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건설 계동 본사 전경 | ||
국내 최대 건설업체인 현대건설의 하도급 비리가 폭로되면서 사건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지난해 3월 ‘건설명가 재현’을 외치며 부임한 이지송 사장은 이번 검찰수사에서 사법처리를 피하기 힘든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 9월2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현대건설의 서울 계동 본사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이 사장을 상대로 지난해 9월 하도급업체인 N사의 대표 윤아무개씨를 통해 송영진 전 의원에게 3억~4억원을 건넨 뒤 검찰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윤씨가 스스로 5천만원을 마련해 송씨에게 전달한 것처럼 진술, 증언토록 시켰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는 현대건설이 송 전 의원에게 돈을 준 것이지만, 형식적으로 하도급업체 윤아무개 사장이 준 것처럼 꾸몄다는 얘기다.
검찰은 이미 현대건설이 지난해 9월 국정감사 때 회사를 문제삼지 말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송 전 의원과 친분이 있는 윤씨를 통해 3억~4억원을 건넨 정황을 확인했고, 이 사장을 소환조사한 뒤 송 전 의원의 공소장을 변경하는 한편, 현대건설 관계자들도 뇌물공여 혐의로 사법처리할 예정이다.
송 전 의원은 지난해 국감 때 윤씨로부터 ‘현대건설을 국감에서 문제 삼지 말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5천만원을 받은 것과 2002년 국감 때 대우건설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년에 추징금 2억원을 선고받고 항소심 계류중이다. 여기에 3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현대건설 비자금 수수건이 추가된 것.
재계의 관심은 현대건설의 비리문제가 왜 뒤늦게 불거졌느냐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는 현대건설은 지난해 3월 채권단이 지명한 이지송 사장 취임 이후 감자 등의 ‘몸 만들기’를 거쳐 올해부터 다시 도약의 해로 잡고 있었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경영위기를 겪으며 지난 2001년 채권단 관리로 넘어간 뒤 계속 뒷걸음질 쳐왔다. 그러다 이번 일이 터지게 된 것.
게다가 7월 말 건설사 시공능력 평가 순위에서 42년 만에 현대건설이 1등자리를 삼성물산에 내준 ‘충격적인 사건’에 이어 이번 하도급 비리와 관련한 뇌물 공여사건이 터지자 현대건설은 초상집 분위기이다.
현대건설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을 누가 터뜨렸느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에선 애초 5천만원 공여건은 검찰의 ‘설득끝’에 윤씨가 “송 전 의원이 돈을 요구해 내 돈으로 5천만원을 건넸다”고 ‘자백’했고, 관련 사실을 시인한 윤씨는 수사기법 차원에서 처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던 사건이 이번에 다시 불거지면서 뇌물공여액이 3억원대 이상으로 불어난 것.
▲ (왼쪽부터)이지송 사장, 송영진 전 의원 | ||
문제는 누가 제공한 첩보냐는 것.
일단 관련 업계에선 대우건설의 비자금 조성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대우건설 사건 수사의 여진이 아니냐는 얘기와 내부 발화설이 동시에 흘러 나오고 있다.
‘내부 발화설’은 현대건설의 내부 사정을 잘아는 누군가가 검찰에 제보한 것이 아니냐는 것. 내부발화설은 현대건설의 현 상황과 관련이 있다.
현대건설의 이지송 현 사장은 지난해 3월 부임했다. 지난 2001년 정몽헌 전 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에 의해 경영권이 넘어간 뒤 공채 사장으로 심현영 전 사장이 뽑혀 2년간 경영하다 뚜렷한 이유없이 심 전 사장이 물러나고 채권단에 의해 이 사장이 임명된 것.
내부불화설의 또다른 근거는 올 초 단행된 내부인사에서 과거 현대건설맨과 심 전 사장측 인사들이 대거 퇴진하고 이 사장 측근들이 경영 핵심에 기용된 부분을 드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일각에선 이 사장이 사장에 취임한 뒤 단행한 현대건설 조직개편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 사장은 부임 직후 한 달 만에 전임 심현영 사장이 바꿔놓은 현대건설 유니폼 색을 정주영 회장 시절의 짙은 남색으로 바꿔놓는 등 분위기 쇄신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 지난해 5월 조직통폐합을 한데 이어 지난 8월 초에도 관리 및 재정본부를 통합해 1개 본부를 축소하는 등 조직 슬림화 인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인력이 자리를 옮기는 등 사내에서 일부 ‘불만’이 있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대건설은 “대폭적인 인원 조절은 심 전 사장 시절에 있었던 일이고 이 사장은 일부 조직만 개편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사장 역시 틈나는 대로 “내 최대 경영목표는 직원들 월급 많이 주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직원들을 독려해 직원들에게 신망이 높았다는 것.
특히 현대건설측에선 이 사장이나 심 전 사장이나 모두 현대건설 내부 직원들의 합의 하에 사장으로 영입된 인물이고, 이 사장에 대한 직원들의 신임도 무척 호의적이라며 내부 불화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오히려 이들은 이번 사건이 액수가 더 불어난 상태로 불거진 게 “송 전 의원이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을 폈다.
현대건설이 윤씨를 통해 송 전 의원에게 돈을 건넨 것은 지난해 9월. 그때 최고 경영자는 이지송 사장이다. 때문에 이 사장이 이번 검찰 수사에서 사법처리를 피할 방법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사건 발발의 일차 타깃은 이 사장인 셈이다.
현재 현대건설의 상황은 현대그룹 시절 누적된 부채문제에 따른 회사정상화가 우선 순위기는 하지만, 채권단에 넘겨진 이 회사의 경영권이 향후 모기업인 현대그룹에서 되찾아가느냐,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사들이느냐로 잠재적인 M&A 대상이기도 하다.
이번 하도급 비리 건이 현대건설의 경영진 문책으로 정리될지, 더 큰 사건의 시작인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