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
지난 10월 26일 제일기획은 코스닥상장 온라인교육업체인 크레듀 지분 150만 주(26.65%)를 삼성SDS에 장외 매각키로 했다. 매각가는 주당 3만 3531원, 총 503억 원이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다른 대주주와 좀 더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란 판단 아래 오래 전부터 검토하던 사안”이라면서 “시장가치에 약 10%의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반영한 거래였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인수주체인 삼성SDS는 예사 회사가 아니다. 삼성SDS는 이재용(8.31%) 이부진(4.18%) 이서현(4.18%) 등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대주주다. 이학수 고문과 김인주 고문도 각각 3.62%, 2.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삼성SDS의 11월 26일 장외거래가는 약 17만 5000원, 이에 따른 평가액은 이 고문 약 4572억 원, 김 고문 약 2203억 원에 달한다. 이재용 이학수 김인주 세 사람이 한 회사 주요 주주에 오른 것은 e-삼성을 제외하면 삼성SDS가 유일하기도 하다.
삼성SDS는 오너 일가가 지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올 초 삼성네트웍스와 합병해 자산규모 2조 5000억 원, 연매출 3조 3000억 원, 순이익 3380억 원(2009년 말 기준 한국증권 추정치)으로 몸집을 불렸다. 자산은 삼성에버랜드(3조 9000억 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오히려 더 크다. 이만하면 삼성계열사 가운데서도 손꼽힐 정도의 규모다.
10월 28일 한화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삼성SDS가 크레듀에 교육사업을 넘겨주거나, 크레듀를 합병할 가능성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크레듀는 혜택을 받는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크레듀 주가에 불을 붙였다. 한화증권은 “합병을 택한다면 그 시기는 2011년 삼성SDS 상장 후가 될 것”이라며 우회상장 가능성은 배제했지만, 시장에서는 삼성SDS가 크레듀를 통해 우회상장하면 ‘초대박이 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교육사업부문만 넘겨주더라도 이전 사상 최고치였던 15만 원은 거뜬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3만 원대였던 크레듀 주가는 이후 수직상승해 11월 9일 9만 원을 넘었고,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된 후에야 상승세를 멈췄다. 한때 6만 원대로 추락했지만 11월 26일 현재도 8만 원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 삼성SDS의 장외가도 올 초 8만 원 미만에서 26일 현재 17만 5000원까지 두 배 이상 뛰었다. 장외시장의 한 관계자는 “크레듀가 뜨면서 삼성SDS 주식을 찾는 이들이 폭증하고 있다. 품귀현상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크레듀가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거래소 감시가 심해지자 이번에는 삼성카드와 삼성물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성카드가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정밀화학 등 계열사 보유지분을 내다팔면서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삼성에버랜드 지분매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다. 에버랜드 지분매각을 신호탄으로 후계승계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아래 후계구도와 관련해 지주사 후보군이었던 삼성물산 주식도 큰 폭으로 움직였다. 11월 한 달간만 삼성카드는 17%, 삼성물산은 12% 넘게 급등했다.
▲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왼쪽)과 김인주 삼성카드 고문. |
하지만 이 부회장과 김 전 사장은 모두 제일모직 출신이며, 퇴임 직전 소속은 삼성전자다. 어차피 퇴임인데 친정인 제일모직이나 직전 소속인 삼성전자가 자연스러울 수 있다. 윤종용 전 부회장도 퇴임 후 삼성전자 고문으로 일선에서 퇴진했다. 삼성전자가 부담스러웠다면 후계구도와 관련이 적은 다른 계열사를 택할 수도 있었다는 게 시장 반응이다.
이 고문이 속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4.1%)를 비롯해 제일기획(12.6%)의 최대주주이며, 삼성SDS(18.3%)의 주요주주다. 이부진 전무가 최대주주인 삼성석유화학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그룹 차원에서 해소를 약속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에버랜드’의 순환출자 구도에서도 벗어나 있다.
김 고문이 속한 삼성카드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다. 이 지분 매각이 삼성카드의 당면 최대과제다. 이론적으로 기업공개를 통한 매각, 다른 계열사에 매각, 그리고 에버랜드의 자사주형태 매입 등이 가능하지만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구조와 적정 가격을 정하는 데는 그룹 자금 전체를 아울렀던 김 고문의 노하우가 필요할 수 있다.
또 삼성카드가 최근 일부 계열사 지분을 매각했지만, 호텔신라 제일모직 제일기획 등 후계구도와 관련 있거나 그룹 지분율이 낮은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그룹 전체와의 연결고리가 튼실하다는 뜻이다. 결국 향후 삼성그룹 후계구도는 두 고문이나, 두 고문이 자리 잡은 회사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가 핵심인 셈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더불어 삼성그룹 계열사를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배구조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삼성SDS 등 비상장회사들의 상장이 가시화될 경우에도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가치가 부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사 이훈 연구원은 “삼성에버랜드 상장시 삼성카드의 혜택이, 삼성SDS 상장시 삼성물산의 혜택이 예상된다”고 보탰다.
삼성SDS 상장 후 이뤄질 이재용 부사장의 행보도 관심사다. 삼성전자에 대한 낮은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경영능력을 통해 최고경영자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건희 회장과 달리 이재용 부사장으로서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좀 더 높여야 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120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 지분을 직접 매입하기보다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여력이 있으면서 다른 계열사 지배력도 높은 삼성물산 지분을 늘릴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훈 연구원은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1대 주주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