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두 얼굴의 여친>의 한 장면. |
면접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구직자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특히 실수를 많이 하게 되는 대표적인 상황이 영어 면접이다. 들리던 것도 안 들리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L 씨(여·29)는 20대 중반의 생애 첫 면접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료기기 관련 회사에 무심코 넣었던 서류가 통과됐어요. 처음 보는 면접이라 잘 모르기도 해서 무작정 면접장으로 향했습니다. 15명 정도가 한꺼번에 면접을 보는데 넓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운데 외국인이 떡하니 앉아있었습니다. 영어 면접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제 차례가 올수록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급기야 귀가 멍해져서 ‘job’이라는 단어 하나만 간신히 듣고 직업관을 묻는다고 생각해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장황하게 했는데 외국인 면접관 표정이 갸우뚱하더라고요. 면접은 당연히 똑 떨어졌지만 나중에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job’은 직무란 뜻도 있어서 그냥 회사에서 어떤 분야의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이었어요. 순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영어뿐 아니라 우리말 질문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았던 답이 튀어나오고 만다. 긴장 탓이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K 씨(30)도 구직 시절 실수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면접관들이 참 어이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면접 사례를 많이 봤는데 IT회사에 지원해서 ‘평소 IT에 관심이 많았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거짓말을 못하겠다며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대답한 지원자도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거 참 어이없는 사람이네 했죠. 드디어 제가 지원한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됐습니다. 긴장 속에서도 나름대로 차분히 위기를 잘 넘기며 대답했는데 마지막 한마디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한미 FTA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해서 소신 있는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절대 반대한다며 강력하게 얘기했는데 아차하고 드는 생각이 무역회사 면접이었습니다. 떨어져도 할 말 없었습니다. IT에 관심 없는 IT회사 지원자와 같은 사람이 됐으니까요.”
면접 전날은 긴장 속에서 잠을 설치기 일쑤다. 다음날 지각을 하거나 서두르다 실수를 하기도 한다. 벤처회사에 근무하는 P 씨(여·30)는 지금 다니는 회사의 면접을 치를 때 아직도 동료들 사이에 회자되는 큰 실수를 했단다.
“아침 10시에 면접인데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일어난 거예요. 정신없이 준비하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거칠게 운전해 면접장에 겨우 도착했어요. 주차하고 큰 숨 한번 쉬고 면접장으로 향했습니다. 면접장 복도에 대기자들이 몇 명 있더군요. 근데 저를 쳐다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면접장인데도 뭔가 모르게 편하더라고요. 그 순간 슬리퍼를 신고 있는 제 발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머리가 아득해지더군요. 운전 때문에 슬리퍼를 신고 구두를 따로 챙긴다는 것이 깜빡한 거죠. 바로 다음이 제 차례라 그 꼴로 그냥 면접실로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면접관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어요. 그런데도 백수의 늪에서 탈출 시켜준 회사가 그저 고맙네요.”
사실 ‘이런 실수를 누가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지른다. IT회사에 근무하는 M 씨(29)는 면접날 아침 자신이 회사에 보낸 지원서를 확인하고 놀라 비명을 질렀던 경험이 있다.
“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의 공고가 뜬 걸 발견했어요.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죠. 전에 썼던 자기소개서들을 이리붙이고 저리붙이고 해서 겨우 완성한 다음 사진을 업로드해서 전송했어요. 혹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서류가 통과돼서 쾌재를 불렀죠. 면접날 아침 깔끔한 양복을 갖춰 입고 여유 있게 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보려고 면접 서류를 출력했어요. 출력물이 나온 순간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제 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우리 집 개 사진이 있는 겁니다. 증명사진과 같은 폴더에 두었던 게 화근이었어요. 전에 꽃 사진을 올렸다는 사람 보며 혀를 찼는데 제가 그런 실수를 할 줄이야…. 혀를 쏙 내밀고 있는 강아지 사진을 보면서 대체 회사에는 왜 불렀을까하는 의문도 동시에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개 사진을 올린 제가 신기해서 불렀던 것 같아요. 당시 충직한 개처럼 열심히 일하겠다는 식으로 설명은 했는데, 똑 떨어져버렸습니다.”
요즘 많이들 치른다는 술자리 면접에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해 낙방한 경험자도 있었다. 외식기업에 근무하는 C 씨(31)는 원래 주량이 약한 데다 다소 ‘주사’가 있는 편이라 면접날도 사실 불안했다.
“일반적인 면접을 본 다음 대낮부터 면접자들하고 임원진들이 다 같이 술자리를 가졌어요.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죠. 그런 자리에서 술이 약하다고 뺄 수 없잖아요. 주는 대로 마시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거의 멀쩡한데 저만 이미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기억이 하나도 안 났죠. 나중에 그날 얘기를 듣고 멀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임원한테 자꾸 시비를 걸지 않나, 심지어 옆자리 여자 면접자한테 치근덕대더랍니다. 정말 천하의 ‘진상남’으로 찍혀버렸죠. 아마 그 회사는 붙었어도 못 다녔을 겁니다.”
반도체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N 씨(30)는 수없는 실패 끝에 면접의 노하우를 깨닫고 취업에 성공했다. 지금이야 추억이지만 구직 시절에는 자신도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그는 “일단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야 면접관과 ‘대화’라도 할 수 있다”며 “대화를 통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면 면접에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조언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