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2010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쌀 대란 대책 수립 및 FTA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런 혼란을 의식해서인지 지난 9일 국무총리실에서는 ‘FTA로 대한민국이 커집니다’라는 자료를 급하게 만들어 배포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0년간 6.0% 증가하고 일자리 창출은 34만 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또 10년간 제조업의 대미 수출은 연 13억 3000만 달러, 제조업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7억 5000만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데 이는 2007년에 합의했던 내용을 근거로, 당시 11개 국책연구기관이 내놓은 공동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다시 계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가 기존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것은 그만큼 한미 FTA 내용을 바꾼 것이 큰 영향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승용차 관세철폐 시한을 4년 유예(한국은 현재 8% 관세를 발효 후 즉시 4%로 낮추고 4년 뒤 나머지 4%를 철폐, 미국은 현재 2.5% 관세를 4년 후 철폐)하면서 대략 5000억 원 정도의 손실을 봤지만 복제약 제조·판매 규제 기간을 늘리고, 돼지고기 관세 철폐기한을 연장하면서 3000억∼4000억 원의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손실이 미미하다는 판단이다.
반면 민주당은 승용차 관세 철폐 시한을 4년 유예하면서 4년간 총 4조 4200억 원(39억 달러)의 손실이 일어나는 만큼 이번 협상은 국익을 해친 협상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양측 간 승용차 관세 철폐 시한 연기에 따른 손실액이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전문가들은 손실액을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대미 수출 구조상 민주당보다는 정부 쪽 계산이 현실에 근접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현재 미국에서 팔리는 자동차 중 절반 가까이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차량들이다.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될 당시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은 11.4%였지만 2010년에는 47.3%로 늘어났다. 올해 총 판매 예상 95만 대 중 45만 대가량이 미국 현지 생산 대수인 셈이다.
반면 대미 자동차 수출대수는 50만 대. 액수로는 63억 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2.5%) 철폐가 4년 유예된다고 해서 매년 10억 달러의 손실이 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발효 즉시 관세(1.3∼10.2%)가 폐지되는 자동차 부품 시장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도 정부 쪽 계산에 힘을 싣는다. 자동차 부품의 대미 수출액은 2007년 28억 4000만 달러였으나 올해는 40억 8000만 달러로 늘어난 상태다. 2007년 협정 당시보다 자동차 부품의 수출액이 증가한 만큼 자동차 관세 철폐 기간 연장의 피해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현 NH증권 연구원은 “관세철폐 유예 등은 기존 합의안에서 후퇴한 것이지만 여전히 한미 FTA에 따른 긍정적 효과는 유효하다고 판단된다”면서 “기본적으로 미국시장 규모가 한국보다 10배 이상 커서 규모 효과에서 우리가 여전히 유리하며, 미국 차의 경쟁력이 회복하고는 있지만 내수시장에서 미국 수입차 선호도는 아직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태봉 IBK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변경 조항이 기존 2007년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내 경쟁력이 FTA의 불리한 조항에도 불구하고 크게 향상되기 힘들다. 또 미국 현지생산 비중이 전체 판매의 절반에 달하고 있는 시점에서 관세철폐 시점의 지연 역시 큰 영향을 끼치기 힘들 것으로 본다. 자동차 부품에 대한 4% 관세 즉시 철폐 항목은 자동차 부품 경쟁력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며, 현지생산 완성차의 원가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국내 완성차업계와 부품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도 추가협상을 환영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상당수 전문가와 업계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수출액수가 정부의 손익계산서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당장의 자동차 수출이나 무역수지에서는 한국이 앞설지 모르지만 미래 자동차 시장이나 노동시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계산한 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부와 야당 모두 자동차 관세철폐 시한 연기라는 협상 문구에만 매달려 있지만 실제 미국에 유리한 것은 그 이면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존에 한국과 미국이 FTA 발효시 9년간 균등 철폐키로 했던 전기자동차에 대한 관세다. 이번 추가 협상을 통해 전기차의 관세는 4년간 균등철폐로 완화됐다. 현재 한국에서 하이브리드카는 생산되고 있지만 전기차가 연구단계다. 반면 미국은 지난 11월 세계 최초로 전기차 양산·판매에 들어갔다. 미국은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인 GM의 시보레 볼트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7000달러를 지원하는 등 자동차 시장을 전기차로 탈바꿈시키려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대형 승용차만 고수하다 한국과 일본, 유럽에 밀린 자동차 시장을 일거에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또 관세철폐 연기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한국 자동차업계의 미국 현지 공장을 증설시키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를 늘려 미국 내 고용을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디미트리어스 마라티스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한미 FTA를 통해 미국 경제가 연간 100억∼110억 달러의 수출 증대, 7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정보분석기관인 IHS글로벌인사이트 역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번 협정은 미국의 수출을 배가시키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북돋았다는 점에서 승리로 기록될 것”이라며 “미 의회에서도 커다란 반대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는 이유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