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양의 한 시골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은 모텔 지하에 들어선 가요주점. 이곳은 위층 모텔까지 엘리베이터로 직행하는 속칭 ‘풀살롱’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인구 90%가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충남 청양군의 한 시골 마을. 지난 2005년 한 모텔 건물 지하에 수상한 가게 하나가 들어섰다. 서울에서 내려 온 ‘마담’이 세운 가요주점이었다. 처음엔 골목어귀 모텔건물 지하에 위치한 데다 네온사인 간판도 없어 그야말로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남성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인기주점이 됐다. 이 가게의 무엇이 조용한 시골마을의 밤을 환히 밝힌 것일까. 마을 남성 대부분을 입건시키며 대소동을 몰고온 기가 막힌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2005년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한 마담이 청양군에 도착했다. 주변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번화가라고 해봤자 청양시장 주변에 낡은 다방과 가요주점 몇 곳이 들어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주변을 둘러본 후 이 마담은 골목어귀 낡은 모텔 건물 지하를 전세를 계약했다. 모텔 지하는 이전만 해도 창고 정도로 쓰였던 좁은 공간이었다. 이 마담은 이 공간을 남성 6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방 4개 정도로 나눈 후 인테리어에 공을 들여 내부를 마치 고급 룸살롱처럼 꾸몄다.
내부 공사를 마친 마담은 30대 전 후반의 여종업원 6명을 고용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돌입했다. 별도의 홍보도 필요 없었다. 세련된 행색의 마담과 업소 여성들이 진한 향수냄새를 풍기고 지나다니며 조용한 시골 마을의 남심을 흔들었던 것.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차원이 다른 서비스가 그 마담의 가요주점에 있다는 입소문이 금방 청양군 일대에 퍼졌기 때문이다.
마담이 시골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간단했다. 철저한 ‘비밀보장’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하며 모두가 한 식구처럼 지내는 마을의 특성상 하룻밤 잠자리를 즐기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이 마담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잠깐의 일탈을 꿈꾸는 남성의 심리를 노렸다.
마담은 주점을 모텔 지하에 차린 후 밖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이 위층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바로 올라갈 수 있는 ‘풀살롱’을 만든 것이다. 마담의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일단 건물 지하로 내려가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운영되는 폐쇄성 덕에 이 가요주점은 금세 청양군 일대 최고의 유흥주점이 됐다. 또 개인손님을 받지 않고 단체손님만 받았다. 한 방에서 여섯 명의 여성들이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2차 성매매를 한 후 다시 돌아와 다른 단체손님을 받는 형태여서 룸 회전율도 높았다. 성매매 비용 역시 20만 원으로 굳어져 있어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농민들의 발길을 가게로 이끌었다.
단골손님도 늘었다. 모두가 한 방에서 어울리면서 ‘성 매수자’ 공범이 되는 형태이다 보니 삼삼오오 어울려 생각이 날 때마다 고정멤버들끼리 룸을 찾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비밀이 새어나갈 틈이 없는 완전범죄가 지난 5년 동안 이 가요주점에서 이뤄진 셈이다.
▲ 모텔 건물 지하에 들어선 가요주점 입구.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관할서에서 아직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아 이곳은 계속 영업 중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러한 청양군 남성들의 ‘은밀한 일탈’은 경찰서에 걸려온 제보와 함께 일장춘몽으로 막을 내렸다. 마담이 입건됐다는 소식과 함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는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졌다. 수사 초기에는 누가 이 가게를 찾아 성매수를 했는지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돌연 업소에서 ‘비밀노트’가 발견되면서 성매매 사건에 대한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마담은 그동안 단골을 관리하기 위해 3개월 단위로 영업장부에 손님의 이름과 성매매 여부 등을 빨간 동그라미로 체크해 왔는데 수사 과정에서 이 노트가 발각된 것이다. 그동안 가게를 찾은 것을 감춰오던 마을 남성들에겐 꼼짝할 수 없는 증거가 확보된 것이다.
마담의 영업장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말경부터 10월까지 3개월간 모두 92명의 남성들이 이곳에서 성매매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월 8일 기자와 만난 사건담당 형사는 “수사결과 확실한 증거로 드러난 것은 단 3개월 동안의 정황뿐인데도 약 100명의 남성들이 연루된 셈이다”며 “마을의 규모를 생각해 본다면 이 가게가 얼마만큼 성황을 이룬 것인지 알 만한 대목이다”고 말했다.
마담의 영업장부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기에 꼼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가 확보된 셈이지만 경찰수사는 오히려 더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장부에 적힌 대상자들은 고등학교 동창에서부터 이웃동네 주민, 심지어 일가친척까지 연관돼 있어 경찰조사를 섣불리 진행하다간 마을 전체 분위기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담당 형사는 “고심한 끝에 장부에 적힌 92명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끔 각자 다른 날짜, 다른 시간에 불러 자백을 받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 조사가 본격화되자 마을은 뒤숭숭한 분위기와 함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12월 8일 취재과정에서 만난 마을 주민 최 아무개 씨(49)는 “그동안 마을 여성들은 이 가게에 누가 가는지, 들어가서 뭘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며 “제보자는 아마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아채고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하던 부인이 아닌가하는 소문이 퍼졌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찰서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보니 ‘어느 집 남편이 언제 경찰서에 올라 가더라’는 소문만 퍼져도 성매수남으로 몰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가요주점 위층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업주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기자에게 “요즘엔 장사도 잘 안되던 터였다. 내가 모텔을 인수하기 이전 사장은 가요주점 마담에게 성매매 장소를 제공해 주는 조건으로 웃돈을 받아 떼돈을 번 것으로 안다”며 “이 모텔을 인수한 후부터 나는 일절 관여한 적도 없고 가요주점 손님들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도 않고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오곤 해서 성매매를 하러 올라오는 건지 어디서 오는 손님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가요주점은 여전히 성업 중이어서 마을의 잡음을 더 키우고 있었다. 더욱이 가요주점 인근에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데다 바로 옆엔 학원과 학교가 들어서 있어 주민들은 문제의 주점이 계속 영업 중이라는 사실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건담당형사는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관할서에서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