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들이 보다 나은 회사로 옮겨가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각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서류전형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 중 하나가 자격증이라고 한다. 취업이나 이직을 할 때 괜찮은 자격증 하나를 확보하는 것은 어학 점수만큼 중요하다. IT업체에 근무하는 B 씨(여·26)는 입사 2년차가 넘었지만 여전히 자격증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직을 생각하는 그는 자격증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도통 공부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처음부터 맘에 쏙 드는 회사에 입사한 건 아니었어요. 일단 들어가고 나서 꼼꼼하게 준비해 제대로 이직하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입사하자마자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고요. 하지만 직장생활하면서 공부하기가 어디 쉽나요. 그래도 죽기 살기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공부했어요. 약속도 마다해가면서 두 달을 그렇게 공부해서 정보처리기사 필기를 한 번에 붙었죠. 전공도 아닌데 제 스스로 기특했어요. 그 뒤에 바로 실기시험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필기시험 2년 기한이 지나가버렸어요. 굉장히 후회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그 지겨운 공부를 하자니 엄두가 안 나서 손을 못 대고 있네요. 이직은 하고 싶은데 마음만 괴롭습니다.”
괴로운 건 L 씨(29)도 마찬가지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그도 이직을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지만 체력과 정신력이 딸리는 걸 느낀다고.
“스펙을 좀 더 채워서 현재보다 더 나은 기업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자격증이 더 절실하죠. 새벽에 학원을 겨우 다니고 있긴 한데 퇴근 후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고 봐야죠. 실력향상을 하려면 퇴근 후도 중요하지만 직장동료들의 권유를 뿌리치기도 뭐하고 여자친구와 약속이 잡힌 날도 많고요. 이런저런 거 다 따지면서 자격증 따겠느냐고 하는데 그렇다고 고시생처럼 공부할 수 없는 게 직장인 아니겠어요. 직장인이 돼서도 자격증이 제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러다 평생 자격증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L 씨는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격증 스터디를 할 생각이다. 그만큼 절실하지만 혼자서는 흐트러지기 쉽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빨리 자격증을 갖추고 하루라도 마음의 부담 없이 퇴근 후 시간을 즐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직을 넘어 아예 직종 변경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도 자격증은 필수적이다. 요즘처럼 퇴직 시기가 빨라지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실용적인 자격증만큼 든든한 게 없다. 통신업체에 근무하는 P 씨(여·23)도 이러한 의견에 동의한다. 그래서 지금도 짬짬이 틈을 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라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고.
“피부관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어요. 원래 이쪽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자격증까지 딸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주위 동료들을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다들 크건 작건 미래를 준비하는데 저만 아무 생각 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 같았어요. 같은 팀에 있는 선배는 리본 자격증을 땄고요, 네일아트 자격증을 딴 동료도 있어요. 아무래도 평생 직장생활 하긴 어렵고, 그렇다고 재취업이나 이직이 쉬운 것도 아니고 해서 전문적인 자기 일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내년 상반기 안에는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꼭 딸 생각이에요. 그 다음에는 발마사지 자격증도 생각하고 있고요.”
P 씨는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하루하루가 활기차졌다고 말하고 있다. 회사를 잘 그만두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는 셈이지만 목표가 생기니 더욱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고. 그는 “배움에 재미를 느끼니까 공부에도 속도가 붙는다”며 “자격증은 억지로 공부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금융 관련 기업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C 씨(여·30)도 몇 년째 자격증에 매달리고 있다.
“사실 계속 자격증 취득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인중개사가 유망하다는 말에 관련 공부를 했는데 의욕은 넘쳤지만 방법을 몰랐어요. 용어도 생소하고 시험 트렌드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공부를 했었죠.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시험을 쳤는데 똑 떨어졌어요. 무려 1년을 공부했는데 허무하더군요.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공부를 했습니다. 학원도 다니고 시간도 많이 투자했어요. 이번에는 되겠지 했는데 그것도 실패였어요. 좌절 상태에 빠져서 한동안 아무것도 안하다가 최근에는 보육교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어요. 나중에 보육시설도 운영할 수 있다고 하니 맞벌이가 많은 지금 시대에 전망도 괜찮은 것 같아요.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죠.”
대부분 자격증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반면 미리 따놓은 자격증 덕분에 직장생활이 즐거워졌던 경험을 한 사람도 있다. 자동차 부품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H 씨(30)는 어학연수 시절 따놓은 스키강사 자격증 덕을 톡톡히 봤다고.
“캐나다에 머물 당시 자격증을 땄어요. 원래 스키를 즐겨 타긴 했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해볼까 했다가 따게 된 거죠. 그런데 회사에서 스키장으로 워크숍을 갔는데 강사 자격증이 있다고 하니까 여직원들이 다 저에게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고요. 가르쳐 주면서 친분도 쌓고 멋지게 타는 모습을 보여주니 저를 보는 눈빛들도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스키를 좋아한다는 거랑 강사 자격증이 있다는 거랑 사람들이 느끼는 정도는 많이 다르네요. 뭘 하면 끝까지 제대로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하고요. 사실 힘들지 않게 취득한 자격증인데 지금은 해놓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에겐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넘치는 직장생활에 자격증 고민까지 겹치면 설상가상이다. 대기업 홍보팀에 근무하다 퇴직한 N 씨(53)는 햄(HAM·아마추어 무선 통신사) 자격증을 갖고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자기 발전을 위해 자격증을 따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충고했다.
N 씨는 “취미생활과 연계해 성취욕을 느끼기 위한 자격증은 오히려 목표의식을 생기게 해 활기찬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다”며 “무조건 이직을 위한 자격증이나 남들 다하는 자격증 외에 일단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자격증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