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 |
감사원은 지난 2월부터 김 전 사장 및 메트로와 관련된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해 은밀히 감사를 벌여 왔다. 하지만 김 전 사장이 6·2 지방선거 때 서울 중구청장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면서 감사는 지연됐고, 이 과정에서 여권 고위층이 감사원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26년간 서울시에서 근무한 김 전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고, 오세훈 서울시장과도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그 불똥이 여권 핵심부로 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 측근의 개인비리를 넘어 ‘권력형 게이트’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 김 전 사장의 각종 의혹 사건 속으로 들어가봤다.
김전 사장이 서울메트로(서울지하철 1~4호선)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불거진 각종 의혹 사건은 한두 건이 아니다. 김 전 사장은 지하철 시설물 설치 공사와 관련해 업체로부터 청탁을 받고 편의를 제공한 혐의를 비롯해 스크린도어 설치 사업과 상가 임대비리 등 각종 사업에 깊숙이 개입해 이권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2월부터 김 전 사장과 관련된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해 감사에 돌입했다. 그러자 김 전 사장은 3월 3일 6·2 지방선거 출마를 명분으로 전격 사퇴했다. 김 전 사장은 올해 1월 연임이 결정되면서 내년 1월 24일까지 임기가 연장된 상태였다. 우여곡절 끝에 임기를 1년 연장한 김 전 사장이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갑자기 선거 출마를 이유로 사퇴한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김 전 사장이 자신의 비위 행각을 감추기 위해 ‘선거 출마’라는 승부수를 띄운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가 하면 감사원 감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여권 핵심부와의 교감하에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을 것이란 소문도 나돌았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전 사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6월 지방선거 정국에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한 여권 핵심부가 감사원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지난 2월 서울메트로 감사 중 청와대 관계자가 감사 중단을 요구했고, 모 정치인이 감사 중단을 요구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정리하라’고 하는 등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면서 ‘감사 중단’ 외압설을 제기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또 “이상한 점은 감사를 받는 도중 비리 혐의가 있는 김 전 사장의 사표를 오세훈 서울시장이 슬그머니 수리를 했다는 것이다”라며 “비리로 인해 감사가 진행되는 도중 기관장이 사퇴한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실제로 대통령령인 ‘비위 공직자의 의원 면직 처리 제한에 관한 규정’ 제9조에 따르면 감사원의 감사나 검찰 등의 수사 중에 면직 등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김 전 사장과 가까운 관계인 오 시장이 그를 막후에서 비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6월 지방선거 정국 때 한나라당 중구청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김 전 사장이 결국 중도하차한 배경에도 그와 관련된 각종 비리 의혹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 전 사장이 사퇴하고 6월 지방선거가 끝났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사원 감사는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메트로 노조 내부 문건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실과 한나라당 중진이자 여권 실세로 통하는 K 의원이 감사원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어 사실 여부에 따라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문건에는 김 전 사장의 각종 비리 혐의를 고발한 내부고발자에 대해 국정원 직원이 뒷조사까지 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공기업 재임 시절 수백억 원대의 손실을 입혀 서울시민의 혈세를 낭비한 김 전 사장을 청와대와 여권, 국정원의 일부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비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특히 서울시에서만 26년간 근무한 김 전 사장은 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시절 김 전 사장을 서울시 교통국장으로 발령을 내는가하면 서울시장 퇴임 직전에는 그를 메트로 사장으로 전격 발탁할 정도로 깊은 유대를 과시한 바 있다. 이는 여권 핵심부의 ‘감사 외압’ 의혹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메트로 노조의 줄기찬 의혹 제기와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감사원은 김 전 사장에 대한 감사에 돌입한 지 10개월 여 만인 지난 10월 27일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이날 김 전 사장을 비롯해 메트로 직원 5명과 상가 계약업체 관계자 5명, 지하철 상인 4명 등 모두 14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의뢰를 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김 전 사장에 대해 수사를 요청한 사안은 지하철 행선안내게시기 설치사업과 지하철 역사 스크린도어 설치사업 두 가지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행선안내게시기 사업 추진 과정에서 당초 예정가격인 495억 원의 절반도 안되는 250억 원에 업체와 계약을 맺어 메트로에 250억 원 가까운 손해를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메트로 노조 내부 문건에는 이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정황이 적시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2008년 6월 경쟁입찰로 실시된 1차 입찰에서 업체들이 예정가(450억 원)에 못 미치는 가격을 써내 유찰되자 재입찰 공고를 보류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이후 9개월 뒤에 진행된 2차 입찰에서 애초 업체들이 제시한 450억 원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입찰 방식도 수의계약과 비슷한 ‘협상에 의한 입찰’로 바꿔 특정업체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김 전 사장은 이 과정에서 1차 입찰이 유찰된 뒤 곧바로 재입찰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계약 담당자들을 좌천시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스크린도어 설치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업체에 부당하게 선급금과 물품대급을 지급하도록 지시해 메트로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사장은 선급금을 20% 이상 지급한 뒤에는 추가 선금 지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행정안전부 예규를 무시하고, 이미 두 차례에 걸쳐 44억 원(20%)을 지급한 업체에 43억 원을 더 주도록 지시했다. 김 전 사장의 선급금 지급 지시 때문에 메트로가 100억여 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감사를 통해 드러난 것 외에도 김 전 사장은 재임 시절 각종 이권에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노조 문건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취임 후 각종 인사 비리에 깊숙이 개입해 ‘자기사람 심기’에 주력했고, 상가 비리, 광고비 부당 집행, 과도한 개인 홍보비 지출 등 각종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메트로 노조 측은 “김 전 사장의 비리를 보면서 지난 1988년 국감에서 폭로된 지하철 비리사건이 연상된다”며 “금호동 패밀리, 독수리 5남매 같은 사조직들이 지하철 경영을 유린했다”며 ‘비리 경영진’ 퇴진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감사원으로부터 김 전 사장에 대한 수사를 의뢰받은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 11월 초 상가 임대업체인 S 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는 등 기초 수사에 돌입했다. S 사는 메트로에서 임대받은 상가를 불법으로 재임대해주고, 비싼 임대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곳으로 수십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S 사 대표의 차명계좌 등 각종 증거 자료를 확보하는 동시에 관련자에 대한 소환 조사를 본격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조만간 김 전 사장을 소환해 감사원의 감사 내용 및 그가 메트로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불거진 각종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파헤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김 전 사장에 대한 수사 추이에 따라 사건의 불똥이 여권으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비리 의혹을 넘어 ‘권력형 게이트’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 김 전 사장을 겨냥한 검찰 칼끝에 대해 여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