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일산 식사지구 위시티 단지내 아파트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서울과 수도권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들의 비리가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삼성물산(건설부문)과 GS건설, 대우건설,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엠코 등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을 압수수색했다. 모두 재개발 관련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회사들이다. 검찰은 대형 건설사들이 재개발 정책의 허점을 이용해 무차별적인 금품 살포를 하고 있다고 판단, 당분간 재개발 관련 비리에 수사력을 집중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로비에 사용되는 돈은 고스란히 분양가에 포함돼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끊이지 않는 재개발 비리의 토대를 파헤쳤다.
인천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윤희식)는 인천 부평구 삼산1구역 재개발 사업 추진과정에서 조합 측에 2억 6000만 원의 뇌물을 건넨 정황을 잡고 지난 11월 24일 대우건설과 현대엠코 서울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두 건설회사가 삼산1구역 재개발사업의 시공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지난해 조합과 정비사업관리 전문업체, 용역업체 등에 뇌물을 건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이 끝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2일 현대엠코 임원 유 아무개 씨를 구속했다. 유 씨는 삼산지구뿐만 아니라 서울 홍제동 재건축 사업과 관련해서도 정비업체 사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대엠코가 다른 분야에 비해 주택부문 사업의 규모가 작아 이를 확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천지검의 압수수색 다음날인 25일에는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검사 박용호)가 서울 성북구 장위8구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비리 혐의로 삼성물산(건설부문) 현대산업개발 GS건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건설사들 역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비업체를 통해 조합장과 조합 간부, 조합원 등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틀에 걸쳐 압수수색한 대형 건설사만 해도 무려 5곳이나 된다. 비록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지방검찰청이 다르긴 해도 복수의 대형 건설사들에 대해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재개발 사업에 비리가 끊이기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수십 년간 바뀌지 않은 재개발 정책의 허점 때문이다. 현재 재개발 사업은 크게 ‘도시기본계획수립→정비구역지정→조합설립→사업시행’의 순으로 진행된다. 기본적으로 계획을 수립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재개발을 요구하는 주민의 필요가 맞아 떨어질 때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재개발을 부추기는 정비업체와 대형 건설사들이 끼어들면서 비리가 싹트기 시작한다.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불필요한 로비가 생겨나고 금품 살포로 이어진다. 지자체에 압력을 넣는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대형 건설사들이 깊숙이 연관된 대표적인 재개발 사업이 바로 고양 식사지구와 서울 상도동 재개발 사업이다. 식사지구의 경우 먼저 시행사가 지역 주민들을 부추겨 재개발 사업을 진행한 경우다. 시행사와 조합 측은 고도제한이나 사업인허가 등 추진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하자 대형 건설사와 손잡고 정치권과 지자체 등에 무차별적인 금품 살포를 했다. 결국 일부 주민들이 반발하며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고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검찰 주변에서는 식사지구 재개발 비리가 향후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지난해 7월 상도동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60억여 원의 금품을 뿌린 시행업체 대표와 이를 받은 구청 공무원, 토지 소유자, 주민들을 무더기로 구속한 바 있다. 이 사업은 지난 1996년부터 추진해왔으나 각종 비리가 불거지며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다 결국 관계자들이 지난해 사법당국의 철퇴를 맞았다.
대형 건설사들의 이 같은 비리에 대해 한 중견 건설업체 임원은 “정비업체가 대부분 영세하다보니 건설회사가 끼어들어 미리 담합한 후 정비업체와 조합에 뒷돈을 대주는 게 일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형건설사가 범법행위도 망설이지 않는 지금의 태도라면 (현행 제도상) 재개발 비리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