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국적 부동산 시행사 스카이랜과 토지주 T 재단의 분쟁으로 공사가 중단된 ‘파크원’ 현장.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특구의 한 축인 ‘파크원’(Parc1)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외국계 시행사가 주도하는 첫 개발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토지주와의 분쟁 등으로 공사가 사실상 중단된 것이다. 특히 파크원 공사가 중단되면서 투자를 약속한 미래에셋과 맥쿼리 등 금융기관은 물론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 등 이해당사자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국제금융특구로 여의도를 육성하려는 서울시의 개발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8일 다국적 부동산 시행사인 스카이랜은 삼성물산이 서울 여의도동 22번지에 짓는 총 2조 3000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 ‘파크원’ 프로젝트를 놓고 토지주인 T 재단을 상대로 맞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크원은 당초 2012년 말 완공 예정이었지만 현재 25% 공정률에서 중단됐다.
스카이랜 관계자는 “서울시 금융위원회 등과 대화를 통해 사업 진전을 도모하고 있지만 우선적 당사자인 T 재단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라면서 “현재 법률자문을 통해 맞고소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T 재단은 지난 10월 말 파크원 사업 추진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회사 Y22금융투자 등 14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지상권 설정등기 말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파크원 사업이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위기 이후 꽉 막힌 유동성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조달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는데, 소송전으로 2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지경에 이른 탓이다.
당초 10월 중 8407억 원 규모의 오피스타워 2동의 매입 계약금으로 880억 원을 입금키로 했던 미래에셋증권이 지급을 보류하는 등 자금조달도 차질을 빚고 있다. 미래에셋맵스 이재길 부동산투자개발본부장은 “지난 10월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포착돼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T 재단 측은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만 밝힐 뿐이다.
현재 파크원은 지주와 시행사 오피스타워 1동의 매수를 전제로 대출(선물계약)을 일으킨 맥쿼리컨소시엄, 2동 매수자인 미래에셋, 신디케이트론 주거래 금융기관인 신한은행,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까지 얽히고설켜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난감한 곳은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이다.
▲ 삼성물산의 이부진 고문. |
파크원 사업에서 삼성물산은 지금까지 대략 1000억 원 이상의 공사비가 밀렸다. 현재 삼성물산은 파크원 공사비로 계약금 420억 원을 제외하고는 한푼도 못 받았지만, 지난 8월 ‘고통분담’ 차원에서 총 공사비 1조 3000억 원 가운데 2500억 원을 유보하기로 합의하기까지 했다. 공사가 지연된 데 따른 비용도 상당하다. 이미 시공한 부분에 대한 철근 부식과 타워크레인 9대 등 장비만 해도 매월 10억 원가량의 비용이 들어간다.
삼성물산 현장사무소 관계자는 “시행사인 스카이랜과 지난 목요일 업무협의를 진행했으나 뚜렷하게 결론이 난 부분이 없다”면서 “벌써 5년 이상을 끌어온 공사가 또 지연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파크원 사업이 최근 사장(삼성물산 고문)에 오른 이건희 삼성 회장 장녀 ‘이부진의 삼성물산’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총 4만 6465㎡ 규모의 파크원 공사가 중단되면서 서울시의 ‘여의도 국제금융특구’ 조성 계획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스카이랜의 한 관계자는 “여의도 금융특구의 핵심 인프라인 파크원 공사가 중단되면 서울국제금융센터(SIFC)는 물론이고 서울시도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을 것”이라면서 “전반적인 도시개발계획이 파크원을 한 축으로 놓고 세워진 만큼 공사가 중단되는 데 따른 손해가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파크원 사업의 불똥은 그나마 잘나가고 있는 SIFC로 튀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과 SIFC를 지하로 연결하는 공사 중에 있으며, 파크원이 완공되는 2012년 말까지 SIFC와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까지 연결해 두 역을 관통하는 대규모 지하아케이드 조성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스카이랜 관계자는 “SIFC에서 여의나루역까지의 연결되는 대부분 땅을 파크원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파크원 공사 중단에 따라 서울시의 지하아케이드 조성 사업도 한꺼번에 늦춰질 수밖에 없어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주 초 SIFC를 담당하는 서울시 투자유치본부에 시장 보고를 요구했다.
서울시 투자유치과 모병욱 주임은 “(시장실로부터) 긴급히 SIFC에 대한 시장 보고 관련 지시를 받았다”면서 “자금조달은 물론 임차인 모집까지 순항하고 있지만 시장 상황이 불안한 것을 우려한 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SIFC는 딜로이트와 ING리얼에스테이트 다이와증권 등이 입주 계약을 체결하는 등 ‘국제금융특구’에 어울리는 임차인 모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SIFC와 파크원은 외국계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대표적인 빌딩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개발 사업에 외국계 회사를 도입할 때는 철저한 검증과 면밀한 사업성 검토가 기본 전제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 투자유치과 최판규 팀장은 “서울시는 여의도를 국제금융도시로 키우겠다는 본래 취지에 따라 SIFC 개발을 진행했다”면서 “초기에 계약을 정교하게 한 덕분에 글로벌 금융위기도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의 대규모 개발사업 가운데 특히 외국계 자본이 투입된 PF 사업 중 정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곳은 손에 꼽힐 정도다. 최 팀장은 “서울시는 행정기관인 만큼 시행사와 면밀하게 협의해 사업이 단계별로 진행될 때마다 보고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췄다”면서 “사업자들도 서울시가 담보를 하니까 믿고 투자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풍토와 정서가 외국계 시행사와 이질적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국내 부동산 투자개발사인 글로스타 김수경 사장은 “외국계 시행사들은 최초 계약을 체결하면 그 계약대로 끝까지 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면서 “국내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계의 경우에는 사업 진행에 있어 관련자들과 불화를 야기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라고 귀띔했다.
김명지 파이낸셜뉴스 기자 mjki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