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넘어 산 현대건설 인수자금 동원 계획 등에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고 있는 현대그룹. 사진은 현정은 회장. |
현대그룹의 당면 과제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자금 마련이다. 현대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자금 동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수자금의 30%에 달하는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의 대출금 1조 2000억 원과 동양종합금융 투자금 8000억 원에 대한 의혹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가장 부담스럽다.
현대그룹의 나티시스은행 대출금 1조 2000억 원과 관련해 증권가를 중심으로 ‘연리 최고 20%에 본계약 체결시 투자금 전환과 수익금 배분, 손실시 보상’ 등 확인되지 않는 구체적인 대출 조건도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이 대출 계약서 등 채권단이 요구한 서류를 제출할지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자금으로 쓰기 위해 추진했던 부산신항만 지분 매각 작업도 난관에 봉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지난 10월 이사회에서 100% 출자 자회사인 부산신항만 지분 49.9%를 다수의 투자자에게 팔아 2000억 원을 마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애초 현대상선은 11월 18일까지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밝혔지만 마땅한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일까. 최근 현대그룹이 계열사 유상증자나 자산 매각을 통해 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먼저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난 10일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2246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공시에 따르면 증자 예정 금액 가운데 1000억 원은 현대건설 인수에 투입되며 나머지 금액은 운영자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가 지난 10월 현대상선 유상증자와 여러모로 닮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시 현대상선은 운영자금 확보가 목적이라며 3967억 원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유상증자의 목적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실탄’ 마련과 향후 벌어질지 모르는 현대중공업과의 경영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번에도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로 실탄 확보에 나선 사이 현대로지엠(옛 현대택배)은 11월 24일부터 거의 매일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장내 매수해 기존 24%대 지분율을 26.25%로 끌어올렸다. 이로써 특수관계인 포함 현대그룹 측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은 절반을 넘겨 50.09%가 됐다. 실탄 마련과 경영권 방어. 현대그룹의 움직임은 이 두 가지로 요약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그룹은 2008년 매입한 뒤, 지난 3월에야 입주한 연지동 사옥 매각도 검토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상선이 소유한 그룹 사옥을 3~5년 후 되사는 조건으로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현대상선은 최근 인수의향서를 낸 제이알(JR)자산관리와 코람코자산신탁의 매각 조건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그룹은 매각가로 2400억 원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이 이처럼 자금 동원을 위한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일도 일어났다. 현대그룹이 오스트리아 슈텀프그룹과 맺었던 계약내용협의서가 지난 6일 <문화일보>를 통해 공개된 것. 슈텀프그룹은 현대그룹 컨소시엄의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기로 했다가 막판 투자를 철회했던 독일 M+W그룹의 모기업이다. 협의서에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후 현대엔지니어링을 슈텀프그룹에 매각하는 내용이 현정의 회장의 서명과 함께 담겨 있었다.
이처럼 현대그룹이 내우외환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자 재계에서는 현대건설 인수전과 관련해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예상 시나리오는 현대그룹이 본계약을 체결하면 현대자동차 그룹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반대로 채권단이 현대그룹과의 계약을 해지할 경우 현대그룹이 채권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그룹은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에 양해각서해지금지 등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는 공시한 바대로고, 사옥 매각 건은 논의 중인 건 맞는데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부산항만 지분 매각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으며, 대출계약서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M&A 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