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사가 동거하게 된 것은 지난 96년. 당시 LG전자와 IBM의 한국 법인인 IBM코리아는 컴퓨터 판매회사인 LG-IBM을 공동으로 설립하고, 자본금 2백34억원(지분 비율 LG 49%, IBM 51%)을 투입했다.
이 회사는 그동안 LG전자와 IBM코리아로부터 PC, 노트북, 서버 등을 납품받아 판매해왔다.
LG-IBM은 ‘합작법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동안 몇 차례 결별설이 흘러나오곤 했다. 번번이 ‘루머’에 그쳤던 결별설은 최근 좀더 구체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현재 시중에 오가는 얘기는 LG-IBM의 해체작업이 진행중이며, LG측과 IBM측은 각자 이 회사의 영업권 및 판매망을 갖고 모기업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러나 이 루머에 대해 LG-IBM측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LG-IBM 관계자는 “루머일 뿐”이라며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측의 이 같은 부인에도 시장에서는 LG-IBM의 회사 해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회사가 출범한 지 7년이 넘도록 없었던 노동조합이 지난 7월30일 출범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라는 것이 외부의 관측이다.
사실 이 회사의 노조 설립 배경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회사 분할을 앞두고 직원들이 가진 고용불안심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업계의 풀이다. 실제로 LG-IBM 노조 관계자는 “조만간 회사가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 분할 이후 임직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노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어쨌든 현 상황은 LG-IBM의 기업해체에 대해 회사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회사 밖에서는 결별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양상이다.
그러면 연간 2백억원대의 흑자행진을 이어오던 이 회사가 왜 기업해체라는 극단적인 루머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일까.
흥미로운 사실은 이 얘기가 시장에 나돌면서 회사 지분을 더 보유하고 있는 IBM이 LG를 적극 만류하고 있다는 얘기도 함께 나온다는 점.
LG전자 관계자는 “(기업해체와 관련해) 양대주주인 LG전자와 IBM코리아가 협상중인 것으로 안다”며 “LG전자는 기업을 빨리 없애자는 입장인 반면, IBM코리아는 시기를 조금 늦추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어쨌든 기업해체를 위한 내부수순을 밟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상황이 어찌됐건 현재로선 LG-IBM이 기업해체를 한다해도 법적인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양 사가 지난 96년 합작법인을 출범시키면서 회사 존속시기 등과 관련해 특별한 조항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LG-IBM 관계자는 “합작 당시 몇 년 동안 법인을 존속시킨다는 등의 시기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두 회사가 서로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다른 한 쪽의 동의를 얻어 법인 해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최근의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회사가 합병회사 출범을 준비하던 당시 국내 PC시장은 LG나 IBM 모두에게 불모지나 다름이 없었다. 당시에는 조립 PC가 컴퓨터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LG전자의 PC시장 점유율은 6%대, IBM코리아는 1%대에 불과했다. 시장 점유율 자체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로 손잡는 전략이 필요했다. 당시 LG전자는 강력한 국내 유통망과 서비스망을 보유하고 있었고, IBM은 서버와 노트북 등 제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 LG-IBM의 효자상품이 된 ‘X노트’의 지면광고. | ||
회사가 출범한 이후 사정은 무척 좋아졌다. 출범 첫 해인 지난 97년 LG-IBM은 적자를 기록했으나, 그후로는 매년 실적이 꾸준히 늘어나 설립 8년만인 올해에는 매출 2천5백억원, 순익 2백억원의 호실적을 낼 전망이다. 시장점유율도 23%를 넘고 있다. 이는 IBM의 제품과 수익성 위주의 전략, LG전자의 영업 노하우가 결합해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기업상황과는 상관없이 어찌된 일인지 몇 년 전부터 회사 분할 혹은 해체설이 꾸준히 고개를 들었다. 계속되는 이 소문에 급기야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지난 8월 말, 회사 직원들을상대로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긴장감이 돌았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덕주 사장은 당시 회의에서 “(회사 해체는) 내부적으로 검토중인 사안이지만, 정확한 것은 9월 말이 돼야 알 수 있다”고 했다는 것.
이 같은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오면서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에 대해 “LG전자가 IBM을 버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인 듯하다. 그 이면에는 LG전자와 IBM이 이 회사의 미래전략을 두고 적잖은 차이를 보여온 부분도 작용했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1대 주주인 IBM은 이 회사의 영업전략과 관련해 기업체에 납품하는 서버 등을 확대시키자는 입장이었지만, LG전자는 미래형 주거 시스템인 홈네트워크를 가능케 하는 PC판매에 주력하자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마케팅포인트가 달랐다는 것. 양측은 그때마다 의견을 절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견해 차이가 너무 커 대부분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런 견해차의 이면에는 96년 당시만 해도 IBM의 제품이 필요했던 LG전자가 지금은 독자생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한몫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바로 노트북 판매에 대한 자신감이 그것.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노트북은 기존의 데스크탑이나, 서버 등과 비교해볼 때 가장 마진율이 높은 알짜배기 상품. 그동안 LG-IBM은 노트북의 대부분을 IBM사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해 왔으나, 2년 전 LG전자가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그 비율이 확 달라졌다. 결국 LG전자가 생산하는 노트북 ‘X노트’는 LG-IBM의 효자상품이 됐다.
이렇게 되자 LG전자는 더이상 IBM이라는 거대 회사의 그늘이 없더라도, 자사의 제품과 유통망으로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결국 이 같은 상황이 LG전자로 하여금 회사 분할을 종용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시각이다.
그러나 LG-IBM측은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LG-IBM관계자는 “대주주인 LG전자와 IBM이 불화가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적극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잘 나갈 때(판매수익을 많이 남길 때) 자꾸 불화설이 나와 경쟁사에서 퍼뜨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