쏘아 올린 80발도 북한에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K-9자주포는 포탄이 똑바로 나가는 직사포가 아닌 곡사포인 탓에 해안절벽에 진지를 만들고 발사하는 북한의 해안포를 공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해안포를 파괴하려면 포문지점을 정확히 공략해야 하지만 포탄이 포물선형 궤도를 그리며 떨어져 해안포를 공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K-9자주포는 해안포 포구가 아니라 북 해안포 부대의 막사 등을 향해 사격해 정작 북한 해안포는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포병레이더 장비의 오작동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대포병레이더는 이번 공격과 같이 갱도나 동굴 진지 등에서 발사된 포탄의 발사지점을 포착해 우리군 자주포에 타격지점을 알려주는 장치다. 우리 군은 2차 공격 때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해 대응사격을 할 수 있었다. 1차 대응사격 때부터 포탄이 발사된 개머리 포진지를 공격했더라면 2차 포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147억 원에 달하는 레이더 장비의 오작동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더욱이 군은 1차 공격 시 레이더가 아예 작동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작동이 됐는데 탐지가 안 된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입장을 바꿔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당시 대포병레이더가 북한군의 포탄에 의한 전자회로상 기능장애로 제대로 식별을 못했었다”고 주장하다가 이후 “원리상 저탄도는 탐지가 잘 안되기도 한다”고 말을 바꿨다.
‘진돗개 1호’ 발령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북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으로 격상하지 않고 국지도발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것이 적절했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도 즉각 해명했다. 데프콘으로 격상하려면 최고 군통수권자인 한미 양국 정상의 합의가 필요한데 미국이 새벽시간인 데다 특정 도시에 국한된 도발이어서 먼저 국지도발 최고 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에 포격을 가한 점, 최초 민가 습격 사건이란 점에서 데프콘 격상이 적절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북한이 왜 갑자기 도발을 강행했는지 여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북 측은 연평도 포격은 남측의 호국훈련에 대한 ‘자위적 조치’였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11월 24일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우리 혁명무력은 23일 조선 서해의 연평도에서 우리 측 영해에 포사격을 가한 적들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에 대응해 단호한 자위적 조치를 취했다”며 “적들이 악명 높은 북침 전쟁연습인 호국 군사연습을 벌였고, 우리 군대는 우리 측 영해에 한 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질 경우 즉시 대응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이미 여러 차례 경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을 자극했다는 호국훈련은 어떤 것이고 포격 당시 무슨 훈련을 하고 있었을까. 통상적인 호국훈련은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연례적으로 열리는 합동훈련이다. 올해는 G20 서울 정상회의 개최로 보통 때보다 20여 일 늦춰져 열릴 예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군 당국은 북한이 문제 삼은 호국훈련이 실제 11월 23일에 있었는지, 또 훈련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여부에 대해 시원스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11월 23일 브리핑에서 “군이 항행통신으로 (북측에) 사격훈련을 미리 알렸다”며 “북한이 해안포를 사격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맞섰다. 김태영 전 국방장관 역시 11월 24일 국회에서 “23일 열린 것은 호국훈련이 아니라 월례적으로 실시해 온 사격훈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발언 이후 합참의 한 관계자는 “그날 있었던 것은 서북 도서부대 사격훈련으로 단지 호국훈련과 일정이 겹쳤을 뿐이다”는 다소 상반된 주장을 펼쳐 호국훈련 실체를 둘러싼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이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최근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부 대북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김정은의 불안정한 후계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북한의 군사적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 사태 전에 북측의 도발 징후가 있었는지, 또 군 당국이 사전 징후를 인지했는지 여부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대북 전문가들은 연평도 포격 전에 북측의 직간접적인 도발 징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직접적인 도발 징후로는 북한 군이 무기와 장비 점검을 은밀히 시행했다는 점이다. 김정일·정은 부자가 연평도 포격을 감행한 바로 전날 개머리 포병기지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번 도발이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됐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정부의 한 관계자가 “한 무리의 북한 전투기 편대가 포격 직전 포병부대 근처로 이동했다는 첩보가 있었다”고 언급한 대목에서 군 당국이 도발 징후를 사전에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어 또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평도 인근 어장에선 보름 전부터 중국어선이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엔 20~30척씩 보이던 중국 어선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격 얼마 전부터 모두 조업을 중단하고 사라졌다는 것이 연평도 주민들의 증언이다. 이는 중국 어선 혹은 중국 당국이 어떤 경로를 통했든 북한의 움직임을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곧 금어기라 중국 어선들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철수했을 수도 있다.
일부 언론은 정부 당국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의 사전 징후를 지난 8월부터 일부 포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4일자 <매일경제>에 따르면 정부고위 관계자는 “8월 말경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 당국이 북한군 내부 통신을 감청했다”면서 “감청 내용을 분석한 경로가 당시 북한군은 서해 5도 지역에 대해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이 같은 내용은 천안함이 인양된 후 첩보 수준에서 다뤄지다가 8월 정보 당국 차원에서 정보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공격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대비에 소홀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국정원 대변인실 관계자는 11월 25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알려줄 수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현재 연평도 포격으로 남한에서는 해병 2명이 사망했고, 최주호 병장 등 6명이 중상을 입었다. 민간인 피해자도 속출했다. 연평도 주민 2명이 사망했고, 재산적 피해는 아직 추산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국방부 관계자는 11월 25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자주포가 북한의 무기에 비해 살상 위력이 몇 배나 되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피해가 한국의 피해보다 더 클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리 군이 북한군의 피해가 예상보다 적어 공개를 망설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의 피해가 예상보다 적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북한의 이번 포격이 계획적이었던 것으로 미뤄 북한이 우리 측의 대응 사격을 충분히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 뒀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부자가 폭격 전날 개머리 군사기지를 방문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전문가들은 K-9 자주포로 북한의 해안포를 직접 타격하기 힘들고, 주민 배치를 고려하면 북한 피해는 작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연평도는 군사 기지와 주민 생활 터전이 있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반면 개머리 군사기지는 주민이 없다는 점에서 소규모 시설 피해만 있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
▲ 지난 24일 북한의 포격을 피해 대피소로 피신한 주민들. 지난 4월 이곳 리모델링 계획을 세웠다가 철회됐다. |
35년간 방치 ‘연평도 대피소’
‘흉가 대피소’ 개·보수 예산도 무산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주민들의 비상대피처인 대피소의 열악한 환경 문제도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주민들은 연평도 일대에 자리한 19곳의 대피소로 이동했지만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전기시설은 물론 온기 하나 없는 곳에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와 화약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35년 동안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콘크리트 벽은 포탄에 무너질 듯 흔들렸고, 주민들은 ‘안전지대 아닌 안전지대’ 안에서 다음날 새벽이 밝아오기까지 뜬눈으로 보내야 했다.
전시상황이 되면 지리상 안전문제가 가장 취약한 곳으로 꼽히는 연평도의 대피소가 지난 35년간 한 번도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웅진군청은 올해 초 대피소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고 용역업체까지 선정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군청 측은 지난 4월 말쯤 구체적인 용역비를 산정할 계획이었으나 예산지원이 무산되는 바람에 리모델링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