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6일 김효상 외환은행 본부장을 비롯한 채권단이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 컨소시엄을 선정, 발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이 투입되며 정부가 관리해오던 외환은행은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매각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이 정상화되자 곧바로 국민은행에 팔아넘기려 했으나 각종 의혹에 휘말리며 계약이 무효화됐다. 특히 론스타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론스타 측이 로비스트를 동원해 정부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당시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현재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에서 현대건설 인수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하종선 사장이다. 1984년부터 미국 LA에서 변호사를 하던 하 사장은 1995년부터는 국내에 들어와 기업 법률자문과 M&A 업무를 해왔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의 로비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하 사장을 뇌물수수 및 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2008년 11월 1심 법원은 “사회통념상 변호사의 정당한 직무수행 범위를 현저하게 벗어난 행위로 볼 수 없다”며 하 사장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 전인 2008년 6월 현대그룹은 하 사장을 전략기획본부 사령탑으로 전격 영입했다. 하 사장은 M&A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혔다.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현대그룹이 하 사장을 영입한 것은 현대건설 인수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 현대그룹의 잠재적 경쟁자였던 현대차그룹의 법률고문을 10년 가까이 맡은 점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 사장은 취임 후 현대건설 인수전을 본격적으로 주도했고 결국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린 현대자동차그룹과의 치열한 인수전을 일단 승리로 이끌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하 사장이 두 건의 M&A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 이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현대건설 인수전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오버랩’시킨다. 외국계 자본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대주주가 되며 논란이 시작됐던 것처럼 이번 현대건설 인수전에도 외국 자본이 핫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의 경우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즉 자본의 성격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진행 중이다. 현 은행법상 비금융회사의 자본이 총 자본의 25% 이상이거나, 비금융회사의 자산총액이 2조 원 이상이면 ‘산업자본’에 해당해 은행 지분을 9%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 시민단체들은 론스타의 전 세계 투자현황을 볼 때 론스타는 산업자본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금융위원회는 2006년부터 논란이 거세지자 2007년 7월 론스타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적격성 심사에 들어갔으나 현재까지 “심사를 계속 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관련해서도 현대그룹이 끌어들인 자본의 성격을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현대자동차에 비해 자본력에서 열세였던 현대그룹은 꾸준히 외국 자본 유치를 추진해왔다. 애초 독일계 기업인 M+W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끌어들였으나 결국 무산됐다. 막판 M+W그룹 측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후문이다. 현대그룹이 M+W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했을 때도 M+W의 모기업인 오스트리아 슈텀프그룹의 불분명한 실체에 대해 재계에 논란이 거셌다.
이후 현대그룹은 또 다른 파트너로 프랑스 나티시스은행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이 프랑스 자본의 출처를 놓고 다시 뜨거운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자본금 33억 원의 현대상선 프랑스법인 명의로 나티시스은행에 예치해 놓았다는 1조 2000억 원의 정체에 대해 끊임없는 의혹이 제기됐고 일단 대출금인 것까지 밝혀진 상황이다.
지난 11월 2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1조 2000억 원의 자금 출처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배영식 한나라당 의원은 “1조 2000억 원이 나티시스은행의 자회사인 넥스젠캐피탈의 단기자금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이야기는 들었지만 확인된 부분이 아니다.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인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확답을 미뤘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MOU(현대건설 주식매매 관련 양해각서) 체결 전에 대출계약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금까지 M&A 사상 유례가 없는 일로 법과 입찰규정에 명백히 위배된다”면서 “입찰규정에 명시된 시한인 29일까지는 MOU를 맺어야 한다”고 밝히며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논란을 지켜본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외환은행이나 현대건설 모두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여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현대그룹의 주채권은행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환은행은 현대그룹과 지난 4월부터 재무구조 개선약정(재무약정)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해 왔고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을 재무약정 대상으로 통보했고 현대그룹이 이를 거부하자 신규 여신 중단과 만기 도래 여신 회수 조치 등의 제재를 가했다. 현대그룹은 주채권은행 변경과 소송으로 맞섰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대그룹의 프랑스 예치금에 대한 재검토 논란이 일었을 때 외환은행이 “재검토는 없다”며 현대그룹을 옹호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점이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에서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위해 서둘러 현대건설 매각작업을 주도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4일 성명을 통해 “외환은행은 당장 높은 가격에 현대건설을 매각하는 데만 관심을 쏟아서는 안 된다”며 “항간에는 외환은행이 대주주인 론스타를 위해 현대건설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