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원 전 M&M 대표가 지난 2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최철원 씨는 10월 18일 탱크로리 기사인 유홍준 씨와 용산의 M&M 사무실에서 대면식을 가졌다. 최근 유 씨가 몸담고 있던 동서운수가 물류·유통 업계 공룡으로 통하는 M&M에 흡수합병되면서 고용승계 문제 등으로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M&M은 동서운수를 흡수합병하면서 “화물연대(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를 탈퇴하면 고용승계(재계약)를 해주겠다”며 노조원들을 압박했다. 이 때문에 울산 지역 화물연대에 가입돼 있던 동서운수와 대영운수 등 5개 업체 100여 명의 노조원들은 모두 노조를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 씨는 마지막까지 남아 노동쟁의를 벌였다. 그러자 M&M은 유 씨에게 그가 소유한 탱크로리를 팔라고 회유해 왔다. 결국 생활고에 지친 유 씨는 자신의 탱크로리를 매각하는 쪽으로 결심했다. 1년 이상 일을 못해 탱크로리를 한 푼이라도 높은 가격에 팔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결정을 한 유 씨는 10월 18일 밤 용산에 위치한 M&M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날 밤 용산 사무실의 정경은 유 씨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M&M 임직원 7~8명이 어두운 사무실에 유 씨를 가두고 몸수색을 하더니 무릎을 꿇으라고 지시했다. 임직원들은 유 씨를 발로 찬 뒤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무실에 들어온 최철원 씨는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건드리며 ‘매 맞을 것’을 요구했다. 매 맞는 것이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최 씨는 “한 대에 100만 원 씩이다”고 말한 뒤 야구방망이로 유 씨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10여 대 정도를 맞은 유 씨가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을 치자 최 씨는 “이제부터는 한 대에 300만 원”이라며 가격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대를 더 맞았고, 임직원들은 아무도 최 씨를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최 씨는 다시 유 씨를 일으켜 세우고 뺨을 때린 후, 입에 휴지를 뭉쳐 넣었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최 씨는 그런 유 씨에게 서류 2장을 내밀며 사인을 하라고 요구했다. 한 장은 유 씨의 탱크로리를 5000만 원에 매입한다는 증서였고, 다른 하나는 유 씨의 ‘맷값’인 2000만 원이었다. 내용을 보지도 못한 상태로 서명한 유 씨는 아무개 임원에 의해 택시에 태워 보내졌다. 유 씨는 한동안 억울하고 분해서 가족들에게까지 폭행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된 부인과 19세 수험생 딸은 말을 잇지 못했다.
M&M 관계자는 12월 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할 말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또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이 회사 다른 임원은 “유 씨가 맷값으로 돈을 받아갔으면 된 것 아니냐”며 오히려 역정을 내기도 했다.
유 씨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11월 30일 최 씨를 고소했다. 뒤늦게 고소한 이유에 대해 유 씨는 “가족들에게 숨기고 혼자 고민하느라 시간이 다 갔다”며 “그후 일부 언론사에 제보했지만 SK를 의식한 언론사들이 다들 기사화를 꺼렸다”고 설명했다. 서울지방경찰청 폭력계는 11월 30일 유 씨를 불러 6시간이 넘게 피해자 조사를 벌였다. 유 씨는 피해자 조사에서 폭행을 당한 당시 정황과 행적을 상세히 진술했고, 변호인 측은 피해 사실과 배경을 작성해 형사고발장을 제출한 상태다. 경찰은 최 씨가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12월 2일 전격 소환 조사를 벌였다.
▲ <시사매거진 2580>에 방영된 유홍준 씨 몸의 구타 흔적들. |
한 네티즌은 “우리나라 사법부가 더 문제다. 한화 사건이 무죄라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돈만 많이 있으면 사람을 개 패듯 할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네티즌 단체들은 논쟁에서 멈추지 않고 ‘SK 불매 운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이어서 파문 확산을 예고하고 있다. 아고라에서는 SK 마크를 ‘좀벌레’로 표현하는 등 적나라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네이트, 11번가, SK텔레콤, SK주유소, SK브로드밴드 등 SK그룹과 연계된 각양각색의 사업에 대해 모두 불매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SK그룹 측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12월 2일 기자와 통화한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최 전 사장이 면목이 없어서 스스로 나선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SK 불매 운동에 대해 “우리 회장님과 최 전 사장이 단지 사촌이라는 이유 때문에 SK가 매를 맞고 있다”며 “회장님이 잘못하신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M&M은 SK의 자회사도, 주주도 아닌데 너무 가혹하지 않나”라며 억울해 했다.
기자가 ‘이번 사건이 그룹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느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전 직원이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SK그룹이 연관된 일이 아니기에 직접 해명을 할 수도 없어 답답하다. 최 전 사장이 빨리 이 일을 마무리 짓길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사건의 후폭풍은 이뿐만 아니다. 유 씨가 가입돼 있던 화물연대를 비롯한 노조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11월 30일 성명서를 통해 “37만 화물운송 노동자와 화물연대 조합원은 치미는 분노를 삭일 수 없다”며 “폭력범 최철원과 폭행에 가담한 전원을 즉각 구속 수사하라”고 압박했다. 또 화물연대 게시판에는 최 씨를 비판하고 단체 행동을 촉구하는 글들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화물연대 오승석 수석 본부장은 12월 2일 “우리는 더욱 크게 ‘정당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무턱대고 파업할 수 없으니 비밀리에 단체 행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해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